그랜저급 '고급차'로 출시했지만 아무도 고급차로 생각하지 않아 망한 국산차

조회 108,5542025. 3. 12.

차명은 프랑스어로 여행, 여정을 뜻하는 '트라제(Trajet)'에 최고의 영광이라는 의미의 'eXtra Glory', 'XG'를 서브네임으로 붙였습니다. 고급 세단 그랜저 못지않은 고급감으로 무장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또 하나의 XG'라는 카피도 내걸었어요.

외관은 승용 감각이 물씬 느껴지는 생김새였습니다. 앞서 선보인 컨셉트카는 투톤 처리된 차체와 범퍼로 경쾌한 크로스오버 스타일을 강조했던 반면, 양산된 모델은 원톤 차체와 당시 현대차 특유의 단정하고 부드러운 디자인으로 차량의 성격에 어울리는 보다 고급스럽고 중후한 느낌을 줬습니다.

여기에 플래그 타입 사이드미러, 웬만한 승용차에도 후방감지 센서가 안 달려 나왔던 시기에 후방은 물론 전방에까지 주차 센서를 장착한 모습은 고급 미니밴을 표방하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었죠.

후기형 그랜저나 에쿠스처럼 후면 번호판 양옆으로 마치 후진등처럼 보이는 램프가 있었는데, 실제 후진등은 리어램프 속에 있었고, 해당 부위는 그냥 장식이라 황당했던 기억이 나네요.

또 흔히 말하는 봉고차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짧은 보닛이 아닌 나름 길쭉한 보닛을 사용한 것, 특히 일반적인 승합차, 미니밴에 폭넓게 쓰인 2열 슬라이딩 도어 대신 승용차에 쓰이는 스윙 도어를 채택한 것도 남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XG의 이름값은 실내에도 충실히 반영됐습니다. 고리타분한 운전자 중심 구조가 아닌 좌우로 펼쳐진 대칭형 실내는 세련된 분위기와 함께 넓은 실내를 더욱 넓게 느끼게 해 줬고, 그랜저 XG는 물론 당시 플래그십 에쿠스에도 없던 온갖 첨단 고급 사양을 휘감았어요.

비가 오면 자동으로 와이퍼를 작동시키는 레인 센싱 와이퍼, 타이어 공기압 경고장치는 물론 문이 열려 있거나 사이드가 채워져 있으면 한국어 음성으로 알려주는 음성 경고장치를 국내 최초로 적용해 '말하는 자동차'로 불리기도 했고, 당시 고급 사양이었던 풀오토 에어컨과 CD 플레이어는 물론 TV, VCD로 영화 감상이 가능한 AV 시스템, GPS 내비게이션을 옵션으로 마련한 것은 그저 이 차를 승합차, 생계형 차가 아닌 '고급차'로 어필하고자 했던 그들의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옵션 가격이 차값의 10%를 훌쩍 뛰어넘기 때문에 선택률은 많지 않았지만요. 이 시기 순정 내비게이션은 제조사의 격려금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어요.

특이하게도 변속기 종류에 따라 기어레버와 사이드 브레이크의 위치가 바뀌었는데요. 5단 수동은 익숙한 플로어 타입으로, 4단 자동 변속기는 스티어링 휠 뒤편의 컬럼식, 파킹 브레이크도 발로 밟는 족동식으로 자리했습니다. 변속기 레버가 위치하는 중앙 콘솔을 비워둠으로써 1열을 3인승으로 구성하거나 좌석 간 이동을 수월하게 만드는 설계죠.

안전 의식이 높아진 지금은 그 중요성이 많이 희석됐지만, 당시에는 주행 중에도 앞좌석에서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는 '워크스루'를 갖추는 것이 미니밴의 덕목처럼 여겨지던 때였습니다. 덕분에 좁은 곳에 주차하고 조수석으로 내리기 쉬운 것도 깨알 같은 장점이고요. 지금도 수납공간을 만드는 등 실용성을 극대화할 때 이런 설계를 쓰곤 합니다. 전자식 기어레버가 보편화되면서 위치와 형태도 더욱 자유로워졌고요.

시트는 '3+3+3' 구조의 9인승을 기본으로 '2+3+2' 구조의 7인승, 2열 캡틴 시트의 6인승으로 구성됐으며 1열 등받이에 있는 접이식 테이블을 제외하면 뒷좌석 승객을 위한 공조장치나 수납공간은 조금 부족하긴 했지만, 이 시기 승차정원 늘리기에만 초점을 맞춘 어거지에 가까운 3열이 아닌 제대로 된 3열 시트를 갖췄다는 점도 경쟁력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웬만한 소형 세단의 2열과 비슷한 공간에 심지어 3열까지 중앙 암레스트를 갖춰 성인이 타기에도 부족함이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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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뒷좌석 시트를 더블 폴딩, 필요에 따라 아예 간편하게 탈부착할 수 있도록 해서 3열 시트를 떼고 앞좌석을 전부 눕혀 침대차를 만들거나 비슷한 가격의 세단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활한 적재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패밀리카나 업무용 차량에 구분이 없는 자영업자들도 선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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