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조림은 유통기한이 길고 보관이 간편해 누구나 한두 개쯤은 집에 두고 있는 비상식품이다. 특히 외부 활동이 많은 사람이나 혼밥이 잦은 이들에게는 빠르고 손쉽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로 유용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위험이 있다. 바로 찌그러지거나 표면이 손상된 통조림의 ‘미세한 손상’이 오히려 치명적인 식중독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이라는 박테리아는 상처 입은 통조림 속에서 번식하며, 한 번 감염되면 신경계 마비부터 전신 근육 마비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보툴리눔 독소를 생성한다. 단순한 유통기한이나 외관만 보고 판단하기에는 너무도 치명적인 리스크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처럼 ‘정상처럼 보이지만 실은 위험한 통조림의 반전’을 다뤄본다.

1. 찌그러진 통조림, 겉만 멀쩡해 보여도 내부는 이미 오염됐을 수 있다
통조림 캔은 기본적으로 무균 상태에서 진공 밀봉되어야 식품으로서 안전성이 보장된다. 그러나 외부 충격에 의해 캔이 찌그러지거나 눌렸을 경우, 표면의 미세한 금속 변형이 내부 코팅 필름을 손상시키고, 미세 균열을 만든다. 이 틈은 박테리아가 침투하기에 충분한 공간이 된다.
특히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은 산소가 없는 밀폐 공간에서 빠르게 증식할 수 있는 혐기성 세균으로, 실온 보관된 손상된 통조림 안에서 독소를 분비해 식중독을 넘어 신경마비까지 유발할 수 있다. 보툴리눔 독소는 단 몇 마이크로그램만으로도 성인의 신경계를 마비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독성 물질이다. 통조림이 보관의 상징이 아니라, 숨겨진 위험의 통로가 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2. 박테리아는 고온 가열로도 완전히 제거되지 않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끓이면 괜찮다”는 생각으로 통조림을 데워 먹지만, 이는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 보툴리눔 독소는 100도씨 이상에서 수 분간 가열하면 분해되지만, 이 독소를 만들어내는 균주의 포자(씨앗)는 120도 이상에서 장시간 가열하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즉, 일반적인 조리 과정으로는 보툴리눔 포자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으며, 포자가 다시 발아하여 장내에서 독소를 생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조림을 오랫동안 방치하거나 손상된 채로 실온 보관했다면,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이미 포자균이 내부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수 있는 위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3. 변형된 캔 표면은 금속 용출 위험까지 동반한다
찌그러진 통조림이 단순히 미관상의 문제가 아닌 이유는 또 있다. 대부분의 통조림은 내부에 얇은 에폭시 계열 수지 코팅이 되어 있어, 음식이 금속과 직접 접촉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외부 압력으로 인해 캔이 휘거나 표면에 미세 균열이 생기면 이 코팅이 벗겨지거나 찢어지면서 식품이 금속과 직접 닿게 된다.
이 경우 음식 속으로 납, 주석, 알루미늄 등의 금속 성분이 소량씩 용출될 수 있고, 장기적으로 신경계 및 간 기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산성 식품이 담긴 통조림(예: 토마토소스, 과일통조림)은 금속 이온과 반응하기 쉬운 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에 위험성은 더 커진다.

4. 보툴리눔 중독은 흔치 않지만, 한 번 발생하면 회복이 어렵다
보툴리눔 식중독은 국내에서 자주 발생하는 질병은 아니지만, 발생했을 때 치사율이 매우 높고 회복이 느리며, 대부분 중환자실에서 장기 치료가 필요하다. 이 박테리아가 생성하는 신경독소는 신경전달물질 방출을 차단하여, 근육 마비·호흡 부전·시력 장애·연하 곤란 등을 유발한다.
치료를 위해선 항독소 혈청이 필요한데, 이조차도 노출 후 수 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급격히 감소하며, 중증의 경우 호흡기 삽관이나 기계호흡이 동반되어야 한다. 결국 사소한 통조림 손상 하나가 수 주 혹은 수 개월의 신체 마비, 혹은 영구적인 후유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