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의 조직개편 논의가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산하기관들의 인사 공백이 가시화하고 있다. 국내 벤처캐피털(VC)과 프라이빗에쿼티(PE)에 마중물을 공급하는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의 경우 임기만료를 앞둔 최고경영자(CEO)의 후임 선임 절차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28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허성무 성장금융 대표는 2022년 9월1일 취임해 올해 8월31일 3년의 임기가 만료된다. 성장금융 임원은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을 받아 후보를 선발한 뒤 각 기관의 협의와 주주총회를 거쳐 선임한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주주사로 참여하는 기관들이 임원 후보를 직접 추천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CEO 선임 절차는 임기 종료를 두어달 앞두고 시작되지만 성장금융은 이에 대한 공고조차 내지 않은 상황이다. 성장금융의 규정상 CEO는 공백이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에 후임 대표 선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허 대표의 임기는 자동으로 연장된다.

허 대표와 같은 시기에 사내이사를 맡은 이상호 전무(경영기획본부장) 역시 8월31일 임기를 마칠 예정이다. 경영기획과 인사, 재무, 홍보, 공시, 경영지원 등을 총괄하는 이 전무는 후임자 없이 퇴임할 것이 유력시된다. 이에 성장금융의 경영공백이 가시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앞서 허 대표, 이 전무와 함께 사내이사로서 투자를 총괄(CIO)해온 조익재 전무(투자운용본부장)도 2월 임기만료로 퇴임했다. 이 또한 후임 인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장철영 실장의 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2022년 9월 선임된 김대현 사외이사 역시 8월 말에 만 3년을 맞는다. 성장금융의 사외이사 임기가 보통 2년인 점을 고려하면 이번에 임기가 만료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성장금융의 고위경영진 인사가 순조롭지 못한 것은 금융위의 조직개편 논의 때문이다. 성장금융의 주요주주는 △한국거래소(19.7%) △한국예탁결제원(19.7%) △한국금융투자협회(19.7%) △한국증권금융(19.7%) △산업은행(8.7%) △기업은행(7.4%)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 4.8%) 등이다. 대부분 금융위의 입김이 강한 공기업들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금융위는 국내 금융정책을 기획재정부로 넘겨 이곳에서 국내외 금융정책을 총괄한다. 금융위는 외환위기 직후의 ‘금융감독위원회’로 돌아가 금융감독 정책만 담당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금융위의 존폐가 달려 있다 보니 임기만료를 앞뒀나 이미 임기가 끝난 산하기관의 인사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며 “산은과 기은, 수출입은행 등 대형 국책은행 인사가 끝난 뒤 규모가 작은 성장금융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후임 인사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9월이면 성장금융 이사진 중 3개 안팎의 빈자리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뒤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벤처투자 확대 논의가 본격화하는 시점인 점을 고려하면 성장금융의 경영공백 가능성이 우려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행히 성장금융의 주업무인 출자사업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연초부터 성장사다리펀드2(딥테크, 기후대응, 세컨더리 분야), IBK성장M&A펀드(2차), K-콘텐츠 미디어 전략펀드, 핀테크혁신펀드 6차, 반도체생태계펀드, 은행권 중견기업 밸류업펀드, 은행권 기후기술펀드2호, 부산 미래산업 전환펀드 1호, 기술혁신전문펀드 6호 등 위탁운용사 선정 공고와 서류심사, 최종 선정 등이 순조롭게 이뤄졌다.
VC 관계자는 “허 대표가 후임 인사가 이뤄질 때까지 회사에 머무르고 장 CIO가 전결권을 행사하며 성장금융의 출자사업은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다”며 “다만 주요 경영진의 공백 기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후임 선정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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