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대개 어떤 사실을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이를 적는 행위나 그런 글을 뜻하며, 때로는 운동 경기 따위에서 세운 성적이나 결과를 수치로 나타내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야구에서 기록은 ‘Record’와 ‘Scoring’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갖는다. 자고로 야구란 경기 중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한 장에 적어 남길 뿐만 아니라, 선수와 관련된 내용을 수치화해 한 해를 결산하는 기록의 스포츠. 숫자는 선수의 성적이자 몸값의 척도가 되며, 구단의 다음 계획을 위한 발판이 된다. 그렇기에 모든 기록은 역사 그 자체가 된다. 그들은 알까. 자신도 모르는 새에 야구 역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기는 중이라는 사실을. (9월 11일 작성)
에디터 이지인 사진 황미노, 기아 타이거즈

#김도영
지난 8월 15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 누군가는 간절히 바랐을 홈런이 터졌다. 바로 역대 최연소 30홈런 30도루(이하 30-30) 달성을 목전에 뒀던 김도영의 시즌 30번째 홈런이었다. 이미 30도루를 완성해 둔 김도영은 상대 선발 투수 헤이수스의 공을 제대로 타격해 중앙 담장을 넘겼고, 이로써 KBO리그 역사상 아홉 번째로 30-30을 달성한 선수가 됐다. 그리고 이번 기록이 더욱 유의미한 이유는, 김도영이 그 누구보다 빠른 페이스로 고지에 올랐기 때문이다. 종전 기록이었던 1996년 박재홍(전 현대 유니콘스)의 22세 11개월 27일을 28년 만에 20세 10개월 13일로 갈아치웠으며, 2015년 에릭 테임즈(전 NC 다이노스)의 112경기보다도 1경기 빠른 111경기 만에 달성한 쾌거였다.
고교 시절부터 공수주를 겸비한 5툴 플레이어로 주목받은 김도영은 ‘호랑이의 해’인 2022년 1차 지명으로 기아에 입단했고, 당해 시범 경기에서 타율(0.432), 안타(19개), OPS(출루율+장타율 1.068) 1위에 오르며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탓일까. 정규 시즌에서는 그 기세를 잇지 못했고, 2023시즌 역시 시범 경기에서 활약했음에도 시즌 초반 발목 골절 부상으로 수술을 받아 6월 말이 돼서야 복귀했다. 그렇게 페넌트 레이스 144경기 중 84경기에 나선 김도영은 타율 0.303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자신이 될성부른 떡잎임을 입증했다.
그리고 ‘아기호랑이’ 김도영이 본격적으로 발톱을 드러낸 건 올해였다. 그는 4월에 리그 최초 월간 10홈런-10도루의 주인공이 됐으며, 두 달여 뒤엔 시즌 첫 번째이자 리그 통산 다섯 번째 전반기 20홈런-20도루를 달성했다. 그뿐만 아니라 7월엔 역대 최소 타석 ‘내추럴 사이클링 히트(안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차례대로 때려내는 것)’로 팬들의 마음을 다시금 들썩이게 한 건 물론, 국내 선수로서는 24년 만에 30-30고지에 오르며 쉼 없이 커리어하이를 경신하고 있다. 그야말로 KIA가 시즌 내내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데 일등공신으로 자리하는 중.

#호타준족
김도영에 의해 참으로 오랜만에 소환된 기록인 30-30. 왜 30-30은 대기록일까. 단순하게도, 어렵기 때문이다. 30홈런을 때려내는 거포형 타자는 발이 느릴 가능성이 크고, 30개의 도루에 성공하는 빠른 발의 타자에게서 폭발적인 장타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말 그대로 수준급의 파워와 스피드를 고루 갖춘 타자만이 가질 수 있는 기록인 셈이다. 당장 이번에 30-30클럽에 가입한 김도영이 역대 아홉 번째로, 4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KBO리그에서도 달성자의 숫자가 아직 두 자릿수를 채 넘기지 못할 정도다.
KBO리그에서의 30-30은 과거 현대 유니콘스 박재홍으로부터 그 역사가 시작한다. 1996시즌에 데뷔하자마자 30홈런과 36도루로 리그 최초의 30-30을 달성하더니, 1998년과 2000년에도 다시금 고지에 오르며 역대 최강의 호타준족으로 이름을 남겼다. 놀라운 건 그가 30-30을 달성했던 3시즌 중 1996년과 1998년은 126경기 체제로, 매년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이하 MLB)에 비해 턱없이 적은 경기만을 치렀다는 것. 만약 더 많은 경기를 치렀다면, KBO리그 최초의 40홈런-40도루(이하 40-40)의 주인공은 박재홍이었을 수도 있겠다. 여기에 2000년엔 3할-30홈런-30도루-100타점-100득점을 포함해 타점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던 그. 한때 ‘리틀쿠바’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준 박재홍은, 통산 300홈런-267도루라는 엄청난 누적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박재홍의 뒤를 이은 건 바로 이종범. 타이거즈 소속으로서 30-30 클럽에 처음으로 가입한 이종범은, 해태-KIA 타이거즈의 역대 두 번째 영구결번 선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는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만큼이나 폭발적인 주력과 주루 센스를 자랑했고, 데뷔 시즌 73도루를 시작으로 2년 차엔 84도루를 성공시키는 등 KBO리그 도루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 이후로도 한 시즌 50개를 훌쩍 넘기는 페이스로 베이스를 훔쳤고, 도루 성공률이 80%가 넘을 정도로 이종범의 주루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오죽하면 ‘이종범이 출루하면 1점을 낸다’라는 말이 있었을까. 문제는 이러한 스피드를 가진 동시에, 방위병으로 근무하면서 홈 경기에만 출전한 1995시즌(9위)을 제외하고 매년 홈런 리그 5위 안에 들 정도로 장타력 또한 수준급이었다는 것. 결국 파워와 스피드가 완숙 단계에 다다른 1997년, 이종범은 30홈런(2위)-64도루(1위)의 성적으로 마침내 사상 두 번째 30-30클럽 가입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이렇게 KBO리그 출범 후 17년 동안 단 두 명밖에 달성하지 못했던 30-30이었지만, 역대급 타고투저 시즌으로 유명한 1999년에만 홍현우(해태 타이거즈)와 이병규(LG 트윈스), 제이 데이비스(한화 이글스)까지 총 세 명의 선수가 기록을 달성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우선 당해 2루수로 전향한 홍현우는 무려 34홈런 111타점 31도루로 선수 인생의 최전성기를 맞이했으며, 이병규는 지금까지 유일무이한 ‘잠실 연고팀 30-30’ 달성 선수로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제이 데이비스는 1999시즌 30-30클럽 가입을 시작으로 7년간 KBO리그에서 활약한 역대 최장수 외국인 타자. 이 시즌엔 30-30을 제외한 20홈런-20도루 달성자도 세 명(신동주, 양준혁, 송지만)이나 될 정도로 유독 기록이 쏟아진 한 해였으며, 이듬해 박재홍(32홈런-30도루) 이후로 한동안 30-30클럽 가입자가 나오지 않은 까닭에 아직 역사적인 시즌으로 기억되고 있다.
2000년 박재홍 이후로 무려 14년이나 그 명맥이 끊긴 30-30. 하지만 그 역사를 끌어올리다 못해 새 지평을 연 선수가 KBO리그에 등장했으니, 바로 NC 다이노스의 창단 첫 외국인 타자 에릭 테임즈였다. 그는 입단 첫해였던 2014년만 해도 자신의 존을 명확히 갖고 적극적으로 배트를 휘둘러 장타를 생성해 내는 거포형 타자에 가까웠지만, 2년 차였던 2015년엔 타격, 주루, 수비까지 리그 최상위권에 머무는 완전체가 되며 ‘몬스터 시즌’을 보냈다. 47홈런-40도루로 KBO리그를 넘어 아시아 최초로 40-40클럽에 가입한 건 물론, 타율 1위(0.381), 안타 4위(180), 홈런 3위(47), 타점 2위(140), 득점 1위(130), 도루 5위(40), 출루율 1위(0.498), 장타율 1위(0.790)로 타격 8개 부문에서 상위 다섯 명 안에 들었다. KBO리그 역사상 단일 시즌 최고의 타자를 뽑을 때면 늘 2015시즌의 테임즈가 거론될 정도니, 이 해 테임즈의 퍼포먼스가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KBO를 넘어
그렇다면 다른 리그에서는 어떨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MLB의 한 시즌은 162경기의 대장정이기에 30-30클럽에 가입한 선수를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 2024시즌까지 30-30이 달성된 횟수는 자그마치 70회가량(40-40 포함). 그 면면을 살펴보면 배리 본즈, 알폰소 소리아노 등 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남은 호타준족들의 이름이 가득하다. 특히 MLB 역사에 남을 부자(父子) 선수인 바비 본즈와 배리 본즈가 역대 최다인 5회 달성자로 이름을 올렸고, 신인 자격으로서는 2012년 LA 에인절스의 마이클 트라웃이 유일하게 30-30고지를 점령했다.
그리고 MLB에선 앞으로 30-30 달성자를 더욱 자주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2023시즌부터 ‘스피드업’의 일환으로 견제구 횟수를 제한한 데 이어, 경기의 역동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베이스의 크기 또한 유의미하게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주자들이 과감하게 베이스를 훔치는 경우가 증가했으니, 30-30클럽 가입자가 늘어가는 건 당연지사. 실제로 작년에만 훌리오 로드리게스(시애틀 매리너스),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프란시스코 린도어(뉴욕 메츠), 바비 위트 주니어(캔자스시티 로열스)까지 무려 4명이나 30-30을 성공시켰다.
문제는 MLB에서 야구깨나 한다는 선수 중에 30-30을 넘어 40-40에 도전장을 내민 선수까지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는 거다. 2022시즌까지만 해도 40-40은 MLB에서도 단 네 명밖에 달성하지 못했을 정도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던 터. 2006년 알폰소 소리아노(46홈런-41도루) 이후로는 그 누구도 오르지 못한 고지였지만, 앞선 변화가 찾아온 2023시즌에 이르러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41홈런-73도루)가 또 하나의 40-40클럽 가입자가 된 것은 물론 전인미답의 40홈런-70도루를 달성하며 야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24시즌, LA 다저스에 새 둥지를 튼 오타니 쇼헤이가 MLB 역대 최소 경기인 126경기 만에 40-40클럽에 가입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는 아시아 출신 선수로서는 최초이자, 다저스 구단 역사에서도 전례가 없던 일. 특히 그는 지난 8월 23일(현지 시각)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9회 말 2아웃에 팀을 승리로 이끄는 끝내기 그랜드슬램으로 마지막 홈런을 장식하며, 그 누구보다 극적으로 40-40을 달성한 주인공으로 남았다.
다만 오타니의 역사가 시작된 일본 프로야구(이하 NPB)에서는 의외로 위와 같은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다. 일단 NPB에서는 30홈런과 30도루만이 아닌, 3할 타율까지 동시에 기록했을 때 ‘트리플 쓰리’라고 일컬으며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때 NPB 선수의 조상 격인 이와모토 요시유키, 벳토 카오루, 나카니시 후토시, 1980~90년대의 미노다 코지, 아키야마 코지, 노무라 켄지로, 21세기의 가네모토 도모아키, 마쓰이 가즈오, 야마다 테츠토, 야나기타 유키까지 단 10명 만이 트리플 쓰리를 달성했다. 설령 KBO리그나 MLB처럼 단순히 30홈런과 30도루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단 2명(장훈, 이구치 타다히토)이 추가될 정도로 그 달성자가 많지 않은 편.
일본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타자와 중장거리 타자가 극명히 나뉘었고, 2010년대부터는 투고타저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면서 호타준족이라고 할만한 선수가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도루의 특성상 타이밍에 맞춰 폭발적으로 스타트를 끊고 내달려야 하며, 슬라이딩 과정에서 거친 몸싸움이 동반되는 게 사실. 이에 장타력을 갖춘 선수들이 도루를 시도하는 경우는 점점 감소했고, 그 결과 올 시즌 두 자릿수 홈런과 도루를 동시에 달성한 선수가 19홈런-10도루를 기록한 콘도 겐스케(소프트뱅크 호크스) 한 명뿐인 현상이 벌어졌다. 이조차도 30-30은커녕 20-20과도 거리가 있다는 게 포인트. 이렇게 도루가 부상 우려가 적고 남달리 빠른 발을 가진 교타자의 전유물로 전락하면서, NPB에서는 새로운 기록의 탄생을 보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유일무이
이렇게 나라마다 각기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으나, 분명한 건 이제 우리는 새로운 영역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전인미답의 ‘50홈런-50도루(이하 50-50)’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오르지 못한 고지이기에, 50-50은 그야말로 불가능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터였다. 당장 선수 생활 중 50홈런 시즌과 50도루 시즌을 보유한 적 있는 선수로 범위를 넓혀 봐도 배리 본즈(1990년 51도루, 2001년 73홈런)와 브래디 앤더슨(1992년 53도루, 1996년 50홈런) 단 두 명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만약 한 시즌에 50홈런을 기록할 만큼 강한 파워를 가진 선수라면, 엄청나게 많은 근육량으로 인해 몸이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이는 도루에 필요한 주력을 갖추는 데 큰 마이너스 요소이며, 자칫 주루 과정에서 자신의 근육량을 견디지 못해 부상을 입기 십상이다. 게다가 50홈런을 때려낼 정도의 장타력이 있다면, 애써 베이스를 훔치면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 선택이기도 하고.
하지만 올해 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앞서 40-40 달성자로 소개된 오타니다. 그는 40-40을 넘어 MLB 최초로 한 시즌 45홈런과 45도루를 동시에 달성한 선수로 이름을 올렸으며, 9월 11일 기준으로 46홈런-47도루를 기록하며 사상 첫 50-50을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다. 먼 나라 이야기, 아니 만화 속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던 50-50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의미 깊은 2024시즌이 될 듯하다.
이 기사가 출판될 때면 2024시즌의 모든 정규 시즌 일정이 마무리됐을 시점이다. ‘야구 천재’ 혹은 ‘야구 기계’로 여겨지는 오타니 쇼헤이의 위대한 도전 역시 그 결과가 나왔을 터. 그렇기에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 여러분에게 질문을 건네본다. 지금의 당신은, 역사의 탄생을 지켜봤는가?
#숫자에 열광하는 이유
기록이란 표면적으로는 그저 숫자놀이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고지에 오르기 위한 선수들의 땀과 노력이 있으며,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려는 선수들의 뜨거운 열정과 도전 정신이 있다. 그렇기에 야구 경기에서 탄생하는 여러 가지 숫자엔 수많은 서사가 담겨 있고, 이것이 야구팬들이 숫자에 열광하는 이유다.
최근 NC의 손아섭은 2,505안타로 통산 최다 안타를 기록한 선수가 됐고, KIA 양현종은 통산 2,049탈삼진으로 역대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렇게 베테랑들이 기록적인 한 해를 보는 시점에 ‘막내급’인 김도영이 30-30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으니, KIA 팬뿐만 아니라 모든 KBO리그 팬들이 흥분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게 당연지사. 앞으로도 팬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새로운 기록의 탄생을 기대하며, 오늘도 또 하나의 숫자를 새겨나갈 모든 선수의 도전을 응원해보자.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4년 162호 (10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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