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여력 없는데 공급 과잉…만성병 된 중국 디플레

한우덕 2024. 9. 14.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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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차이나 워치] 시스템 위기에 빠진 중국 경제
중국 ‘월병 경제’에도 불황의 그림자가 짙다. 저가 제품만 팔린다. 시장감독관리국 직원들이 허베이(河北)성 준화(遵化)시의 한 상점에서 월병 품질 검사를 하고 있다. [신화뉴스]
중국의 추석 분위기는 ‘월병(月餠, 웨빙)’으로 시작된다. 쇼핑센터, 거리 상점들은 월병을 산처럼 쌓아놓고 판매 경쟁을 벌인다. 포장은 점점 화려해지고 덩달아 가격도 높아만 간다. 월병 제조회사들은 추가 주문을 맞추기 위해 공장을 풀 가동한다. 추석은 언제나 그렇게 풍성한 모습이었다.

올해 분위기는 다르다. ‘3일 일하고, 하루 쉬어요.’ 광둥(廣東)성 선전(深 )의 한 월병 제조회사 직원 샤리(夏莉)씨는 월병 판매 상황을 묻는 현지 언론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작년만 하더라도 전 직원 야근을 했는데 올해는 아예 단축 근무를 하고 있다. 작년 추석 때 1만3000 박스를 팔았는데 올해는 1만 박스도 어려울 듯싶단다.

올 월병 시장에서 새로운 유행어가 하나 생겼으니, 바로 ‘친민(親民)가격’이다. ‘백성에게 도움이 되는 가격’, 우리 말로는 ‘착한 가격’ 쯤으로 표현된다. 싸야 팔린다는 얘기다.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에서 발행되는 원저우완바오(溫州晩報)는 “작년 1박스에 500위안(약 9만4000원) 넘은 상품이 수두룩했지만 올해는 가장 비싼 게 350위안(6만6000원)”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팔리는 월병 대부분이 50위안(9400원) 이하란다.

지난해 중국의 월병 총 판매액은 약 220억 위안(4조1500억원). 중국제빵공업협회는 올해는 약 200억 위안(3조7000억 원)에 그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실제 판매액이 감소한 것은 처음이다. 이어지는 성장세에 익숙했던 업계 종사자들은 썰렁한 분위기에 적잖이 당황하는 표정이다.

생산자물가, 23개월 연속 하락
월병 시장은 오늘의 중국 경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 소비가 일어나지 않으면서 지난달 소비자물가(CPI)는 0.6% 오르는 데 그쳤다. 제조업의 활동을 보여주는 생산자물가(PPI)는 1.8% 떨어져 23개월 연속 하락했다. 2016년 이후 최장 기간이다. 디플레이션 우려는 높아만 간다.

중국 정부의 올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목표는 5.0%다. 1분기에는 5.3%를 달성해 목표치를 넘겼지만 2분기에는 4.7%로 밀리면서 위험 신호가 켜졌다. 골드만삭스 등 금융 기관들은 성장 목표치를 낮춰 잡고 있다.

그래픽=이윤채 lee.yoonchae@joongang.co.kr
이유는 많다. 부동산 시장 위축, 지방 정부 부채 급증, 미국의 무역 제재…. 그러나 이런 표면적 이유 저변에 깔린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 위기는 단순 경기 사이클이라기보다는 체제와 관련된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중국 경제는 아직도 코로나19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국가통계국이 발표하는 소비자신뢰지수에 드러난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120포인트 안팎을 오르내리던 지수는 2022년 4월 급락한 뒤 90포인트 아래에서 머물고 있다(그래프 왼쪽). ‘제로 코로나 정책’이 원인이었다. 상하이 등 주요 도시의 봉쇄로 비롯된 불안감이 여전히 소비 심리를 짓누르고 있다. 여기에 부동산 충격이 겹치면서 소비는 축 늘어져 있다. 전형적인 정책 실패다.

중국 정부가 보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작년 하반기 이후 부동산 시장에 가했던 각종 규제를 풀기 시작했다. 심지어 지방 정부가 나서 남아도는 아파트를 사들이도록 했다. 그런데도 소비 심리는 깨어날 줄 모른다. 소비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전체 GDP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55%. 선진국이 대략 70% 안팎에 이른다는 걸 고려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소비 여력이 낮으니, 시장은 언제나 공급 과잉이다.

사회 배분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다. 기업의 이익은 3개 경제 주체가 나눈다. 정부는 세금으로 걷어가고, 주주는 배당으로 챙기고, 종업원은 급여로 받는다. 그들은 서로 많이 가져가겠다고 싸운다. 노동자 파업은 이를 보여주는 현상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종업원(소비자)들은 그 게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한다. 총파업? 그건 엄두도 못 낸다.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으니 종업원들은 회사 이익 배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임금이 적으니 가계 소득이 낮고 소비가 위축된다. 디플레는 만성병이 됐다.

그래픽=이윤채 lee.yoonchae@joongang.co.kr
당국의 민영기업 옥죄기는 계속된다. 알리바바 그룹은 지난달 30일 워크아웃 족쇄에서 해방됐다. 2021년 4월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약 182억 위안(약 3조4000억원)에 이르는 벌금과 함께 시정 워크아웃에 처한 지 3년 만이다. 이날 발표로 알리바바 주가는 급등했다. 플랫폼 기업에 대한 당국의 각종 규제가 해제될 것이라는 기대감 덕택이다. 실제로 중국 당국은 요즘 기회만 있으면 민영기업을 띄운다.

과연 그럴까? 민영기업은 중국 경제 성장의 주역이다. 세수의 50%, GDP의 60%, 기술 혁신의 70%, 도시 취업의 80%, 기업 숫자의 90% 이상을 차지한다는 찬사들 듣는다(‘56789 경제’). 그러나 민영기업을 보는 중국 공산당의 시각은 다르다. 황야성(黃亞生) 미국 MIT교수는 최근 출판한 책 『중국 필패』에서 “중국공산당은 민간 부분을 성장 엔진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며 “민영기업은 공산당이 설계한 정책 덕택에 성장했을 뿐이라고 믿고 있다”고 분석했다. 민영기업은 국가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쥐었다 놨다’할 수 있는 존재라는 시각이다. 이런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민간의 역동성은 살아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각국 “중국은 지독한 디플레 수출국”
시진핑 집권기 들어 금융자산의 민영기업 유입 비율은 더 떨어지고 있다. 2016년 국가 금융 자산의 83%가 국유기업으로 갔고, 민영기업은 11%에 그쳤다. 지금도 그 기조가 유지된다. 중국공산당은 민영기업에 당 지부 설립을 의무화하는 등 통제를 늘리고 있다. 민영기업은 이제 ‘부처님(공산당) 손바닥’ 신세다.

한 번 꺾인 민간부문의 혁신 마인드는 다시 살아나기 어렵다. 생태계가 크게 훼손됐기 때문이다. IT 관련 기업이 특히 심하다. 직원들은 35살만 되면 ‘노령자’ 취급을 받아 퇴직 걱정에 시달리고, 대졸 청년들은 맘에 맞는 일자리를 잡지 못해 길바닥에 누워 있다.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은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고 했다. 오로지 GDP 수치로 지방 공무원을 평가했다. 해당 지방의 경제가 높아지면 승진했고 중앙 정치 무대로 진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양이의 색깔이 중요한 시대’다. 당에 대한 충성도,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도, 청렴성 등이 평가의 중심이다.

시진핑 집권 이전 지방 정부 공무원은 기업들과 자주 만나 애환을 들어주고 지원 방안을 고민했다. 공무원 스스로 투자 유치에 나서기도 했다. GDP 수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랬다는 부패 관료로 몰리기에 십상이다. 2012년 시진핑 체제 등장 이후 반부패 투쟁으로 옷을 벗은 공무원이 약 400만 명에 달한다. 당연히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경제 현장이 잘 돌아갈 리 없다. 부패는 성장의 필요악이었던 셈이다.

시스템에서 비롯된 위기는 중진국 함정 탈출을 어렵게도 한다. 선진 경제 진입은 지갑 두꺼워진 중산층이 대거 소비에 나서고, 경제 구조가 제조업에서 소비 중심으로 바뀌어야 가능하다. 우리 역시 80년대 말, 90년대 초 전국적인 노동자 임금 투쟁을 통해 기업의 부(富)가 가계로 이전되는 계기를 마련했고, 중진국 함정 탈출의 동력을 마련할 수 있었다. 시진핑의 중국은 그게 안 된다. 공산당 권위주의가 경제의 탄력성을 억누르면서 소비 중심의 구조 전환은 쉽지 않은 과제가 됐다.

중국은 ‘신질생산력(新質生産力)’ 육성으로 성장 엔진을 하이테크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해당 산업을 지정하고, 돈을 쏟아붓는다. 그러나 이는 제한된 ‘파티’일 뿐이다. 해당 산업의 혁신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소비 시장 규모를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과잉 생산 문제를 가중할 뿐이다. 중국이 세계 각국으로부터 ‘지독한 디플레 수출국’이라고 비난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생한 중국의 최신 동향과 깊이 있는 분석을 전해주는 차이나 워치는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소장과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가 번갈아 연재합니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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