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서 내부 봉기가 가능? 탈북 외교관이 내린 뜻밖의 진단 [스프]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2024. 9. 27. 09:03
[안정식의 N코리아 정식] '임계점' 가까워졌다는 리일규 전 북한 참사
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가 지난해 말 탈북했습니다. 북한에서 꽤 잘나가던 외교관이었는데요. 북한 체제에 대한 환멸과 북한 사회에서 더는 미래를 찾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탈북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달(9월) 초 리일규 전 참사를 서울 목동 SBS 본사로 초청해 1시간 가까이 심층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리 전 참사의 탈북 과정 등은 이미 다른 언론을 통해 공개된 상태였기 때문에, 제가 관심 있었던 부분은 북한 엘리트가 바라보는 북한 체제에 대한 진단이었습니다. 다소 거대 담론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외부의 북한 전문가들이 보는 시각과 북한 체제를 직접 겪어본 엘리트가 보는 시각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김정일 집권기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고난의 행군'입니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뒤 경제난에 연이은 홍수가 겹치면서 북한 사회는 최악의 상황으로 굴러떨어졌습니다. 배급제도가 붕괴되면서 배급을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었고,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던 이 시기 북한에서 굶어 죽은 사람들이 수백만에 이른다는 추정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경제 상황은 그 이후에도 특별히 나아진 것은 없지만, 주민들이 이제는 배급에 의존하지 않고 장사를 통해 스스로 먹고 살길을 찾기 시작하면서 1990년대 중반 같은 대규모 아사 사태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그렇다면, '김정은 시대'는 '김정일 시대'보다는 나아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리일규 전 참사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 중반 같은 대규모 아사는 없을지 몰라도,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를 비교해 보면 예전보다 못하면 못했지 더 나아졌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김정은 시대가 이전보다 더 못해졌다고 보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감시 통제가 훨씬 강화됐다는 점입니다.
김정은 시대 들어 주민들에 대한 감시 통제를 강화하면서 주민들의 생계 활동에 대한 간섭도 더 심해졌다는 게 리 전 참사의 얘기입니다.
'김정은 시대'가 '김정일 시대'보다 못하다는 평가와 함께 리 전 참사의 언급 중에 관심을 끄는 부분은 북한 주민들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 관련 공부를 하다 보면 대체로 도달하게 되는 결론은 지금과 같은 북한 체제에서 내부 봉기에 의한 정권 붕괴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폭압적 통치 체제가 견고하고, 2중 3중으로 감시 체제가 작동하고 있으며, 반체제 세력의 구심점조차 찾을 수 없는 북한 체제에서 집단적인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개발국에서 정권을 붕괴시키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인 군부 쿠데타도 북한에서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북한의 군대는 당의 군대로, 부대 각 단위마다 정치 사상을 담당하는 당 간부들이 파견돼 야전 군인들이 혹시라도 다른 마음을 먹지 않는지 감시합니다. 쿠데타가 가능하려면 최소한 연대나 사단 병력 등이 동원돼 정권을 공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북한 군대에서는 겹겹으로 돼 있는 감시를 피해 병력을 동원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지금의 북한 체제에서는 민중에 의한 봉기든 군인들에 의한 쿠데타든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하지만, 리일규 전 참사는 북한 체제가 폭발의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억눌릴 만큼 억눌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이 정말 집단적으로 들고 일어나는 일이 가능할까?
리일규 전 참사는 김일성, 김정일 시대 때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듯이, 앞으로도 지금까지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북한이 이른바 '3대 악법'이라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청년교양보장법을 만들어 북한 주민들을 극도로 옭아매고 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민심이 정권으로부터 많이 돌아섰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3대 악법'은 남한 드라마 보고 노래 부르고 남한 말투를 따라 하기만 해도 노동교화형에 처할 수 있고, 조직적으로 유포하면 최대 사형까지 처할 수 있는 엄청난 인권 유린법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가 지난해 말 탈북했습니다. 북한에서 꽤 잘나가던 외교관이었는데요. 북한 체제에 대한 환멸과 북한 사회에서 더는 미래를 찾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탈북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달(9월) 초 리일규 전 참사를 서울 목동 SBS 본사로 초청해 1시간 가까이 심층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리 전 참사의 탈북 과정 등은 이미 다른 언론을 통해 공개된 상태였기 때문에, 제가 관심 있었던 부분은 북한 엘리트가 바라보는 북한 체제에 대한 진단이었습니다. 다소 거대 담론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외부의 북한 전문가들이 보는 시각과 북한 체제를 직접 겪어본 엘리트가 보는 시각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김정은 시대', '김정일 시대'보다 나아졌나?
북한의 경제 상황은 그 이후에도 특별히 나아진 것은 없지만, 주민들이 이제는 배급에 의존하지 않고 장사를 통해 스스로 먹고 살길을 찾기 시작하면서 1990년대 중반 같은 대규모 아사 사태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그렇다면, '김정은 시대'는 '김정일 시대'보다는 나아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리일규 전 참사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 중반 같은 대규모 아사는 없을지 몰라도,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를 비교해 보면 예전보다 못하면 못했지 더 나아졌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리일규ㅣ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김정은 집권 12년 동안 인민들의 삶이 나아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못해졌으면 못해졌지.
김정은 시대가 이전보다 더 못해졌다고 보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감시 통제가 훨씬 강화됐다는 점입니다.
안정식ㅣ북한전문기자
(북한 주민들에 대한) 감시 통제는 상시적으로 있던 것 아닌가요?
리일규ㅣ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상시적으로 있었는데 그게 김정은 시대에 와서 좀 더 강화가 됐죠.
김일성 시대 때는 많은 경우에 '교양 사업'과 '장악 통제 사업'이 결합이 됐는데, 그중에서 '사상 교양 사업'을 우선시했습니다.
김정일 시대에 와서는 '고난의 행군'이 들어오고 나라가 무너지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에서 군대를 '선군정치' 하지 않았습니까. 군대를 강화하는 데 모든 것의 화력을 집중하고.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일단은 '우리는 외부의 군사적 공격으로 무너지지 않아' 이런 자신감이 생겼거든요. 대신 '우리가 무너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내부적인 변화 붕괴'인데, 그 내부적인 변화 붕괴를 막겠다고 하니까...
두 가지인데, 하나는 2중 3중의 감시 통제 이것을 강화하는 것이랑, 플러스 (또 하나는) 공포정치 이게 결합이 되다 보니까 지금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 전례 없는 감시 강화가 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 시대 들어 주민들에 대한 감시 통제를 강화하면서 주민들의 생계 활동에 대한 간섭도 더 심해졌다는 게 리 전 참사의 얘기입니다.
리일규ㅣ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내가 조금이라도 자체적으로 벌어먹고 살겠다고 하면 이건 '반당' 쪽이 돼서 안 된다. 이건 '비사회주의'여서 안 된다 그런 태클을 계속 거니까, 사람들은 불만이 쌓이는 것이고.
북한 내부 폭발, 임계점에 거의 도달?
북한 관련 공부를 하다 보면 대체로 도달하게 되는 결론은 지금과 같은 북한 체제에서 내부 봉기에 의한 정권 붕괴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폭압적 통치 체제가 견고하고, 2중 3중으로 감시 체제가 작동하고 있으며, 반체제 세력의 구심점조차 찾을 수 없는 북한 체제에서 집단적인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개발국에서 정권을 붕괴시키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인 군부 쿠데타도 북한에서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북한의 군대는 당의 군대로, 부대 각 단위마다 정치 사상을 담당하는 당 간부들이 파견돼 야전 군인들이 혹시라도 다른 마음을 먹지 않는지 감시합니다. 쿠데타가 가능하려면 최소한 연대나 사단 병력 등이 동원돼 정권을 공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북한 군대에서는 겹겹으로 돼 있는 감시를 피해 병력을 동원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지금의 북한 체제에서는 민중에 의한 봉기든 군인들에 의한 쿠데타든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하지만, 리일규 전 참사는 북한 체제가 폭발의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억눌릴 만큼 억눌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리일규ㅣ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속담에도 아침이 밝기 전에 제일 어둡고 밧줄도 지나치게 잡아당기면 끊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얼마나 주민들이 억압받고 눌리며 살고 있습니까. 그게 한계가 다 있는 법이고, 지금 제가 볼 때는 임계점까지 거의 도달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역사를 돌이켜봐도 어느 역사의 어느 갈피에도 독재자가 영원했던 사례는 없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정말 집단적으로 들고 일어나는 일이 가능할까?
리일규 전 참사는 김일성, 김정일 시대 때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듯이, 앞으로도 지금까지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북한이 이른바 '3대 악법'이라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청년교양보장법을 만들어 북한 주민들을 극도로 옭아매고 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민심이 정권으로부터 많이 돌아섰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3대 악법'은 남한 드라마 보고 노래 부르고 남한 말투를 따라 하기만 해도 노동교화형에 처할 수 있고, 조직적으로 유포하면 최대 사형까지 처할 수 있는 엄청난 인권 유린법입니다.
리일규ㅣ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이 세상에 제가 보건대는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시대 3대를 이어가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김일성 시대 때 지금처럼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게까지 바뀌리라고 누구도 꿈에도 생각을 못 했습니다. (김정일 시대 때) 북한이 '고난의 행군' 같은 그런 위기를 겪으리라고 누구도 생각을 못 했습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포정치의 희생양이 되고, 최근에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청년교양보장법 3대 법이 나왔잖아요. 왜 그런 법이 나왔겠습니까? 옛날에는 이게 다 당적인 통제로 가능했던 일을 이제 당적인 통제로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이 섰으니까 법까지 채택하는 거잖아요. 그 정도로 사람들의 민심이 이제 많이 돌아섰고, 이게 어디서 불꽃이 튕기면 전국적 범위로 확산될 수 있는 위험이 상시 존재한다는 거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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