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승39패' 콜로라도 로키스의 예견된 추락

지난해 뉴욕 메츠는 오랜 족쇄에서 벗어났다. 창단 첫 해 당했던 단일 시즌 최다패 기록을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가지고 갔다.

단일 시즌 최다패 순위

121 - 화이트삭스 (2024)
120 - 메츠 (1962)
119 - 디트로이트 (2003)
117 - 어슬레틱스 (1916)


1962년 메츠에서 뛰었던 우완 크렉 앤더슨(86)은 메츠 팬들을 향해 "이제, 어깨의 짐을 내려놓읍시다. 더 이상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최악이 아니니깐요"라고 말했다. 그 부담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다.

화이트삭스는 운이 좋다. 메츠와 달리 단 1년 만에 최다패 오명에서 벗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콜로라도 로키스가 벌써부터 바닥을 헤매고 있다.

시발점
콜로라도가 내려앉은 건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18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이후 끝을 알 수 없는 하락세가 시작됐다. 그 사이 전력을 지탱한 선수들도 하나 둘씩 떠나면서 팀이 난파선처럼 표류했다. 그나마 믿었던 타격도 점점 위력을 잃었다.

우승 경쟁에서 멀어진 팀들은 리빌딩에 돌입한다. 현재에 투자 비용을 줄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만전을 기한다. 2019년부터 3년간 5할 승률 실패와 지구 4위에 머물렀던 콜로라도도 이 과정을 밟을 것처럼 보였다. 리빌딩은 결심이 섰을 때 빠르게 착수해야 한다.

하지만, 콜로라도는 느닷없이 대형 계약을 성사시켰다. 크리스 브라이언트에게 7년 1억8200만 달러 계약을 안겨준 것이다. 콜로라도 FA 계약 중 최대 규모였다.

크리스 브라이언트 (구단 SNS)

브라이언트는 시카고 컵스 시절 전성기를 구가했다. 2015년 신인왕과 2016년 MVP를 수상했고, 리그 최고 선수로 올라선 2016년에는 컵스의 월드시리즈 우승도 이끌었다. 그 이후에도 올스타에 두 차례 선정됐다.

이러한 선수에게 돈 쓴 것을 두고 비난할 순 없다. 당연히 투자에 인색한 팀이 더 잘못됐다. 그런 측면에서 콜로라도의 브라이언트 영입은 환영 받아야 마땅했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콜로라도는 특정 선수 한 명으로 바뀔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리더였던 놀란 아레나도와 트레버 스토리를 차례로 정리해놓고 브라이언트를 데려온 것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브라이언트는 어깨와 무릎, 발목 등의 부상으로 생산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콜로라도가 기대한 만큼 기여할 수 있을지 불분명했다.

불안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브라이언트는 첫 3시즌 부상 때문에 도합 159경기만 출장했다. <팬그래프> 승리기여도(fWAR)는 -1.3, <베이스볼레퍼런스> 승리기여도(bWAR)는 -1.1이었다. 같은 기간 수령한 돈은 계약금 포함 총 7800만 달러였다.

브라이언트 연봉 구조

2022(30세) - 1700만 / fWAR 0.6
2023(31세) - 2700만 / fWAR -1.2
2024(32세) - 2700만 / fWAR -0.8
2025(33세) - 2600만 / fWAR -0.5
2026(34세) - 2600만
2027(35세) - 2600만
2028(36세) - 2600만


올해도 브라이언트는 아프다. 퇴행성 추간판 질환(lumbar degenerative disc disease)을 앓고 있다. 4월 중순부터 부상자 명단으로 빠졌다. 부상 이전 성적도 11경기 타율 .154로 초라했다.

고액 연봉자가 이렇게 무너지면 팀 분위기가 꺾일 수밖에 없다. 참고로 브라이언트의 계약은 4년 1억400만 달러가 남았다. 지역 매체 <덴버포스트>는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방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감정적으로 처리하기 힘든 부분이다. 퇴로가 막힌 악성 계약이다.

마운드
콜로라도는 공교롭게도 브라이언트가 합류한 2022년부터 지구 최하위로 추락했다. 2023년 103패로 창단 첫 100패 시즌을 당하더니, 작년에도 101패로 2년 연속 100패 수모를 겪었다. 지난 2년간 마운드가 완전히 붕괴됐다.

2023-24 팀 ERA 최하위

4.66 - 워싱턴
4.78 - 화이트삭스
4.92 - 오클랜드
5.58 - 콜로라도


팀 실점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두 번째로 많은 오클랜드가 1688실점이었다. 그런데 콜로라도는 1886점을 내줬다. 경기 당 평균 5.8실점을 했다. 타선이 5점 이상 뽑아야 승부가 될 만한 정도였다.

콜로라도 홈구장 쿠어스필드는 투수들에게 악명 높은 곳이다. 타자친화적을 넘어 타자극단적이다. 해발고도 1600m가 넘는 곳에 위치해 공기 저항이 적어 장타가 쏟아진다.

쿠어스필드 (구단 SNS)

이로 인해 콜로라도는 항상 마운드가 걸림돌이었다. 좋은 투수들을 키우기 힘들었고, 데려오기도 힘들었다. 쿠어스필드에 최적화된 투수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누구도 쿠어스필드를 지배하지 못했다. 2000년대 후반 우발도 히메네스가 그나마 쿠어스필드에서 버틴 투수였다. 그러나 히메네스 역시 전성기가 짧았다.

쿠어스필드 통산 ERA 순위 (30선발)

3.67 - 우발도 히메네스 (66선발)
4.04 - 타일러 앤더슨 (44선발)
4.38 - 호르헤 데라로사 (100선발)
4.40 - 요울리스 차신 (64선발)


콜로라도가 마지막으로 1선발은 둔 건 2021년이다. 그 해 헤르만 마르케스가 12승11패 평균자책점 4.40을 기록했다. 마르케스는 올스타에 뽑히면서 180이닝을 소화했다.

하지만 마르케스도 이듬해부터 부상과 부진에 쓰러졌다. 그러면서 콜로라도는 2022년부터 10승 투수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연패 스토퍼' 역할을 해줘야 할 1선발이 사라지면서 나쁜 흐름을 끊어줄 투수가 없어졌다.

올해도 선발진은 수렁 속에 빠져 있다. 1선발을 맡았던 마르케스는 9경기 1승6패 평균자책점 8.78이다. 당장 DFA(Designated for assignment)가 돼도 이상하지 않다. 가장 많은 경기에 등판한 프리랜드는 10경기 승리 없이 6패 평균자책점 5.68, 피안타율 .381, 피OPS도 1이 넘는 배팅볼 투수가 된 안토니오 센사텔라는 리그 최다패 투수다(1승7패 6.39). 팀 내 최다 2승을 올린 루키 체이스 돌랜더도 평균자책점은 6.28에 불과하다.

지난 겨울 콜로라도는 유의미한 투수 영입이 없었다. 이미 마운드가 꼴찌인 팀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또 평균자책점 최하위였다. 요행에 의한 반전은 없었다.

2025 팀 ERA 최하위

5.28 - 워싱턴
5.37 - 마이애미
5.55 - 볼티모어
5.85 - 콜로라도

*선발진 6.95 (30위) / 불펜진 4.47 (20위)


수뇌부
모든 구단은 구단주의 입김이 강하다. 구단 최대 지주의 의지가 팀 방침을 좌우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구단주가 독단적으로 운영한 팀은 대개 잘 풀리지 않았다. 보직의 분업화가 이뤄지면서 각 직책을 잘 수행했을 때 팀이 좋은 성과를 얻었다.

콜로라도는 몬포트 구단주의 세상이다. 2005년 구단을 인수한 이후 몬포트 가문이 콜로라도를 꿰찼다. 몬포트 가문 아래 콜로라도는 불안정한 시기가 훨씬 길었다. 구단 주요 보직을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만 채웠다.

빌 슈미트 단장도 그 중 한 명이다. 슈미트 단장은 2021년 10월에 부임했다. 그 이전에도 콜로라도 스카우팅 부서에 있었다. 구단 사정을 잘 안다고 볼 수 있지만, 구단이 암흑기에 빠졌을 때도 자리를 보존한 인물이다.

심지어 콜로라도는 레이날도 페르난데스 국제 스카우팅 부서장(1993년) 대니 몽고메리 단장 보좌(1991년) 폴 에긴스 구단 디렉터(1991년) 등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인사가 여럿이다. 고인물이 너무 많고 깊다.

버드 블랙 (게티이미지코리아)

메이저리그는 시대에 맞춰 급변하고 있다. 다른 팀들이 이 변화에 맞춰 대응하는 반면, 콜로라도는 쉬운 길 혹은 아는 길만 택했다. 부임 직후 첫 2시즌을 제외하면 성적이 참담했던 버드 블랙 감독이 이제서야 경질된 것도 콜로라도의 폐쇄적 구조를 보여준다. 한편, <덴버 포스트>는 블랙이 해고된 날에 곧바로 '슈미트 단장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블랙이 나가기 앞서, 콜로라도가 클린트 허들을 타격 코치로 선임한 점이 놀랍다. 허들은 2002-09년 콜로라도 감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허들은 블랙이 해임된 이후 벤치코치가 됐다. 3루코치 워렌 셰퍼가 40세 젊은 지도자라는 것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감독 권한은 누가 행사할지 뻔한 일이다. 콜로라도는 여전히 지나간 인연에 의존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은 몬포트에 의해 일어났다. 모두가 아는 일이다. 콜로라도의 열성 팬인 코미디언 밥 메들스는 "올해 콜로라도가 최악의 시즌을 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그 정도의 굴욕이 아니라면 몬포트를 쫓아낼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직도 시즌 8승밖에 올리지 못한 콜로라도(8승39패)는 현재 승률 기준 134패 페이스다. 작년 화이트삭스보다 13경기를 더 패한다. 실제로 지난해 화이트삭스는 콜로라도와 같은 47경기에서 14승을 거뒀다.

콜로라도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 속해 있다. 올해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는 콜로라도를 제외한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샌프란시스코, 애리조나가 전부 우승을 노린다. 경쟁이 과열된 지구에서 콜로라도가 더 많은 패배를 당하게 되는 건 자명하다. 현재 같은 지구 팀들을 상대로 3승13패다.

콜로라도 vs NL 서부 전적

1승2패 vs 애리조나
0승3패 vs 다저스
1승5패 vs 샌디에이고
1승3패 vs 샌프란시스코


올해 콜로라도가 흑역사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장 바뀔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은 보여줘야 한다.

허울뿐인 변화가 아닌 '진짜' 변화가 필요하다.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