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1차대전 참호전, 6·25 진지전…미사일로 기선 잡기

2024. 11. 23.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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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전 1000일, 전문가가 본 실상
우크라 병사들이 참호전 훈련을 하고 있다. 러 -우크라 전선은 평야와 구릉만 있어 1차 대전 당시 치열했던 참호전이 재연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000일이 지났다. 3일이나 길어도 3주면 함락될 것이라던 우크라이나는 1000일이 지나도록 버티고 있다. 70만 명의 전사상자가 발생한 러시아는 이를 벌충하기 위해 북한에 손을 내밀었고 북한은 1만명이 넘는 북한군을 용병 형식으로 러시아에 파병했다. 양국 간의 전쟁이 국제전으로 비화한 것이다. 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북한군 파병을 명분삼아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본토에 대한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 사용을 허용했다. 자탄 950개가 들어있는 에이태큼스 미사일이 300㎞를 비행해서 목표물 상공에 터지면 축구장 4배 크기의 면적이 초토화된다.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의 봉인이 해제된 것이다. 이에 따라 영국도 사거리 250㎞의 공대지 순항미사일인 스톰 섀도(Storm Shadow)를 우크라이나 공군에 공급했고, 실제로 러시아 영토로 발사됐다. 독일은 AI 드론 4000대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이에 러시아는 초음속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로 반격하고, 제3차 세계대전을 언급하면서 핵무기 사용 카드를 다시 흔들었다.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은 비핵보유국의 어떤 공격도 러시아 핵무기 공격의 대상이 된다는 신 핵독트린을 발표한 것이다. 심지어 ‘중대한 위협’을 주는 재래식 무기 공격에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핵사용 문턱을 한층 낮췄다. 우크라이나를 겨냥한 것이다. 끝물을 향해가던 러-우 전쟁이 갑자기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국제전을 넘어 전쟁이 확전되고 격화되기 시작했다.

우크라 청년, 드론으로 적 300명 해치워
왜 이럴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선거 공약과 무관하지 않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유세 기간에 자신이 당선되면 24시간 내에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가 구상하는 종전안은 영토와 평화의 교환이다. 정전협정이 체결되면 현재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하여 비무장지대를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도 유예하겠다고 했다. 트럼프가 당선되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급해졌다. 현재의 접촉선이 군사분계선이 된다면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게 뺏긴 국토 면적의 20%에 달하는 땅을 수복해야 하고, 러시아는 북한 용병까지 동원해서 우크라이나에게 뺏긴 서울 면적 크기의 쿠르스크를 수복해야 한다. 러시아는 강대국의 위신상 패배를 상상할 수 없고, 우크라이나는 물론 서방세계도 우크라이나의 패배를 수용할 수 없다. 그러니 전투가 격해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 북동부의 돈바스 지역(도네츠크 주, 루한스크 주)으로부터 동부의 자포리자 주, 남부의 헤르손 주와 크림반도까지 점령했다. 우크라이나 북동부로부터 남부까지 1200㎞에 달하는 긴 회랑으로 연결된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이 우크라이나 영토의 20%에 해당한다. 러시아는 2022년 11월 이미 현재의 회랑에 준하는 땅을 확보했다. 전쟁 개시 9개월 만이었다. 러시아의 기동전은 이것으로 끝났다. 그리고 재빨리 진지전으로 돌입했다. 마치 6·25전쟁을 보는 느낌이다. 6·25전쟁도 7개월간의 기동전을 끝으로 38선을 접촉선으로 하는 진지전이 전개되었다. 한 치의 땅이라도 더 뺏기 위해 고지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국 전쟁연구소]
그런데 러-우 전쟁은 고지전이 없다. 평야와 구릉만 있을 뿐 고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건 상반부는 푸른색이고 하반부는 노란색인 우크라이나 국기를 보면 알 수 있다. 푸른 하늘 아래 밀이 익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국기 도안은 대평원으로 이뤄진 우크라이나 국토를 상징한다. 그 대평원 위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塹壕戰)이 재연되었다. 러시아는 전 전선에 걸쳐 폭 19피트(5.1m), 깊이 13피트(3.9m)에 이르는 대전차 참호를 구축했다. 참호 앞에는 철조망, 대전차 장벽, 지뢰지대 등 다층적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러시아는 표준 지뢰지대의 최대 3배 밀도로 수백만 발의 지뢰를 매설했다. 우크라이나는 2023년 6월 대반격작전을 실시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진지를 돌파할 수 없었다. 다층적 방어진지가 우크라이나의 돌파를 저지했기 때문이다. 다층적 방어진지를 구축한 건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의 방어진지 돌파가 쉽지 않다. 그러니 누가 공격하든 공격하는 쪽의 피해가 클 수 밖에 없다.

기동이 묶이자 제1차 세계대전 때처럼 포병의 포탄들이 사상자 수를 늘렸다. 제1차 세계대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미사일과 드론이었다. 그중에서도 드론은 새로운 전쟁의 지배자로 떠올랐다. 정찰용 드론은 적 병력의 움직임이나 공격 태세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목표물을 발견하면 좌표를 찍고 포사격을 유도할 수 있다. 공격용 드론은 자폭 드론이 핵심이다. 러시아는 이란산 자폭드론 ‘샤헤드-136’을 수입해서 사용하다가 2023년 2월부터는 자체적으로 대량 생산하여 우크라이나의 군사 및 민간 목표물을 공격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드론 정책은 러시아와 사뭇 다르다. 수많은 스타트업 업체가 기상천외한 드론을 만들면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 소량 다품종 생산이다. 우크라이나가 채택한 드론 중에는 알루미늄 가루와 산화철을 녹인 혼합물인 ‘테르밋’이라는 화공품을 사용하는 드래곤 드론도 있다. 드론이 불을 뿜으면 2200도까지 온도가 올라가 주변 일대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된다. 우크라이나는 ‘팔랴니치아’라고 하는 제트 드론도 가지고 있다. 최고 시속 450㎞인 팔랴니치아는 러시아의 3번째 큰 정유시설을 공격했다. 러시아 장병이 가장 무서워하는 드론은 1인칭 시점(First Person View·FPV)드론일 것이다. FPV 드론은 기체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촬영된 영상을 가상현실(VR) 고글을 통해 보면서 사람이 직접 조종할 수 있다. 열영상 장비를 장착하면 쥐 같은 작은 동물도 잡아낼 수 있다. 괴짜 게이머였던 우크라이나의 한 젊은이는 FPV를 이용하여 혼자서 약 1년 반 동안 300여 명의 러시아군을 해치우기도 했다. 드론 조종사가 현대판 저격수로 떠오른 것이다.

쿠르스크, 사상 최대 전차전 벌어진 곳
쿠르스크는 러시아 땅이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8월 쿠르스크 지역을 공격해 서울의 약 2배에 해당하는 땅을 점령했다. 현재는 1/3정도가 러시아군에 의해 피탈된 상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접촉선에서의 방어가 벅찬데도 정예부대 병력을 차출해 쿠르스크를 공격한 이유가 있다. 자신의 승리계획(Victory Plan) 첫 단계가 바로 러시아 땅의 일부를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휴전협상이 진행된다면, 쿠르스크와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동부 돈바스 지역을 맞교환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쿠르스크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구소련과 독일이 전차전으로 맞붙은 대평원 지역이다. 8000대의 탱크가 맞붙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전차전이 전개된 곳이다. 엄페물이 거의 없다. 따라서 쿠르스크에서 FPV 드론을 만나면 그건 곧 죽음을 의미한다. 쿠르스크 전선에 투입된 북한군도 FPV 드론에 노출될 것이다. 전장 환경상 희생자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당선인 측은 바이든 대통령의 에이태큼스 러시아 본토 공격 허용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종전 구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와 물밑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종전 구상이 이른 시알내에 실현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우크라이나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이자 유럽도 꺼림찍해하는 구상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 트럼프 행정부는 에이태큼스 사격 범위를 제한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의 항전은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럽은 트럼프의 종전 구상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이어나가고자 할 것이다. 트럼프의 구상이 실현된다면 이는 러시아의 승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럽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주권국가를 침략해 승리한다면, 유럽의 미래 안보를 담보할 수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따라서 종전과 우크라이나 지원을 둘러싸고 트럼프 행정부와 유럽은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협력과 갈등을 반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6·25전쟁의 정전협정은 시작후 2년 1개월이나 지나서야 체결되었다. 낙관적 기대는 금물이다. 정전협정 체결 직전에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쿠르스크의 북한군도 바로 이 희생의 문턱에 서 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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