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잘나가 007가방에 현금가득 용돈드렸는데 5평 단칸방 살고있는 탑연예인

1987년 데뷔해 우리나라 보이그룹의 틀을 제시한 그룹 '소방차'의 멤버인 그는 소방차 1집 앨범의 멤버로 데뷔해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로 팀의 ‘비주얼’을 담당했습니다. 그는 1집을 끝으로 팀을 탈퇴했고, 도건우가 그 자리를 대체해 3집까지 활동했습니다.

이상원은 1995년 소방차로 다시 복귀해 4집 ‘지(G)카페’를 냈지만 다시 하락세를 겪었고 2005년 김태형과 2인조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여러 차례 다시 소방차로 뭉치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고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이상원은 전성기였던 소방차 시절을 회상하며 "하루에 2~3시간 잤다. 하루 스케줄이 18개였다. 소화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부산 일정 끝나자마자 비행기 타고 서울 와서 녹화, 생방송, 화보 촬영 및 인터뷰하고 밤엔 야간업소 행사를 다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상원은 부모님께 용돈도 많이 드렸다며 "(용돈을) 007 가방에 넣어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쓰세요' 했다"며 "부모님 기분 좋으시라고 5000만 원 정도를 일부러 현찰로 바꿨다. 그걸 아버지 칠순 잔치 때 딱 드렸더니 아버지가 놀라서 말을 못 하시더라. 그 모습이 저는 가장 행복했었다"고 돌아봤습니다.

소방차 이상원이 생활고를 겪었던 일을 털어놨습니다. 근황올림픽 유튜브 채널에는 '"5평 단칸방 살이" 생활고 기사 났던 톱스타 근황.. 찾아가 봤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습니다.

그는 "(투자자가 있었는데) 앨범이 잘 안 되니까 돈(투자금)을 갚으라고 하더라"면서 "상황이 그때 어려웠다. 생활을 위해서 업소라고 불리는 야간 무대를 다녔다. 그런 데서 일을 할 정도로 힘든 상황에서 10년 넘게 앨범에 관한 압박이 들어왔고,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결국 최후의 방법으로 파산을 선택했고 모든 상황을 끝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5평짜리 단칸방에서 지내다 동생이 운영하는 라운지바에서 3년 간 일하며 돈을 모아 가게를 차렸다"라고 전했습니다.

매출에 대해서는 "한 달 매출은 6000만~7000만 원 정도고 잘되면 8000만, 9000만 원이다. 순이익은 크지 않다. 속은 완전히 썩어 문드러졌다. 근데 겉으로는 항상 웃는다. 그냥 버티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끝으로 이상원은 "꿈을 말해도 되나 싶지만 좋은 가정을 이루고 싶다. 제 주변에는 지금 다 돌아가셔서 아무도 없는 상황이라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다"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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