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방지법’ 있으나 마나”…3달마다 계약 갱신, 멸시 발언 삼키는 경비원
최근 서울 강남에서 한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 갑질에 고통을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가운데, 현장에서는 일명 ‘갑질방지법’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련법이 생겼음에도 경비원들이 고용 불안에 떨고, 갑질을 삼키는 현실은 여전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비노동자 9명 모두 입주민으로부터 고성·모욕·외모 멸시, 천한 업무라는 폄훼, 부당한 업무지시·간섭 등 갑질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근무하면서 “키도 작고 못생긴 사람을 왜 채용했냐, 당장 바꾸라”, “(경비초소에 불을 켜놓은 것에 대해) 너희 집이면 불 켜놓을 거냐” 등 폭언에 시달렸다.
9명 중 6명은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70대 경비노동자 A씨와 마찬가지로 업무 외 부당한 지시를 수행하는 등 ‘원청 갑질’을 경험했다. A씨는 유서에서 “관리소장이 (갑질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아파트에서 십여년간 근무해 온 그는 지난해 말 부임한 관리소장의 갑질로 힘들어했고, 사망 일주일 전에는 경비반장에서 일반 경비노동자로 강등되기도 했다.
입주민에게 이러한 해고 협박을 받은 노동자는 9명 중 4명에 달했다. 직장갑질119는 경비노동자들이 입주민·용역회사 갑질에 노출되는 근본적인 이유로 ‘간접 고용 구조’와 ‘초단기 근로계약기간’을 꼽았다.
조사 대상 노동자 9명 모두 1년 미만의 단기 근로계약을 반복해서 체결하는 고용 형태였다. 경비회사에 고용된 경비노동자의 계약기간은 더욱 짧았다. 5명 중 4명은 3개월 단위로, 1명은 1개월 단위로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0년 발행한 보고서에도 경비원 94%가 1년 이하의 단기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비원의 약 80%는 위탁관리업체 소속이었다.
직장갑질119는 “갈등이 발생하면 입주민이 다음 계약 때 경비원 교체를 요구하는 경우가 잦다”며 “대부분의 아파트 경비원이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으로 일하고 계약기간도 1년 이하라 극심한 고용 불안 속에서 일한다”고 설명했다.
단체는 관련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용역회사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 △입주자 대표 회의의 책임 강화 △갑질하는 입주민 제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 대상 확대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으로는 입주민이나 관리소장으로부터 아파트 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비원 갑질방지법’으로 불린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은 2020년 서울 종로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씨가 입주민 갑질로 사망한 이후 마련됐다. 그러나 대부분 경비원이 초단기로 간접 고용되는 등 불안한 노동 환경 탓에 문제 제기하기 어려운 현실, 근로기준법상 같은 회사 소속이어야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데 관리소장과 경비원의 소속이 다른 경우가 많다는 점 등이 맹점으로 지적된다.
직장갑질119 임득균 노무사는 “초단기 근로계약과 다단계 고용구조 속에서 경비원은 쉽게 갑질에 노출된다”며 “고용불안을 해소할 방안을 마련해야만 갑질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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