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듯, 작은 말 한마디가 부모의 마음을 관통한다. 자식이 던진 차가운 말들이 부모의 가슴에 박혀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는 순간들이 있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 살아온 부모에게 돌아오는 것이 고마움이 아닌 원망이라면, 그 마음은 얼마나 처참할까. 당신은 지금 자녀에게서 어떤 말을 듣고 있는가? 따뜻한 위로와 감사인가, 아니면 가슴을 에는 서운함인가?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바쳤던 부모들이 자식으로부터 받는 상처들, 그 아픈 현실을 들여다볼 때이다.

1.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냐"고 말할 때
부모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밤잠을 설쳐가며 아픈 아이를 돌보던 날들, 자신의 꿈을 접고 아이의 교육비를 마련하던 시간들, 늘 자식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온 세월들이 한순간에 무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특히 자녀가 성인이 되어 독립한 후 부모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다가 거절당했을 때 내뱉는 이 말은, 마치 부모의 모든 희생을 부정하는 선언과도 같다. "대학까지 보내준 것, 결혼할 때 도와준 것, 아프면 달려가 돌봐준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냐"라고 속으로 절규하는 부모의 마음을 자녀는 알까.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이런 말을 하는 자녀들이 정작 자신이 부모에게 해준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부모는 이 말을 들으며 자신의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그동안의 사랑이 일방적인 착각이었나 싶어 깊은 절망에 빠진다.

2. "나를 왜 낳았냐"고 했을 때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을 향한 가장 잔인한 부정의 말이다. 부모에게 이보다 더 큰 상처를 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자녀가 인생의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혹은 부모와의 갈등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내뱉는 이 말은 부모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부모는 이 말을 들으며 자신이 자녀에게 준 생명이 축복이 아닌 저주였나 하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특히 자녀를 간절히 원했던 부모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 임신의 기쁨, 출산의 고통, 양육의 책임감,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부모는 이런 말을 들으며 "그럼 나도 너를 낳지 말았어야 했나"라는 극단적인 후회까지 하게 되고, 자녀와의 관계에서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 이 말은 단순한 분노의 표현이 아니라 부모의 정체성 자체를 흔드는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3. "엄만 몰라도 돼"라고 했을 때
자녀가 성장하면서 독립성을 주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 말에는 부모를 완전히 배제하겠다는 차가운 의지가 담겨 있다. 결혼, 이직, 이사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부모와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자녀가 "엄만 몰라도 돼"라고 선을 그을 때, 부모는 자신이 자녀의 인생에서 완전히 소외되었다는 깊은 외로움을 느낀다. 특히 어려운 일이나 고민이 있을 때조차 부모에게 털어놓지 않고 타인에게만 의지하는 자녀를 보며, 부모는 자신이 자녀에게 가장 먼 사람이 되었다는 서글픔에 잠긴다. "내가 너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고, 너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데"라는 부모의 마음은 자녀에게 닿지 않는다. 이런 배제감은 부모로 하여금 자녀에 대한 관심을 점차 접게 만들고, 결국 진정한 소통의 기회마저 잃게 만든다.
4. "사랑하지만 존경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이 말은 부모의 인격과 가치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날카로운 칼날이다. 사랑은 하지만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모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단순한 혈연관계의 대상으로만 보겠다는 선언과 같다. 부모는 자녀에게 단순히 물질적 지원을 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인생의 선배이자 멘토로서 인정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녀가 부모의 경험과 지혜를 무시하고, 부모의 가치관을 낡고 틀렸다고 치부할 때, 부모는 자신의 인생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부모가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며 쌓은 삶의 철학과 교훈들을 "시대에 뒤떨어진다"며 일축하는 자녀를 보며, 부모는 자신이 자녀에게 전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능한 존재로 전락했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자녀와의 대화를 포기하게 되고, 세대 간의 간극은 더욱 벌어진다.

5. 전화하면 "왜요?"라고 말할 때
"엄마!" 대신 무뚝뚝하게 "왜요?"로 시작되는 전화 통화만큼 부모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자녀의 안부가 궁금해서,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알고 싶어서, 그저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걸었던 전화가 마치 방해가 되는 것처럼 취급받을 때 부모의 마음은 무너진다. 특히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자녀 생각에 시간을 내어 전화를 걸었건만, 돌아오는 것이 짜증과 성의 없는 대답뿐일 때 부모는 자신이 자녀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별일 없으면 끊을게"라는 말로 서둘러 통화를 마무리하려는 자녀를 보며, 부모는 자신과의 대화가 자녀에게는 의무적인 시간일 뿐이라는 씁쓸함을 느낀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부모는 점차 자녀에게 연락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고, 결국 소통의 끈마저 놓아버리게 된다. 전화 한 통화에 담긴 부모의 그리움과 사랑을 자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언제나 일방적인 것일까.

부모가 자식에게 느끼는 서운함은 거대한 배신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작은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벽이 된다. 자녀들은 때로 자신도 모르게 부모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모의 사랑이 때로는 무겁고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그 사랑 뒤에 숨어 있는 간절함과 외로움도 함께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할 때, 상처받은 관계도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조금 더 따뜻한 말 한마디와 진심 어린 관심이 아닐까.
Copyright © bookolr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