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크면 무조건 이겨”…‘주객전도’ 민폐시위, 피해는 결국 ‘다수’
도를 넘어서는 ‘민폐 시위’
‘선량한 다수’ 피해 막아야
왝더독은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뜻이다. ‘주객전도’다. 주식시장에서는 선물시장(꼬리)이 현물시장(몸통)을 좌우할 때 사용한다.
정치인들이 불미스러운 행동이나 부정행위 등으로 비난을 받을 때 국민들과 여론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연막을 치는 현상에도 이 표현을 쓴다.
이제는 시위 현장에서도 왝더독을 자주 볼 수 있다. “목소리 크면 이긴다”며 소수의 의견을 다수의 뜻으로 포장하며 이기적 시위를 벌인다. 다수에 피해를 입히는 ‘목소리 큰 소수’의 민폐 시위다.
왝더독 시위에 정부도 칼을 꺼내 들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강남구청, 외부전문가(변호사·회계사), 한국부동산원과 함께 합동점검반을 구성해 다음달 7~16일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입주자대표회의 운영실태를 집중 점검할 계획이다.
행정조사 중 추가 점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점검 기간을 연장할 방침이다.
은마아파트는 1979년 준공된 4424가구 규모의 대단지로 2003년 재건축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재건축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 일부 주민들은 국책사업으로 추진 중인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C 노선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경기도 양주와 수원을 연결하는 GTX-C 노선은 지난해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착공 예정 시점은 내년이다.
삼성역에서 양재역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은마아파트 지하 약 60m 깊이를 관통하는 것으로 설계됐다.
재건축 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일부 주민들은 “입주한 지 40년 넘은 낡은 아파트 지하에서 철도 공사를 하면 최악의 경우 건물 붕괴 등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건설은 기본적으로 GTX 공사가 지하 깊은 곳에서 이뤄지고 비발파식 공법을 도입하기 때문에 안전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은마아파트 주민들 요청에 매봉산을 통과하는 우회안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이 노선 역시 인근 다른 아파트 단지 밑을 지나게 돼 결국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기존 GTX 시공 현장들에서도 주거지를 통과하는 사례들이 많은데, 은마아파트만 유독 우회안을 요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부에 따르면 GTX-A와 지하철 공사 과정에서 20개 구간이 주거지를 통과했다. 이미 철도가 지나는 구간에 재건축 사업이 이뤄진 곳도 12곳에 달한다.
건축토목 전문가들도 이에 대해 전형적인 님비(not in my backyard) 사례라고 비판한다.
정부도 “일부 반대를 이유로 국가사업을 변경하는 선례를 남길 수 없다”며 GTX 우회 요구에 강경한 입장이다.
이에 일부 주민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GTX-C 사업의 담당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해당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이 아닌 오너인 기업인의 집 앞에서 2주 넘게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업과 관련이 없는 일반 시민들의 불편을 볼모로 삼은 무리한 시위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재건축추진위원회에서 장기수선충당금 등 공금을 GTX 반대집회 및 시위 등에 사용한다는 업무추진 위법 의혹까지 제기됐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 23일 “수도권 교통난 해소를 위한 국가사업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확산시키며 방해하고 선동하는 행동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이에 대해서는 행정조사권을 비롯해 국토부가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재건축추진위 일부 주민들의 시위에 또 다른 주민협의체가 부정적 입장을 나타내는 등 은마아파트 내부에서도 자제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 일부 주민들이 11월 초 아파트 외벽에 내걸었던 ‘이태원 참사사고 은마에서 또 터진다’는 문구의 현수막은 내부 주민들조차 ‘도를 넘었다’며 비판했다. 결국 두 시간 만에 철거되기도 했다.
지난해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과격시위에 대해 10명 중 7명 이상이 부정적이라고 응답했다.
이 조사는 전국 만19세 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1대1 전화면접조사(유선 21%, 무선 79%)로 진행됐다.
응답자 중 73.4%가 ‘목적달성을 위해 과격한 방식이 필요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답했다.
아울러 무분별하게 발생하는 이기적 집회로 발생하는 일반 시민들의 피해를 줄이는 대책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민폐 집회는 북과 꽹과리 등 시끄러운 악기를 동원하거나 대형 확성기를 통해 고성을 지르고 장송곡을 재생하는 등 악의적 소음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집시법 시행령은 집회 및 시위로 인한 소음이 주거지역 등은 주간 65데시벨(dB), 야간 60데시벨, 기타 지역은 주간 75데시벨, 야간 65데시벨을 넘으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집회 소음 관련 112 민원건수는 2만2854건으로, 일평균 62건을 넘어섰다. 피해 지역도 도심과 주거지역을 가리지 않고 있다.
욕설이나 입에 담기 어려운 모욕성 발언을 반복해 사생활을 해치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로 인한 피해도 심각하다.
민폐 시위가 벌어지는 인근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헌법 제21조 1항에 있듯이 집회·결사 자유는 보장받아야 한다”면서도 “선량한 시민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기본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하루빨리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소수가 다수의 뜻을 왜곡해 자신들의 주장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일반 시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이해 관계자들은 문제를 제기하고, 전문가들이 해결책을 논의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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