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76%는 이미 AI 쓴다…‘딸깍 출판’ 논란에 출판계가 내놓은 답

김영호 기자 2026. 9. 3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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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도전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보경 지와인 대표(한국출판인회의 정책위원장)는 출판계가 직면한 인공지능(AI) 위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처럼 한국 출판계의 위기감이 커지는 가운데, 한국출판인회의는 29일 서울 마포중앙도서관 마중홀에서 출판·AI 정책포럼 '위기를 넘어 공존으로: AI 시대 출판 생태계가 나아갈 길'을 열었다.

한국출판인회의·한국작가회의 등 12개 단체는 이날 '독자를 위한 출판사와 저작자의 AI 사용 원칙'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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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인회의, 정책포럼 열어 ‘AI 표시제’ 선언
사람 기여도 따라 3단계 구분
한국출판인회의 제공
“(AI에게) 도전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보경 지와인 대표(한국출판인회의 정책위원장)는 출판계가 직면한 인공지능(AI) 위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AI로 책을 찍어내는 이른바 ‘딸깍 출판’을 하는 한 출판사의 홈페이지를 둘러본 뒤였다.

이처럼 한국 출판계의 위기감이 커지는 가운데, 한국출판인회의는 29일 서울 마포중앙도서관 마중홀에서 출판·AI 정책포럼 ‘위기를 넘어 공존으로: AI 시대 출판 생태계가 나아갈 길’을 열었다.

한국출판인회의·한국작가회의 등 12개 단체는 이날 ‘독자를 위한 출판사와 저작자의 AI 사용 원칙’을 발표했다. ‘딸깍 출판’ 논란을 계기로 출판계와 작가단체가 스스로 내놓은 기준이다.

● AI 사용 비율 대신 ‘책임질 사람’으로 가른 3단계 표시제

사진=김영호 기자 rladudgh2349@donga.com
출판 현장에서 AI는 이미 일상 도구가 됐다. 원고 작성과 번역, 이미지 제작, 음성 합성까지 제작 전반에 쓰인다. 이번 설문에서 출판사의 76.1%가 생성형 AI를 쓰거나 시험 도입하고 있었다. AI가 주요 콘텐츠를 만든 책을 낸 곳은 20.7%였다.

한국출판인회의는 4월 긴급포럼을 연 뒤 5개월간 한국문화예술법학회와 함께 국내 출판사 188곳을 설문하고 전문가 검토를 거쳤다. 이날 현장에서는 그 결과를 담은 연구보고서 ‘AI 시대 출판물 활성화와 보호를 위한 중장기 전략 수립’과 사용 원칙이 발표됐다.

원칙은 사람이 AI 산출물을 통제하고 검증했는지에 따라 책을 3단계로 나눴다. △교정이나 목차 구성에만 AI를 쓴 ‘인간 저작물’ △AI 생성물이 들어갔어도 사람이 최종 검증한 ‘AI 보조 저작물’ △검증 없이 나온 ‘AI 생성 출판물’이다. 2·3단계는 판권면 등 눈에 띄는 곳에 표시하도록 권고했다.

정책위원장을 맡은 김 대표는 “AI 관여 정도를 정밀하게 측정하기는 불가능하다”며 “저작권자로서 책임질 사람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3단계에만 ‘저작물’ 대신 ‘출판물’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 판면권 없는 한국 출판계…AI 기업과 공정한 협상 테이블 마련돼야

한국출판인회의 제공
기조발제를 맡은 박정인 덕성여대 AI 다이나인포(DynaInfo) 연구소 교수는 표시제를 모든 논의의 출발점으로 꼽았다. 출판사의 약한 권리를 보완하고 AI 시대에 정당한 보상을 받으려면 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부터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공정거래위원회보다 출판계가 먼저 자율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출판계가 먼저 지침을 만들면 계도 기간을 둘 수 있지만, 공정위가 먼저 나서면 허위 표시에 곧바로 과징금을 매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출판사의 권리가 약하다는 점도 짚었다. 그는 “출판물은 출판사와 편집자가 한 번 검증했기 때문에 비싼 학습 데이터”라며 “이것이 출판계의 가장 강력한 협상력”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출판사에는 아무 권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영국은 출판사가 짠 지면 배열을 발행 후 25년간 보호한다. 일본은 출판권에 전자출판까지 포함한다. 한국은 이런 판면권이 없어 출판사가 저자 위임 없이는 AI 기업과 협상하기 어렵다. 출판계는 2022년 출판사 고유 권리를 저작권법에 넣으려 했지만 무산됐다.

박 교수는 “개별 출판사가 협상할 수 없다면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설문에서 보상 체계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93.6%, 공동 협상에 찬성한 응답은 65.9%였다.

● 업계는 표시 이후의 절차와 창작자의 책임 지적

한국출판인회의 제공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저작권·출판·유통·번역·창작 분야 전문가들이 표시제를 현장에 정착시킬 방안을 논의했다.

정진근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출판단체 중심의 공동협상 체계와 목적별 표준 라이선스, ISBN 기반 메타데이터 구축을 “AI 기업과 대등한 협상 테이블에 앉기 위한 가장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으로 꼽았다.

류영호 교보문고 부장은 표시 이후의 절차를 짚었다. 교보문고는 주문형 출판(POD) 서비스 ‘바로출판’에서 AI 활용 여부를 입력받아 상품 페이지에 표시하고 있다. 류 부장은 “문체가 단순하다는 인상이나 신고 건수만으로 판매를 제한해선 안 된다”며 이의 제기 절차를 공동 기준에 담자고 했다.

표시제와 별도로 창작자 스스로 출판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25년 가까이 출판 번역을 해온 홍한별 번역가는 “번역가의 작업이 AI 학습에 쓰이지 않는다는 보장을 표준계약서에 명시해야 한다”며 이름을 걸고 책임지는 번역서를 따로 표시하자고 했다. 그는 “농부가 낫으로 벼를 벴다고 낫이 몇 퍼센트 일했는지 묻지 않는다”며 번역가에게 AI는 도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AI의 힘을 빌려 문학 전통을 짜맞춘 뒤 새로운 문학이라 주장하는 ‘빨대 저자’에 대한 경고도 나왔다. 양순모 한국작가회의 문화예술정책위원장은 이들도 결국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실제 저자의 얼굴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양 위원장은 “한두 편은 그렇게 넘어가도 결국 우리는 그런 얼굴을 좋게 평가하지 않을 것”이라며 “작가는 계속해 작가일 수밖에 없으며, 작가들은 그 자리를 기꺼이, 더욱이 떠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이번 포럼에서 나온 표시·계약·권리정보 관리 방안을 현장 과제로 구체화할 계획이다. 출판문화산업 진흥법과 저작권법 개정 논의도 이어간다. AI 사용 원칙은 기술과 법·제도 변화에 맞춰 정기적으로 검토해 고쳐나가기로 했다. 원칙 전문과 연구보고서는 한국출판인회의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김영호 기자 rladudgh234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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