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의 집에 꾸며진 매력적인 소품 12

[정보 좀요]
근사한 분위기의 공간을 방문할 때마다 참을 수 없이 궁금해지는 그 안의 물건들.
‘와, 이건 어디서 산 거지?, ‘어떤 디자이너한테 맡겨서 제작한 걸까?’
고가의 장비부터 작고 귀여운 소품까지, 멋진 공간을 채우는 매력적인 물건들을 대신 물어봐 드립니다.

안녕. 물건 정보 대신 물어봐 주는 ‘Mr. 정보 좀요’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오늘 소개하는 훔치고 싶은 물건으로 가득한 네 번째 공간. 작가 ・ 영화평론가 ・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김도훈의 집이다.

이름 앞에 직업을 세 개나 붙였을 정도로 김도훈은 다양한 일을 한다. 커리어의 시작은 영화 전문 잡지 <씨네21> 기자. 이후 패션지 <GEEK>의 피처 디렉터를 거쳐 디지털 미디어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초대 편집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프리랜서 신분으로 각종 일간지와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커머스 플랫폼 등에 칼럼과 에세이를 기고한다. 단독 저서로는 <낯선 사람>,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가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그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무슨 글을 쓰는 사람이냐 묻는다면 웬만한 건 다 쓰는 사람이라 답하겠다. 문화, 예술, 정치, 사회 등 분야에 제한 없이 당대의 흥미로운 사람과 사건은 무엇이든 그의 이야깃거리가 된다. 본인 표현대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모든 것을 보고 쓰’는데, 특히 즐겨 다루는 소재는 영화와 패션을 비롯한 대중문화 전반이다. 콘텐츠와 산업, 이를 둘러싼 시대의 공기를 읽어내는 김도훈의 예리한 시선은 경쾌한 호흡의 단문과 솔직함에 기반한 유머를 타고 종횡무진 지면을 누빈다. 남 눈치 보지 않고 할 말 시원하게 하는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어디선가 킬킬거리며 그의 글을 읽고 있다. 나 역시 김도훈이라는 글쟁이의 오랜 독자 중 한 명이다.

2년 전 가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김도훈 작가의 집에 처음 방문한 날 생각했다. “좋아하는 물건들로 집을 가득 채웠어요”라며 자랑하고 싶다면 일단 여기부터 와봐야 한다고. 이 집에 물건이 많아도 너무 많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책과 옷부터 갖가지 오브제까지, 색도 형태도 스타일도 생산 연도도 제각각인 데다 일반적으로 가정집에 놓기 꺼리는 눈 달린 얼굴들도 곳곳에서 존재감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 일반적이지 않은 특성이 한국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을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바꾼다. 맥시멀리즘과 믹스매치를 극단으로 밀어붙인 듯한 광경에서 되려 거주자의 개성이 느껴지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는 본인이 좋아하는 물건들을 별다른 계산 없이 사 모았고, 그렇게 수집한 것들이 20년이라는 시간으로 차곡차곡 쌓였으며, 시간의 힘을 믿는 집주인은 거창한 인테리어 계획이나 의도 없이 내 물건을 내 식대로 과감하게 펼쳐놨다. ‘예쁘다’, ‘갖고 싶다’ 같은 순간의 충동과 기호도 세월의 힘을 올라타면 취향이 된다.

일하고 쉬고 반려묘 ‘한솔로’와 놀아주다 이내 컴퓨터 앞으로 돌아가 마감에 열중하는, 바쁘고 여유로운 김도훈의 집. 빽빽하게 채워진 물건 사이로 자기만의 질서가 흐르는 이 공간에서 욕심 많은 30대 털보 에디터의 시선을 빼앗은 물건은 어떤 것들일까?


01
영화 굿즈

1984년에 개봉한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SF 영화 <듄 DUNE>. 당시 영화 공식 굿즈로 출시했던 팝업북을 2000년대 중반에 이베이에서 구매했다. 드니 빌뇌브의 리메이크작이 나오기 한참 전부터 김도훈은 듄을 열렬히 사랑했다. 모두가 걸작이라 부르는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 소설과 모두가 괴작이라 부르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 모두. 영화 굿즈로 팝업북을 만드는 경우가 흔치 않은 요즘, 한층 높아진 작품의 위상과 함께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아이템이다.

  • 브랜드: Grosset & Dunlap
  • 제품명: Dune Pop-Up Panorama Book
  • 구매 링크 (https://tinyurl.com/4mvkdks3)

02
스니커즈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도쿄를 찾은 화이트 스니커즈 덕후의 품에 들어온 슬립온. 꼼데가르송 옴므 플러스 2014년 컬렉션 제품으로 브랜드 특유의 해체주의 스타일이 반영된 컷아웃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군데군데 커다랗게 뚫린 구멍 때문에 슬립온과 샌들의 느낌을 동시에 내기 좋다. 뉴욕 길거리를 비롯해 어딜 가도 신발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많았던 유쾌한 기억 때문일까. 최근에는 이 스니커즈의 매력을 알아볼 만한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만 신고 나간다고.

  • 브랜드: Comme Des Garçons Homme Plus
  • 제품명: CUT OUT SLIP-ON TRAINERS

03
라운지체어

소파와 함께 거실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빈티지 라운지체어. 검정 가죽과 금속 소재를 가진 의자를 찾던 차에 사무엘 스몰스 매장에서 발견한 제품이다. 유행하는 물건이나 너무 흔한 물건은 사지 않는다는 원칙 아닌 원칙 아래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와 르코르뷔지에의 LC2는 일찍이 배제했고, 디자이너도 브랜드도 모르는 이 70년대 빈티지 체어에 마음을 뺏겨 바로 구매했다. 바닥에서 등받이까지 이어지는 곡선 프레임의 조형미가 돋보이는 제품으로 평소에는 의자 시트 위에 책을 쌓아 하나의 오브제처럼 두고 쓴다. (김도훈과의 만남 이후 검색을 통해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지오토 스토피노’가 디자인한 코브라 체어임을 알아냈다.)

  • 디자이너: Giotto Stoppino
  • 제품명: Cobra Chair
  • 구매 링크 (https://tinyurl.com/2s3v7r46)

04
접시

스페인 마드리드 여행 당시 츄에카라는 지역에서 산 그릇이다. 짐을 무겁게 끌고 다니는 게 싫어 여행 중에 접시류는 잘 사지 않음에도 이건 보자마자 구매를 결정했다. LGBTQ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지역으로 알려진 츄에카 거리에는 개성 강한 소규모 상점들이 즐비한데, 동네를 정신없이 구경하다 우연히 들어가게 된 아티스트 초안 비케이라의 스튜디오는 김도훈의 취향을 저격하는 일러스트 그래픽으로 가득했다고. 음식을 담는 대신 진열대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두고 관상용으로 쓰고 있다.

  • 디자이너: Xoan Viqueira
  • 제품명: MEN IN PARADISE(좌), LEATHER(우)
  • 구매 링크 (https://tinyurl.com/mu35d7z7)

05
빈티지 의류

옷장과 행거를 가득 채운 수많은 빈티지 의류 중에서 가을에 가장 즐겨 입는 아우터를 골라달라고 했더니 검정색 봄버 재킷을 꺼내왔다. 등판에 적힌 ‘POLIZEI’는 독일어로 경찰이라는 뜻. 왜 경찰이라고 적혀 있을까 했는데 알고 보니 실제로 독일 경찰들이 입던 옷이라고 한다. 베트멍의 창립자이자 발렌시아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뎀나 즈바살리아가 영감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관심이 생겨 오리지널을 구하고자 온갖 빈티지숍과 중고 거래 사이트를 뒤지고 다녔다. 전 세계 패션 마니아들이 모이는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 ‘Graild’에서 10만 원대에 구매한 이후로 고가의 발렌시아가 봄버 재킷보다 이 제품을 더 자주 입고 다닌다. 넉넉한 품에 짧은 기장, 겉감과 대비되는 쨍한 오렌지색 안감이 매력적인 옷.


06
피규어

김도훈이 80년대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는 <그렘린 Gremlins>의 기즈모 피규어. 20년 전쯤 머천다이즈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미국 웹사이트에서 구입했다. 유사품이 많지만 이것만큼 기즈모를 가장 비슷하게 그리고 예쁘게 구현한 제품이 없다고. 박수를 치면 소리에 반응해 소리를 내며 춤을 추는 것도 매력 포인트. ‘나도 기즈모 키우고 싶다’ 노래를 부를 정도로 유년기에 가장 사랑했던 캐릭터인 만큼 단순히 귀여운 피규어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물건이다. 한솔로를 입양하기 전까지는 반려동물처럼 느꼈을 정도로.

  • 브랜드: NECA
  • 제품명: Gremlins Dancing Gizmo Plush Doll
  • 구매 링크 (https://tinyurl.com/5t4adrsz)

07
매거진

는 1980년에 창간한 런던 기반의 패션지다. 화보와 디자인 경향을 참고하기 위해 김도훈이 젊은 시절부터 즐겨 보던 잡지였는데, 그때만 해도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커버를 장식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24년 여름호의 주인공은 뉴진스. 뉴진스 공식 팬클럽인 ‘버니즈’로서 참을 수 없었던 그는 국내 유통이 풀리자마자 알라딘을 통해 잡지를 구매했다. 멤버 개별 인터뷰와 화보를 비롯해 여러 페이지에 걸쳐 뉴진스라는 케이팝 신의 새로운 스타가 집중 조명되고 있다.

  • 브랜드: THE FACE
  • 제품명: THE FACE 2024 SUMMER
  • 구매 링크 (https://tinyurl.com/52ybr6x8)

08
고양이 침대

반려묘 한솔로를 입양하자마자 샀던 이케아의 고양이 침대. 2007년에는 아직 이케아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이라 구매대행을 해주는 온라인 몰을 통해 구입했다. 따뜻한 느낌의 라탄 소재에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간 모양이 매력적이며, 위쪽은 침대로 아래쪽은 숨숨집(고양이가 숨어서 쉬거나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쓸 수 있어 실용적인 아이템이다. 볕이 드는 시간이면 언제나 이곳에 올라가 광합성을 하고 있을 정도로 한솔로가 사랑하는 자리.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릴 때마다 ‘정보 좀요!’를 외치는 주변 고양이 집사들의 메시지가 쏟아진다고.

  • 브랜드: IKEA
  •  제품명: Wicker Cat Bed

그 외 훔치고 싶은 물건들

포스터

  • 제품명: FUNERAL IN BERLIN French Movie Poster (1966)
  • 구매 링크 (https://tinyurl.com/mppuxwrd)

쿠션

  • 브랜드: Club Sorayama (Hajime Sorayama X HBX)
  • 제품명: Club Sorayama – Cushion

러그

  • 브랜드: Pittsburgh Steelers (Official MD)

바이닐

  • 아티스트: The Smiths
  • 앨범명: Hatful of Hollow
  • 구매 링크 (https://tinyurl.com/35hfe7km)

김도훈 @closer21
<낯선 사람>(2023),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2019)
<패션 만드는 사람>(2024)(공저),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2022)(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