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팔이 투수의 마지막 스트라이크

‘불굴의 빛나리’ 사노 시게키 이야기

사노 시게키 블로그

손가락 2개 잃고 “체인지업은 제대로…”

2년쯤 됐다. 그러니까 2023년 4월의 일이다. 히터 앞에서 깜빡 졸았다. 깨 보니 발가락 하나가 좀 이상하다. 저온 화상이라는 진단이다.

보통이라면 간단한 치료로 회복된다. 하지만 그는 다르다. 2형 당뇨병이 상당히 진행된 환자다. 쉽게 낫지 않는다. 결국 극단적인 처방이 내려진다. 왼쪽 가운데 발가락을 절단해야 했다.

감염에 대한 저항력은 점점 문제가 된다. 그해 12월이다. 이번에는 오른손에 이상이 생겼다. 그냥 놔두면 괴사가 계속 진행된다. 수술을 피할 수 없다. 손가락 2개를 한꺼번에 잃었다.

그래도 기백은 여전하다. 한때 정상급 프로야구 투수였다. 엄지와 검지가 사라진 오른손을 보며 이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이제 체인지업을 제대로 던질 수 있겠군.”

불행은 멈추지 않는다. 잔인할 정도의 빠른 속도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았다. 발가락 수술 후 1년이다. 손가락 2개를 잃은 지 4개월이 지났다.

마른하늘에 날벼락같다. 오른팔에 괴사가 진행된다는 진단이다. 계속 놔둘 수 없다. 온몸으로 퍼지게 된다. 자칫하면 심장에도 무리가 갈 수 있다.

수술 날짜가 잡혔다. 5월 1일. 하필이면 생일 다음 날이다. 최고의 우완 투수가 오른팔을 잘라내야 한다.

그때 심정이 어땠을까.

“사실 다른 감정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매일 같이 상처 부위를 소독해야 하는데, 그 고통이 너무 심했다. 그래서 차라리 수술을 택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일본 긴테쓰 버팔로즈(오릭스의 전신) 출신이다. 한때 NPB 최고의 불펜 투수로 불리던 사노 시게키(57)의 이야기다.

“지켜주지 못한 오른팔에 미안해”

지난 5월 자신의 투병기를 담은 자전 에세이를 발간했다.

'오른팔을 잃은 야구인(右腕を失った野球人)’이라는 제목이다. 그러면서 각종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삶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수술이 끝난 다음이다. 처음에는 못난 생각도 많이 했다. ‘이런 모습으로 살아서 뭐 하나.’ ‘평생 남의 신세나 져야 하는 건가’. 나 자신이 쓸모없다는 자괴감에 빠져 살았다.”

어디 그뿐이겠나. 회한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오른팔에게 너무 미안했다. 현역 시절에는 너무나 애지중지하던 부위다. 혹시라도 아프지 않도록, 매일 같이 알뜰하게 살피고 아끼던 친구였다. 오랜 시간을 묵묵히 함께 해준, 정말 좋은 짝이다. 지켜주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스러웠다.”

하지만 타고난 성격이 밝다. 유쾌하고, 긍정적이다.

“한참 동안 화장실 거울을 보며, 괴로움을 삼켰다. 그런데 돌아서서 잠자리로 가던 중이다. 갑자기 궁금증이 생기더라.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왼팔로 투구 동작을 해보고 있더라. ‘그걸로 또 던져보려고?’ 하는 생각에 쓴웃음이 났다.”

그때부터다. 왠지 오기가 생겼다. 이대로 지기 싫다. 포기할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운드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수없이 넘겼다. 그럴 때면 스스로 이런 각오를 다진다. ‘바보야. 구원투수가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면 어떻게 하냐. 멍청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상관없다. 그냥 한복판에 던져버리자.’ 그런 마음이었다.”

긴테쓰 시절이 황금기였다. 리그 최고라는 평가였다. 불펜 (중간) 투수 중에 최초로 연봉 1억 엔(약 9억 4000만 원)을 돌파하는 기록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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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이혼, 수술…

20~30대를 너무 즐겼다. 마음껏 먹고, 마셨다.

“야간 경기를 마치면, 그때부터 바쁜 스케줄이 시작된다. 늦은 저녁을 먹고, 나오면서 주먹밥 5개와 라면 한 그릇을 비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본격적인 유흥이 이어진다.

“나이트클럽으로 몰려간다. 기분 좋게 한 잔 하고, 낭만을 즐긴다. 마치는 시간이 새벽 5시쯤이다. 다시 출출해지면, 고깃집으로 간다. 속을 든든하게 채우고, 비로소 잠자리에 든다.”

그런 생활이 은퇴 후에도 계속됐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방송 출연이나 행사가 많았다. 그런데 일이 터진다. 투자했던 사업이 휘청거리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주변과 돈거래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특히 절친 노모 히데오에게 진 빚 수 천만 엔(수 억 원)을 못 갚았다. 언론이 이 얘기를 크게 보도됐다. 그러면서 배은망덕하고, 몹쓸 인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됐다.

방송 출연은 모두 취소됐다. 채무 상환 요청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가뜩이나 어렵던 경제 사정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그 무렵이다. 가정도 파탄지경이다. 이혼과 함께 가족들과 뿔뿔이 헤어졌다. 무절제한 생활이 더 심해지고, 급기야 당뇨가 발병하게 된다.

당시 의사의 말이 또렷이 기억난다.

“합병증으로 심장판막증이 생겼다고 하더라. 상당히 진행된 중증이었다. 심장이 35% 밖에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냥 놔두면 5년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다. 그때부터 항상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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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의사의 말

그 시간을 견디며 깨달은 것이 있다.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병실에서, 수술실에서, 절망과 좌절에 빠진 분들을 매일같이 지켜본다.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래도 이름이 알려진 사람 아닌가. 그때부터 앞에 나서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는 인기 있는 예능인이기도 하다. TV에도 제법 자주 나온다.

가장 유명한 것은 시구 장면이다. 공을 던지려고 와인드업을 한다. 그 순간 모자가 벗겨진다. 동시에 훤~한 헤어스타일이 드러난다.

현역 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당시에는 포수도, 타자도, 심판도 모두 빵 터졌다. 관중석은 말할 것도 없다. 폭소와 환호성이 그라운드를 덮었다.

팬들이 이름도 붙여준다. ‘빛나리 투구(ピッカリ投法)’다. 덕분에 가장 인기 있는 시구자가 됐다.

작년 12월에도 어린이 야구대회에 초청됐다. 절단 수술을 받은 이후 첫 행사였다. 이별한 오른팔 대신 왼팔로 던져야 하는 미션이다.

“내 롤모델은 다저스의 커쇼다. 동영상을 보며 폼을 배우고 있다.”

그런데 큰소리친 것과는 다르다. 어색한 동작이다. 공은 포수까지도 못 간다. 그대로 땅에 처박히는 굴욕을 겪었다. 본인이 직접 반성한다. “오늘 시구는 마이너스 10점이다.”

이유가 있다. 몸상태가 무척 좋지 않았다. 허리에 감염증이 생겨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병원에서는 외출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당사자가 막무가내다. “아이들과 약속을 어길 수 없다”며 고집을 피웠다. 결국 휠체어에 의지해서 강행했다.

“지금은 병원에서 퇴원했다. 하루에 8000~9000보를 걸을 정도로 좋아졌다. 이제 일을 하고 싶다. 신문 배달 같은 것도 괜찮다."

그러면서 뚜렷한 목표를 내세운다. 어찌 보면 삶의 이유 같다.

"다음 시구 때는 포수까지 정확하게 스트라이크를 던지겠다. 그리고 타자와 승부할 정도로 연습하겠다. 최종 목표는 실전 투입이다. 비록 연습 경기라도, 정식 게임에서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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