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이 한국에서 가게를 못 내는 ‘진짜’ 이유

글로벌 성공 신화,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미국에서 단 한 대의 푸드트럭으로 시작해 연매출 600억 원을 기록하는 글로벌 한식 브랜드 ‘컵밥’을 탄생시킨 송정훈 대표. 그는 본인의 놀라운 성공 경험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장 진출에 대해선 단호히 ‘포기’ 선언을 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세계에서 인정받은 한식 브랜드 창업자가 정작 고국에선 가게 개업을 꿈도 꾸지 못하게 됐을까. 그 답을 듣다 보면, 한국 외식 시장의 진짜 민낯과 글로벌 시장의 극명한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현실의 장벽, ‘말도 안 되는 경쟁 강도’

송정훈 대표가 미국에서 느꼈던 기회의 땅. 미국 내 그의 사업 출발지인 유타주는 남북한 합친 면적보다 크지만, 당시 닭집은 단 다섯 군데뿐이었다. 이는 곧, 새로운 아이템만 있으면 시장에 진입해 충분한 승산을 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 반면 한국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좁은 면적을 가진 대한민국에만 치킨집이 무려 4만 개 이상(2022년 기준)이 영업 중이다. 실제로 치킨 프랜차이즈 본점만 해도 2만9,358개에 이른다. 이처럼 초과밀 경쟁 속에선 아무리 독특한 아이템을 갖고 있어도 차별화 자체가 힘들고, 수익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해외에서 랜드마크가 될 만한 독창적 콘셉트조차 국내에서는 ‘평범한 가게’가 대상이 된다.

한식의 ‘가격 저항’, 미식 이상의 숙제

두 번째 장벽은 한식 메뉴의 ‘가격 저항’ 문제다. 똑같은 재료로 만든 파스타 한 그릇에 1만2,000원~3만5,000원을 부과해도 소비자 저항이 크지 않은 것이 한국의 외식 현실이다. 실제 최근 전국 스파게티 평균 가격은 1만2,200원. 하지만 정성 들인 칼국수 한 그릇이 7,300원 수준에 머물고, 가격을 높이려 하면 오히려 소비자 불만을 마주해야 한다. 즉, 서양식엔 관대한 것이 가격이 오르면 한식은 ‘분식’ 취급을 당하고, 프리미엄을 붙이려는 시도를 번번이 좌초시키는 것이다.

“수익성 자체가 안 나온다”… 글로벌 프리미엄 vs. 국내 ‘가성비’

미국에서의 한식은 오히려 ‘프리미엄’ 덕을 본다. 한국에선 “컵밥” 하면 노량진 컵밥 등 저가 이미지가 강하지만, 미국 현지화 전략으로 새 단장한 한식 메뉴들은 익숙한 소스와 간단한 조리법으로 ‘이국적 경험’과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며 가격대도 충분히 높여받는다. 미국 시장에서 K-푸드, K-프라이드치킨 등도 높은 가격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반면 한국의 컵밥은 오뚜기나 CJ 컵반 등 비슷한 즉석 제품이 2,500~3,000원대에 쏟아진 상황, 고급화 전략을 내세워도 현실적 수익을 내기가 불가능한 구조다.

트렌드 무감, ‘초저가 분식’에 갇힌 한식 외식업

한식 뷔페, 컵밥 분식 등은 브랜드 론칭 초기에 신기함을 무기로 인기몰이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가성비’ 문제가 대두되고, 소비자 트렌드는 더욱 빨라졌다. 1인 메뉴, 레토르트 등 간편식의 강세, 외식업 진입장벽의 붕괴 등도 겹쳐 명맥만 유지하는 매장이 다수. 프리미엄 한식 도전은 갈수록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미친 경쟁 속 ‘성장’이 아니라 ‘구조조정’으로

외식업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 치킨 산업을 비롯한 외식업 전체가 이미 포화 상태이자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섰다고 진단한다. 경쟁이 심해질수록 생존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프랜차이즈 치킨집조차 연매출 2억 원 미만이 64%에 달하고, 연 3,000만 원 남기기 어려운 구조로 내몰리고 있다. 브랜드 간 점유율 경쟁도 격화돼 장기적으로는 ‘버티기 게임’이 될 뿐이다.

해외에서 더 빛나는 K-푸드, 진출의 이유와 깨달음

결국 송정훈 대표와 같은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 CEO들이 국내 시장 진입을 꺼리는 이유는, 문화적 차별성에서 나오는 글로벌 시장의 프리미엄, 그리고 경쟁이 덜한 넓은 시장에서 얻는 기회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소비자의 가격 저항, 미친 경쟁 강도, 점점 더 빨라지는 트렌드 변화, 초저가 이미지만을 요구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글로벌은 열려 있어도 국내는 “진입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이 재현되고 있다. 역시 외식업 ‘성공 신화’의 비밀은, 꼭 한국 땅이 아닌 세계에서, 새로운 도전과 문화적 차별화가 허용되는 곳에서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