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은 실재하는 병
피할 수 없는 화를 건강하게 다루는 법
‘화병 날 것 같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가장 많은 평가가 아닐까 싶다. 필자의 진료실을 찾은 중년 여성들도 자주 호소하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화병은 ‘억울한 마음을 삭이지 못해 간의 생리 기능에 장애가 와서 옆구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면서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병’이라고 정의돼 있다.
그렇다. 화병은 실재하는 질병이다.화병은 한국표준사인분류(KCD)에 분류돼 있는 한의병명이다.
국내 유병률이 4.2~13.3%로 약 10명에서 20명 중 한 명은 겪고 있다.
화병은 가슴이 답답하거나 열감이 있거나, 뭔가 치밀어 오르거나 목이나 명치에 뭉쳐진 덩어리가 느껴지는 증상들이 나타난다.
이들 증상은 갱년기 증후군이나 갑상샘 기능장애 등과도 유사해 감별이 필요하다. 또 화병이 오래되면서 다른 질환들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갱년기 여성들에게서 자주 관찰된다.
화병은 왜 생길까?
화병은 부당한 대우나 충격적인 사건 등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상황에서 화병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는 개인의 성격이나 대처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사람들은 개개인의 상황·기질·성격에 따라 부당한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화병 날 것 같다’ 라고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화병이 잘 걸리지 않는다. 반면 화를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이거나, 상황을 회피하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화병에 취약하다. 이렇게 속으로 화를 삭일 때 결국 신체증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상황이 해결되면 화병이 사라질까?
화병을 유발한 스트레스 상황이 해결돼도 모든 증상이 저절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환자들이 상황이 종결된 이후에도 증상이 남아 있는데, 이는 억울하거나 분한 감정, 혹은 부정적 기억을 계속 되새기기 때문이다.
화병은 어떻게 치료할까?
증상이 있다면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치료받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신체, 정신 증상이 심하다면 침치료, 한약치료, 심리치료를 통해 증상을 해소해야 한다.
우선 침치료는 해소되지 않은 기운을 소통시켜주어 가슴 답답함, 상열감, 긴장감과 같은 증상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된다.
장기적으로는 한약치료와 상담치료가 몸 상태를 회복시키고, 추후 비슷한 상황에서도 화병이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는데 효과적이다.
근본적으로는 생활관리를 통해 화를 다스려야 한다. 한의학에서는 내 몸의 수승화강(水昇火降; 물은 위로, 불은 아래로)이 잘 되도록 해야 건강해진다.
화는 활동, 수는 휴식으로 대입해 생각하면 쉽다. 즉, 지나친 활동은 줄이고 휴식을 충분히 취하여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면 된다. 예를 들어, 일기쓰기나, 명상 같은 방법이 도움이 된다.
우리의 인생에서 화는 피할 수 없는 감정이다. 삶은 끊임없는 화로부터 나를 지켜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를 건강하게 다루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하지만 가슴 답답함이나 열감 등 화병이 의심되는 신체 증상이 지속된다면, 가까운 한방여성의학과에서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 일찍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