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부(貴腐)와인'의 지존, '에곤 뮐러 샤르츠호프베르거 리슬링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

이철형 / 와인소풍 대표

오늘의 와인은 에곤 뮐러 샤르츠호프베르거 리슬링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 2015(Egon Müller Scharzhofberger Riesling Trockenbeerenauslese 2015).

/ 에곤 뮐러 홈페이지

독일 최고의 와이너리 에곤 뮐러에서 탄생한 와인으로 여러 와인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평점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2015년 빈티지와 2009 빈티지에 100점을 줬다.

널리 알려진 와이너리의 와인인데다가 귀부 와인이기에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해서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그래도 100점을 받기는 쉽지 않다.

이 와인은 포도의 당도가 최고에 도달할 수 있도록 되도록이면 늦게 포도를 늦게 수확한다. 자칫 우기에 접어들어 포도의 당도가 떨어질 수도 있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냉해를 입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생산자 입장에서 볼 때 수확량이 감소하거나 품질이 유지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포도에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라는 곰팡이가 생기면 포도나무에 매달린 포도알에 구멍이 생겨 포도가 건포도처럼 된다. 그 포도알을 일일이 손으로 수확하기 때문에 품이 많이 드는 것도 단점이다.

에곤 뮐러 와이너리. / 에곤 뮐러 홈페이지

에곤 뮐러는 1797년부터 지금까지 유지되는 와이너리로,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한 가문이 운영하고 있다. 결혼에 의해 피가 섞이긴 했지만 설립자 가문의 혈통이 지속되고 있다.

와이너리 설립자 장 자크 코흐(Jean-Jacques Koch)는 1797년 프랑스 대혁명 직후 모젤 부속 지역에 속하는 자르(Saar) 밸리 지역에 있는 샤르츠호프베르그(Scharzhofberg)의 와이너리를 획득했다.

직전 주인은 수도원이었다. 이 지역은 프랑스 국경으로부터 불과 11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프랑스에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설립자가 죽자 당시 개정된 상속법에 따라 7명의 자식들에게 와이너리가 균등 배분됐다. 그의 딸(Elisabeth)이 나폴레옹 전쟁 당시 군인이었던 뮐러 가문의 아들(Felix Müller)과 결혼하면서 뮐러 와이너리가 됐다.

그리고 둘 사이의 둘째 아들 이름이 에곤 뮐러 1세였고, 그가 부호의 딸 (Therese Tuckermann)과 결혼하게 됐는데 그녀의 아버지(Eduard Tuckermann)는 에곤 뮐러 누이의 포도원을 사들여 포도원이 더 커졌다.

이 부부는 그 포도원을 가꿔 오늘날의 명성을 일궈냈다. 그래서 와이너리 명칭도 에곤 뮐러다.

독톡한 점은 이 와이너리가 처음부터 오로지 리슬링 한 품종만 심었고 지금까지도 오로지 리슬링만 유지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로 인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한 가문이 한 품종에만 집중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와인 업계에서 흔치 않은 얘기다.

독일은 모젤 지역이 가장 유명하지만 이 와이너리는 그 핵심에서 좀 벗어난 모젤강과 자르강이 만나는 지역에 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세계적인 와인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래서 라벨에 보면 생산지가 모젤-자르-루버라고 표기돼 있다.

'신의 물방울' 17권 중.

에곤 뮐러의 리슬링으로 독일 와인을 접한 이들은 다른 와인에서도 에곤 뮐러처럼 새콤 달콤하면서도 상큼한 맛을 찾아나서게 된다. 하지만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에곤 뮐러의 와인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내 취향이 아닌 와인을 마시고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지만, 다른 향과 맛을 지닌 와인은 마셔보지 않고서 어찌 또 다른 신세계를 알 수 있으랴."

귀부 와인의 공통적 특징은 꿀향과 곰팡이로 인한 독특한 향이 난다는 것인데 이 두 가지 향 때문에 매력을 가지게 된다. 더구나 단맛과 신맛이 함께 공존하니 더더욱 거부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귀부와인을 최고의 디저트 와인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는 TBA로 줄여서 부르기도 하는데 의미는 ‘마른(건포도화된) 것을 잘 선별한 것’이라는 뜻이다.

오늘 소개한 2015년 빈티지는 가격이 없다. 아쉽지만 이미 매진돼 현재는 시중에서 거래되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세월이 흐르면 혹시 옥션에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가격은 깜짝 놀랄 수준이다. 2017년 빈티지 가격은 750ml 한 병에 5000달러(한화 약 650만원 상당)이고 빈티지가 좋은 2018년도 산은 8500달러(한화 약 1100만원)로 빈티지에 따라 가격의 차이가 크다. 저렴한 녀석들도 기본이 3000~4000달러니 와인계의 귀족 명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와인 마니아들 중에는 죽기 전에 꼭 마셔봐야 할 와인 버킷 리스트에 에곤 뮐러 샤르츠호프베르거 리슬링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를 올려 놓은 이들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