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독증: 여전히 원인을 알 수 없는 치명적인 임신 질환

자간전증(임신중독증)은 매년 임산부 7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가나, 그 원인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올림픽에서 7차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14차례 금메달을 목에 걸 정도로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했던 미국의 육상선수 앨리슨 펠릭스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달리기 스타일만큼이나 임신도 순조로우리라 생각했다.

펠릭스는 “나는 평생 몸을 관리해 온 사람이고, 내 몸은 내 도구와도 같았다. 내 몸은 날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었다”며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나는 늘 훈련했고, 몸은 항상 내 요구를 들어줬다. (그래서) 나는 아름답게 자연분만하거나, 최면 출산을 선택하는 등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펠릭스는 32주째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갔다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됐다. 심각한 자간전증이라는 것이다. ‘임신중독증’이라고도 불리는 자간전증은 혈압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으며, 장기 손상을 유발하는 임신 합병증이다.

이에 즉시 입원이 필요하다고 진단받았고, 다음 날 바로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딸 캠린을 품에 안았다. 캠린은 예정일보다 2달 일찍 태어난 탓에 1달간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지냈다.

사실 펠릭스의 발이 약간 부었다는 것 외에는 펠리스와 태아 모두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 펠릭스는 “나는 발의 부기에 크게 놀라진 않았지만, 단백뇨, 고혈압 등 내 상태에 대해 알게 되자 너무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현재 딸은 건강한 5살 어린이가 됐다.

그러나 펠릭스는 자신과는 달리 비극으로 끝나버린 사례도 알고 있다.

미국의 세계 100m 챔피언 출신이자 2016년 리우 올림픽 100m x 4 계주 금메달리스트였으며, 펠릭스와도 오랜 동료였던 토리 보위가 지난해 4월 자간전증 및 관련 합병증으로 인해 출산 중 숨을 거둔 것이다. 보위의 나이는 겨우 32세였다.

펠릭스는 “우리는 여러 번 같은 계주 팀에서 함께 뛰기도 하고, 서로 경쟁하기도 한 사이였다. (보이의 죽음은) 정말 충격적이었다”면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으로서 정말 가슴 아팠다”고 덧붙였다.

치명적인 병의 미스터리

자간전증은 전 세계적으로 매년 임산부 7만 명 및 태아 5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솟은 혈압으로 인한 뇌졸중이나 태아로의 혈류 공급 장애로 인한 사망이 대부분이다.

임신 중이면 언제든 경고 없이 발생할 수 있으며, 34주 이전에 조기 자간전증이 생기는 경우도, 이보다 더 늦게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출산 후 6주 이내에 산후 자간전증을 앓는 여성들도 있다.

흑인 여성의 자간전증 발병률은 최대 60% 더 높다. 그러나 그 이유는 밝혀진 바 없다

과학자들은 왜 자간전증이 발생하는지에 관한 몇 가지 단서를 밝혀냈다. 우선 자궁에서부터 심한 염증이 생기면 산모와 태아 간 주고받는 섬세한 의사소통 흐름이 방해된다.

특히 태아에게 필요한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는 기관인 태반을 형성하는 자궁 내 혈관 재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태반을 통한 혈액의 흐름에 장애가 생겨 궁극적으로 모체의 혈압 조절 방식을 방해하게 되고, 이로 인해 점차 혈압이 높아지며 자간전증으로 이어지게 된다.

임상 약리학자이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치료학 교수로, 영국에서 ‘포피’라는 이름의 자간전증 환자 연구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이안 윌킨슨은 “여성이 임신하게 되면 모체의 심장은 태아와 태반을 위해 더 펌프질을 많이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간전증을 앓는 산모가 1분당 펌프질하는 혈액의 양은 (정상 산모에 비해) 1.5~2배까지 증가합니다.”

특히 기존 자가 면역 질환이 있는 여성, 나이가 40세 이상인 여성, 체질량 지수가 높은 여성의 경우 자간전증을 앓을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임신이 모체의 신체에 가하는 신체적 영향에 잘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왜 특정 여성에게서는 경고 없이 자간전증이 발병하고, 그렇지 않은 여성도 있는지 등 여전히 자간전증과 관련한 수많은 미스터리가 남아 있다.

아울러 흑인 여성의 경우 심각한 자간전증을 앓을 가능성이 60%나 더 높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양질의 건강과 건강 보험에 대한 접근성 저하와 관련 있다고 본다.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소재 헬스케어 업체인 ‘이노바 헬스 시스템’의 임산부 심장 질환 및 여성 심혈관 건강 책임자인 가리마 샤르마는 “사회 구조적 인종차별이 존재한다. 특정 환자 및 지역사회 주민들은 의료진을 빠르게 만날 수도, 정기 검진을 받을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샤르마는 이러한 요인만으로는 애초에 자간전증이 발병하는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는 자간전증 발병 가능성 평가 시 나이, 인종, 병력 등의 임상적 위험 요인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나, 이러한 임상적 요인에 기반한 예측의 경우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악명 높다.

샤르마 또한 “임상적 위험 요인으로는 섬세하게 판단하기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개선된 새 진단법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곧 자간전증 발병 위험을 높이는 요소가 무엇인지 더 알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자간전증 발병 예측

암, 만성 감염과 같은 다른 질병의 경우 보통 추가적인 분석을 위해 환자의 조직 일부를 떼어내 생검할 수 있지만, 임신한 여성의 자궁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연구할 쉬운 방법은 없다.

호주 시드니 공과대학교의 라나 맥클레임츠 부교수는 “유산 위험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보통 임신부의 태반 샘플을 채취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동물은 자간전증을 앓지 않기에 설치류 모델 등을 만들기도 어렵습니다.”

자간전증은 조산 위험을 매우 높인다

대신 연구자들은 혈액 내 특정 분자가 비정상적인 수치일 경우 무언가 이상이 있다고 추론하는 방식을 취한다. 특히 자궁에 염증이 심한 여성의 경우 태반 세포가 혈액 공급 장애에 반응해 ‘수용성 fms 유사 티로신 키나제1(sFlt-1)’이라는 단백질을 방출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혈관 내 sFlt-1 농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산모와 태아 간 연약한 장벽이 염증에 더 민감해지게 된다.

미국 매사추세츠 의과대학의 생물학자이자 2006년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인 크레이그 멜로는 “자간전증 환자의 경우 이 단백질이 정상 수치의 약 100배까지 더 높게 쌓인다”면서 “따라서 자간전증으로 인한 장기 부전이 발생하기 전 진단할 때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명과학 및 임상 연구 회사인 ‘써모 피셔 사이언티픽’은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청(FDA)으로부터 새로운 자간전증 진단법을 승인받았다. 심각한 질환을 치료 혹은 진단하는 의료 기술의 개발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우선 정상적인 태반 발달을 나타내는 단백질인 ‘태반성장인자’에 비해 sFlt-1 단백질 수치가 높은지 판단해 진단한다.

임상적으로 이 검사는 고혈압 증상을 보여 입원한 임신부가 앞으로 2주 이내에 중증 자간전증으로 발전할지 여부를 신속하게 예측하는 데 사용될 것이다.

앞서 이 진단법의 효능은 병원 18곳의 임산부 700여 명을 대상으로 2022년 진행된 연구를 통해 잠정적으로 입증됐다. 당시 진단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환자들은 증상이 더 악화하기 전에 더욱 철저한 의료진의 모니터링과 신속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한편 오하이오주립대 간호대학에서 모성 영유아 건강학을 가르치는 신디 앤더슨 교수는 이러한 새로운 진단 기술이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보지만, 여전히 임신 초기 자간전증 발병 가능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더 진보된 진단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태반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이른 시점에 잠정적인 자간전증 발병 신호를 포착할 수 있다면 자간전증을 예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앤더슨 교수는 “9주가 지나면 태반이 발달하게 된다”면서 “그렇다면 이러한 발병 신호를 조금 더 일찍 포착해 치료법을 동원해 개입한다면 이를 막거나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를 구현하고자 신기술에 주목하고 있는 과학자 집단이 있다. 최근 몇 년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기술이다.

‘태반 온-어-칩’

시드니의 한 실험실에서 맥클레임츠 교수와 팀원들은 살아 있는 태반 세포층을 지지 젤로 연결해 자연 조직과 유사한 구조를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

이들은 자간전증의 매우 이른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몇 가지 과정을 인체 외부에서 모델링하고자 한다.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기술로, 연구진은 ‘태반 온-어-칩(Placenta on-a-chip)’이라는 애칭을 붙였다.

맥클레임츠 교수는 “자간전증 진행 시 태반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방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우리 연구진은 임신 초기부터 태반 형성을 지시하는 세포층인 영양막도 이용하고 있다. 임신 초기 모체가 자간전증에 걸리기 전 겪는 염증, 산화스트레스, 산소 부족, 혈관 발달 장애 등이 영양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맥클레임츠 교수는 이 연구를 통해 언젠가 새로운 생체표지자가 개발돼 향후 초기 임산부 혈액 검사가 만들어질 수 있길 바란다.

아울러 자간전증과 관련한 조금 더 현실적인 모델이 개발된다면 연구자들이 질병 진행 경과를 바꿀 수 있는 잠재적 치료법을 테스트하기도 쉬워질 것이다.

맥클레임츠 교수는 “임신 중 자간전증을 겪은 여성 3명 중 2명이 심장마비 및 심혈관 질환으로 조기에 사망한다”면서 “따라서 임신 중 및 후 질환을 모두 예방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현재까지 자간전증 고위험군으로 판단되는 임산부에게 권장되는 유일한 치료법은 임신 12주~출산 전까지의 저용량 아스피린 복용뿐이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임신 16주 이전에 아스피린 치료를 시작한 여성의 약 60%는 자간전증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환자 40%는 자간전증에 취약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의사가 자간전증 고위험군으로 의심하지 않아 아스피린을 전혀 복용하지 않는 환자도 많다.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의 산부인과 교수인 앤드루 쉐넌은 “자간전증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많다. 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과학자들은 현재 자간전증임을 알 수 있는 생체표지자를 찾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진단용 혈액 검사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맥클레임츠 교수는 임산부에게 안전한 것으로 알려진 기존 약물의 새로운 용도를 찾는 과정(신약 재창출)에서 자간전증 치료가 발달할 잠재적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약물을 바이오프린팅한 태반 세포에서 테스트한다면 치료법 개발 과정이 더 빨라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소화불량, 속쓰림, 위궤양 치료에 널리 사용되는 약물인 ‘양성자펌프억제제’는 자간전증의 초기 단계를 유발하는 염증 과정을 일부 되돌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문가들은 혈액 질환 치료에 사용되는 단일클론 항체 의약품인 ‘에쿨리주맙’을 임신 초기에 투여하면 자간전증 발병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울러 맥클레임츠 교수는 “현재 당뇨병 치료제인 ‘메트포르민’이 잠재적인 치료제로 떠오르고 있으며,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메트포르민이 실제로 임신 초기 중증 자간전증 환자의 분만을 지연시켜 조산을 예방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한편 태반에서 sFlt1의 생성을 방지해 임신중독증의 진행을 막으려는 시도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FDA는 매사추세츠에 본사를 둔 ‘코만치 바이오파마’사가 개발한 ‘CBP-4888’이라는 새로운 약물을 임상 시험용으로 승인했다.

해당 약물은 유전자 발현과 세포 기능을 조절해 특정 단백질(이 경우 sFlt1)의 생산을 억제하는 짧은 유전자 코드 조각인 소간섭 RNA(siRNA)로 알려져 있다.

과학 고문으로 코만치 바이오파마와 함께 연구 중인 크레이그 멜로는 “이 분자의 놀라운 점 중 하나는 바로 수명이 길다는 것”이라면서 “한 번 투여하면 6개월~1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한 번만 투여해도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코만치 바이오파마는 가임기 여성 지원자를 대상으로 해당 약물의 안전성을 실험하고 있다.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자간전증을 앓는 임신부 50명을 대상으로 추가 임상시험을 한 뒤, 미국, 영국, 독일, 가나, 케냐, 남아프리카에서 더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코만치 바이오파마의 앨리슨 어거스트 최고의료책임자는 “유색인종 여성은 자간전증 발병 위험이 훨씬 더 높다”면서 말을 꺼냈다.

“그래서 미국에서 연구를 진행할 때 시카고 남부, 앨라배마, 세인트루이스 등 자간전증 발병 비율이 다른 곳보다 높은 지역으로 향할 계획입니다. 다른 인구 집단에 비해 훨씬 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맥클레임츠 교수는 이러한 연구 성과에 무척 흥분된다면서도 자간전증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종종 잘 알려지지 않은 만큼 앞으로도 이 분야와 관련된 투자가 집중되길 바란다.

“암 연구에 투입되는 자금과 비교하면 여성 건강(연구에 들어가는 자금은) 1~2%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 임신과 출산을 통해 태어납니다. 여성은 인구의 절반이기도 하지만, 나머지 절반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간전증을 앓는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기의 건강 또한 장기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꼭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