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앞에 분홍빛 물결이 흐른다. 정자와 연못, 그리고 꽃이 피어나는 한적한 산자락의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수묵화를 떠올리게 한다.
전남 담양군 고서면에 위치한 ‘명옥헌’은 그저 오래된 정원이 아니다. 매년 여름, 수백 년을 견뎌온 배롱나무가 꽃을 피우면 이 조용한 공간은 잠시나마 화려한 생명력으로 물든다.
해가 길어진 계절, 자연과 시간을 마주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 바로 명옥헌에서 시작된다.
명옥헌

‘명옥헌(鳴玉軒)’, 옥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처럼 고요하고 청아한 공간.
정자 앞뒤로 배치된 네모난 연못과 그 주변을 병풍처럼 감싼 백일홍(배롱나무)은 여름의 시작을 알리듯 7월 중순부터 8월까지 분홍빛 꽃잎을 가득 피운다.
이 배롱나무들 중에는 무려 300년을 버텨온 고목도 있어, 그 존재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준다. 꽃이 한잎씩 떨어질 때마다 연못 위에 물결처럼 퍼지고, 바람에 일렁이는 수면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차분하게 만든다.

무더위 속에서도 명옥헌이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이 자연의 절제된 아름다움 덕분이다.
담양의 산자락에 자리한 이 정원은 규모는 작지만, 조화롭게 배치된 연못과 정자, 그리고 소나무와 배롱나무들이 어우러져 한적한 여름의 정취를 완성시킨다.

명옥헌의 진짜 매력은 아침에 깨어난다. 새벽이슬에 젖은 배롱나무, 수면에 비친 꽃의 반영, 안개가 깔린 산 능선까지. 이 시간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은 사진작가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한 장면이다.
특히 해가 떠오르며 자연광이 정자와 꽃을 천천히 감싸기 시작하면, 명옥헌은 비로소 살아있는 그림으로 변한다.
셔터 소리조차 조용한 그 순간, 누군가는 꽃잎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또 누군가는 수면에 드리워진 고목의 반영을 정성껏 담아낸다.

명옥헌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관료였던 오희도가 자연 속 삶을 꿈꾸며 지은 정자다.
그의 아들 오이정에 의해 연못과 정원이 더해지며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데, 규모는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자연과 공간의 조화는 오히려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정자에 앉아 바라보는 연못은 그 자체로 고요함의 상징이다. 꽃잎이 흩날려 수면 위를 유영하고, 그 위로 늘어진 배롱나무 가지가 우아하게 드리운다.

그 어떤 장식도 없이, 단아한 구성만으로 감동을 전하는 명옥헌의 풍경은 시대를 넘어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소박한 듯 보이지만, 정원과 자연이 만들어낸 이 절제된 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가치를 느끼게 한다.
이곳에서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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