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5070, 부끄러워말고 여기 와서 연애하세요"
‘시놀’ 김민지 대표
2022년 기준 대한민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18.4%다. 여기에 베이비붐 세대인 50대 이상 중년층까지 더하면 전체 인구의 43%가 시니어다.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운 인원이 시니어인데, 중년·노년층을 위한 서비스는 다양하지 않다. ‘시니어 테크’라는 단어를 떠올려 봐도 건강관리에 국한한 서비스만 떠오른다.
김민지(38) 대표가 운영하는 ‘시놀’은 2022년 11월, 5070을 위한 데이팅 앱을 출시했다. 김 대표를 만나 5070대의 연애사에 주목한 이유를 물었다.
◇증권사 근무 시절 실버산업 가능성 보고 창업
‘시놀’은 5070대를 위한 데이팅 앱이다. 시놀은 ‘시니어 놀이터’의 약자로, ‘놀이터처럼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장’이라는 의미다.
이용법은 여느 데이팅 앱과 유사하다. 회원가입 후 위치·관심사·연령대 등 개인 정보를 입력하면 이성 친구를 연결해 준다. 노출된 친구 목록 중 마음에 드는 이가 있다면 ‘편지 보내기’ 기능으로 호감을 표시할 수 있다. 상대가 수락하면 앱 내 채팅창이 열리면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온라인상의 대화가 실제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출시 이후 100쌍 이상의 커플을 매칭했다. 아이디어의 참신함을 인정받아 지난 4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본선 진출사로 선정됐다. 같은 해 6월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스타트업 지원 공간 ‘프론트원’의 입주사가 됐다.
김민지 대표는 런던 대학교 연합 소속 로얄 할러웨이 대학교에서 회계 세무학을 전공했다. 2009년 미래에셋 증권 퇴직 연금 컨설팅 부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여러 대기업에 퇴직 연금 제도를 알리는 일을 했다. 은퇴 예정자를 모아 노후 자금 관련 상담도 많이 했다. ‘액티브 시니어(은퇴 이후 소비와 여가 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고령 인)’라는 단어를 이때 처음 접했다.
“은퇴라고 하면 지출과 사회적 교류를 줄인 무기력한 삶을 떠올리기 쉬운데, 제가 만난 분 중엔 은퇴 이후의 삶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여행, 소일거리, 공부 등 하고 싶은 활동을 하며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을 만나며 ‘앞으로 실버산업이 커지겠다’는 생각을 했죠.”
‘건강하고 즐거운 인생 후반전’을 지원하는 일이었지만, 정작 김 대표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5년 가까이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10시 넘어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였어요. 일은 너무 즐거웠는데, 피로가 누적돼 이유 없이 몸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죠.”
건강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뜻밖에 ‘창업’이었다. “몸이 안 좋아진 건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동료들도 직장 생활로 망가진 건강을 관리하고 싶어 했죠. 퇴근 시간이 늦어 헬스장 PT나 요가 수업을 들을 수 없었으니, 운동도 과외처럼 원하는 시간대에 집에서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방문형 PT 서비스가 없었거든요. 제가 직접 쓰려고 방문 운동 강사를 연결해 주는 앱 ‘후케어스’를 기획했습니다.”
2014년 퇴사 후 8년간 후케어스를 운영했다. 사업 말미에는 소속 강사만 500명이 넘을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방문 PT 중개 서비스는 처음부터 잘 됐습니다. 시장을 선점한 덕이죠. 사업 초기에는 월 매출이 3000만원을 넘길 정도였어요.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고 대면 활동에 제약이 생기자 사업 확장성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기존의 후케어스는 사업 규모를 줄이고,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안전과 감성 두 마리 토끼 다 잡은 앱 개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며 지난 여정을 반추해 봤다. 사업 초기, 의외라고 생각했던 지점이 떠올랐다. 예상 고객과 실제 이용자 간 간극이 있었던 것이다. “초반에는 저와 같은 3040대 직장인 여성을 타깃으로 사업을 펼쳤는데, 오히려 재활 치료나 근력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시니어 이용자가 더 많았습니다. 그때 시니어 세대가 디지털 기기 사용에 미숙할 거란 편견이 깨졌습니다. 또 여가 생활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생각이 있는 노년층도 충분히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니어 세대를 위한 앱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증권사에 다니던 시절처럼 다시 어르신들을 만나러 다녔다. “등산회, 지역 소모임, 동문회 등 여러 모임에 나가 50~70대 사이의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를 만나 함께 여가를 즐기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때마침 코로나19 이후 황혼 이혼 비율이 갑절로 늘었다는 기사를 보게 됐습니다. 그때 ‘시니어를 위한 데이팅 앱’이 떠올랐죠.”
스스로 시니어 대상 서비스에 편견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실버테크 서비스는 건강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산업군의 서비스를 분석하다 보면 건강 관련 앱이 너무 많아 충분히 건강한데도 꼭 아파야 할 것만 같아요. 타깃과 실제 사용자가 어긋난다는 점도 아쉬웠어요. 말은 ‘시니어용’인데 실사용자는 시니어가 아니었습니다. 자녀가 노인 부모의 건강 상태를 기록하거나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서비스가 많았죠. 시니어가 직접 즐겁게 사용할 수 있는 앱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눈높이에 맞는 앱을 만들기 위해 시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토대로 사용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외모와 나이, 활동 지역 등 직관적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2030용 앱과 달리 시니어 데이팅 앱에선 관심사와 개인 소개 글 등 정성적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하더군요. 시제품 사용자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관심사별 인물 추천, 자기소개 기능 등을 살리는 방식으로 정식 버전을 개발했어요.”
감성적이고 섬세한 UX(앱 내 이용 환경)를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글씨 크기를 일반 앱 대비 1.5배로 키워 시인성을 개선했습니다. 5070 세대가 익숙하게 느끼는 단어로 주요 기능의 이름을 지었죠. 예컨대 상대방의 프로필이 마음에 들어 호감을 표시할 때 ‘메시지 전송’이나 ‘좋아요’와 같은 단어 대신 ‘편지 발송’이라는 문구를 썼어요.”
‘놀이’를 위한 앱이지만 기본적인 안전과 보안 장치를 모두 갖췄다. “24시간 앱 활동 모니터링을 통해 단시간 내 반복적으로 여러 사람에게 말을 거는 악성 이용자는 차단하고 있습니다. 앱 내에선 서로 개인 번호를 주고받지 않아도 채팅이 가능합니다. 먼저 연락처를 공유하지 않는 이상 안심번호를 통해 통화가 이뤄지죠. 회원가입을 할 때는 타인의 사진을 도용하지 않도록 AI 인식 소프트웨어를 도입했습니다. 회원가입 도중 전면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프로필에 올린 사진 속 인물이 동일한지 얼굴 대조 분석을 하는 겁니다.”
홍보 활동도 ‘눈높이’로 진행했다. “주말 아침이면 잠재 이용자를 직접 만나기 위해 수도권 인근 등산코스로 향합니다. 요즘도 직원들과 조를 나눠 청계산, 도봉산 입구를 자주 찾습니다. 홍보 효과가 가장 좋은 곳이죠. 홍보 부스에 관심 갖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이 앱 써봤다’고 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낍니다.”
◇인생 후반부도 즐겁고 신나게
시놀은 서비스 출시 8개월 만에 가입자 수 1만명을 돌파했다. 앱의 누적 다운로드 수는 2만8000건 이상이다. 월평균 이용자 수는 7000명이다. 지금까지 3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현재 채팅 시간을 연장하거나 친구 추천 목록을 더 열람할 수 있는 유료 회원제로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유료 회원의 월 요금제는 약 25000원 수준입니다. 최근에는 앱 내 광고 제휴 제안도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광고나 앱 내 쇼핑몰 운영 등으로 수입을 다각화할 계획입니다.”
7월 중 ‘모임’ 기능이 추가된다. “문화생활을 함께 즐길 정기 모임 회원을 모집하는 기능인데요. 이용자는 소득 창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과거 강사 생활을 했던 시니어 회원들이 직접 방장이 되어 회원을 모집하는 거죠. 예컨대 미술 강사 출신의 회원이 ‘주 1회 그림 수업’ 방을 개설하는 식이죠. 개인의 전문성이나 역량에 대한 평가는 시놀 운영진이 직접 합니다. 아울러 올해 연말까지 앱의 기능별 이용 선호도, 채팅 지속 기간 등의 데이터를 분석해 친구 추천 알고리즘을 고도화하고, 매칭 정확도를 높이려 합니다.”
고립감과 외로움에 노출되기 쉬운 시니어가 삶을 보다 활기차게 살게 돕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사회·경제적 지위 변화, 자녀와의 교류 감소, 배우자와의 사별 등의 요소는 정신 건강에 타격을 줘 신체 노화 이상으로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시놀은 이 지점을 문제 해결 목표로 삼았어요. 시니어끼리 서로 만나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창구만 만들어도, 노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나 노인 고립 문제 해결 등 여러 사회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행복하게 늙는’ 인생의 중심에 시놀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김영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