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박찬욱·천만 장항준 제쳤다… '세계의 주인' 윤가은 감독의 '조용한 혁명'

한국 영화계의 거장과 기록적인 흥행 술사가 포진한 화려한 후보군 사이에서, 올해 백상예술대상의 선택은 가장 낮고 깊은 곳을 응시한 '독립영화의 저력'이었다.
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D홀에서 개최된 제6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감독상의 영예는 영화 <세계의 주인>을 연출한 윤가은 감독에게 돌아갔다. 이는 <어쩔 수가 없다>로 칸과 세계를 매료시킨 박찬욱 감독, 그리고 <왕과 사는 남자>로 1,6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흥행 역사를 다시 쓴 장항준 감독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이뤄낸 결과라는 점에서 영화계 안팎에 거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감독상 부문은 그 어느 해보다 치열했다. 한국 영화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거장 박찬욱과 대중적 신뢰가 두터운 변성현, 김도영, 그리고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장항준 감독까지 가세하며 시상 전부터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많은 이들이 거대 자본이 투입된 대작이나 화려한 미장센의 승리를 점쳤으나, 백상의 심사위원단은 영화적 본질과 사회적 통찰에 손을 들어주었다.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은 청소년의 성(性), 친족 성폭력,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규정한 '피해자다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18세 여고생 '이주인'(서수빈 분)이 겪는 일상의 균열을 통해, 피해자가 사회적 낙인에 저항하며 자신의 삶의 주권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 특히 이동진 평론가로부터 "함부로 명명하거나 헤집는 대신 온전히 맡기고 보듬는 연출의 넓고 깊은 품"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이미 작품성을 입증한 바 있다.

감독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윤가은 감독은 떨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무대에 올랐다. 윤 감독은 "평소 존경하고 좋아하던 거장 감독님들과 함께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큰 영광인데, 이렇게 과분한 상까지 받게 되어 마음이 무겁다"며 겸허한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영화는 결코 감독 혼자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곁에서 이끌어주고 힘이 되어준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특히 이날 <세계의 주인>에서 주인공 이주인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서수빈이 여자 신인 연기상을 수상하며 작품은 2관왕의 쾌거를 달성, 그 의미를 더했다.

이번 수상은 단순히 '이변'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엔 그 무게가 남다르다. 거대 자본과 화려한 캐스팅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 영화 시장에서, 예산의 한계를 뛰어넘는 세밀한 연출력과 묵직한 메시지가 대중과 평단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주인>은 이미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플랫폼 부문 초청과 제41회 바르샤바국제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하며 국제 무대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이번 백상 감독상 수상은 이러한 해외의 평가가 국내에서도 정점을 찍었음을 의미한다.
영화계 전문가들은 "장르물과 대작 위주의 시장에서 인간의 내면과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윤가은 감독의 승리는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지켜낸 귀중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박찬욱의 탐미주의와 장항준의 대중성을 넘어, '윤가은식 휴머니즘'이 한국 영화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우뚝 서게 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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