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에서 가장 존경받는 군주는?

오늘날 튀르키예인들이 자신들의 국부로 모시는 사람은
아타튀르크입니다.
아타튀르크는 지금의 튀르키예라는 나라를 만든 장본인인데요.

지금의 튀르키예 전신이 되는 국가가 바로 오스만 제국이었죠?
19세기 후반부터 오스만 제국에는
극단적 투르크 민족주의가 퍼지고 있었습니다.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청년 지식인, 청년 장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투르크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청년튀르크당을 조직하고
오스만 제국의 실권자로 군림했습니다.

그러다 1914년 1차세계대전이 터졌습니다.

처음엔 중립을 표방하려 했지만
오스만 제국은
역사적 원수인 러시아를 경계하다 보니
독일에 우호적인 입장을 더 보였고,
이에 영국의 처칠은 독일 편을 드는 오스만을 응징해야 한다며
강경하게 나갔습니다.

영국군은 다르다넬스 해협의 갈리폴리로 향했는데
처칠은 2주만에 오스만의 수도를 무너뜨리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1년 조금 안되게 전쟁은 이어졌고

영국군과 협상국 병력이
57만 명 중에서 25만 명이 전사하면서 끝이 납니다.
영국의 참담한 실패였죠.

이 기념비적인 갈리폴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오스만의 사령관이 케말 파샤였습니다.

갈리폴리 전투 이후 케말 파샤는 민족의 구국영웅으로 떠올랐죠.
‘파샤’는 작위명이고 그의 본명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였습니다.
1차세계대전은 동맹국의 패배로
끝이 났습니다.

결과적으론 오스만도 동맹국의 일원이었기에
전쟁에선 패전국에 속했던 거죠.
1차 세계대전 이후 협상국은
오스만을 없애버리려고 했습니다.

아타튀르크는 우리 투르크의 위기가 전부 청년투르크당의 잘못된 정치와 무능한 술탄 파디샤 때문이라며,
그들 때문에
투르크를 서구권에 넘길 수 없다고
민족주의를 강하게 자극합니다.

케말 아타튀르크는 아나톨리아 반도에 있던 앙카라를 중심으로
투르크 민족독립운동 겸
오스만의 술탄 파디샤 타도 운동을 전개했고

3년만인 1922년 오스만의 마지막이자 36대 술탄 파디샤였던
메흐메트 6세를 폐위시키면서
오스만 제국은 공식적으로 멸망하였고
청년튀르크당도 해산되었습니다.

오스만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뀌었고
케말 아타튀르크는 수도를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던 앙카라로 천도하면서
오늘날의 공화정부의 튀르키예가 성립되었죠.

그리고 1923년 아타튀르크가
튀르키예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