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억 8,800만 원에 달하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ESV’, 출시와 동시에 완판된 전기차 ‘리릭’. 한국지엠이 국내 시장에 내놓은 차량들은 화려함 그 자체다. 55인치 커브드 디스플레이와 증강현실(AR) 내비게이션 등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달리는 컴퓨터’다.
하지만 이 명품 차량들이 고장 났을 때 마주할 현실은 참담하다. 한국지엠이 프리미엄 수입차 브랜드로의 전환을 선언했지만, 정작 소비자를 위한 최후의 보루인 직영 정비소는 문을 닫는다. 불과 5일 뒤인 2월 15일, 전국의 쉐보레와 캐딜락 차주들은 ‘서비스 절벽’으로 내몰리게 된다.

오는 2026년 2월 15일부로 한국지엠의 전국 9개 직영 정비소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서울, 인천, 부산 등 핵심 거점에 위치한 이들 사업소는 그동안 난이도 높은 정비를 전담해 왔다. 노조가 법원에 폐쇄 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냈지만, 사측의 폐쇄 결정은 되돌려지지 않았다.
현장은 이미 혼란에 빠졌다. 폐쇄를 앞두고 신규 접수가 중단되면서, 하루 평균 120여 대의 차량이 정비를 받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고 있다. 15일 셔터가 완전히 내려가면, 이 차량들이 향할 곳은 오직 협력업체뿐이다.

한국지엠은 직영소를 폐쇄해도 전국 380여 개 협력 정비업체가 있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노사 협의 과정에서 드러난 데이터에 따르면, 엔진과 변속기 등 고난도 정비 역량이 검증된 곳은 약 90곳에 불과하다.
전체 협력업체의 23.7%만이 제대로 된 중정비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나머지 76%에 달하는 290개 업체는 단순 경정비 수준에 머물러 있거나, 역량 검증조차 되지 않았다. 증강현실 내비게이션이나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 같은 정밀 전자장비를 동네 카센터 수준의 인프라로 감당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설상가상으로 부품 공급망마저 흔들리고 있다. 세종물류센터 하청업체 계약 종료 여파로 숙련된 노동자들이 해고되면서 부품 조달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고칠 기술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교체할 부품마저 제때 공급되지 않는 ‘이중고’가 현실화된 것이다.
이미 현장에서는 부품 수급 지연으로 인한 수리 기간 장기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프리미엄 차량을 구매한 고객이 간단한 부품 하나를 구하지 못해 몇 달씩 차량을 운행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지엠은 쉐보레, 캐딜락, GMC 등 멀티 브랜드 전략을 앞세워 ‘아메리칸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판매할 때는 벤츠나 BMW와 견주는 럭셔리를 강조하지만, 서비스 인프라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모순이자 소비자 기만이다.
직영 서비스 폐쇄는 단순히 정비소가 몇 군데 없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브랜드 신뢰도의 붕괴다. 151만 명에 달하는 한국지엠 차주들은 당장 닷새 뒤부터 각자도생해야 한다. 1억 원이 넘는 차를 팔면서 서비스는 ‘운’에 맡기라는 한국지엠의 배짱 영업, 그 피해는 오롯이 소비자의 몫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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