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서 만나는 여백 속 질서… “조선의 미학, 온전히 전하고 싶어”

허윤희 기자 2026. 9. 17.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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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공예전시 맡은 백종환 감독
내달 7~11일 작품 50여 점 소개
“그 시대의 온도 그대로 느꼈으면”
백종환 대표는 “창덕궁 희정당을 처음 방문했을 때 느낀 여백 속 질서를 고스란히 전하고 싶다”며 “장인과 현대 작가들의 호흡을 느껴 달라”고 했다. /뉴시스

백종환은 최근 문화유산계에서 가장 돋보이는 이름이다. 국보 ‘백제금동대향로’에 이어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까지 ‘단 한 점’만을 위한 전시 공간이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국립부여박물관의 ‘백제대향로관’과 대구간송미술관의 ‘미인도실’을 만든 주인공이다.

그가 이번엔 궁궐 전각을 무대로 공예 전시를 펼친다. 다음 달 7일부터 11일까지 닷새간 열리는 ‘2026 가을 궁중문화축전’에서다. 공간 스튜디오 WGNB의 백종환 대표가 이번엔 창덕궁 희정당에서 열리는 공예 전시 ‘조선 공간 미학: 백(白)의 질서’ 감독을 맡았다. 16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전시 의뢰를 받고 희정당을 처음 방문했을 때 어떤 질서가 보였다. 서양 근대 문화가 도입된 공간인데도 조선의 미학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며 “그 시대 사람들이 느꼈던 공간감과 미학적 질서를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하고 싶다”고 했다.

창덕궁 희정당 외경. 전통 전각 안에 서양식 실내 장식이 결합된 독특한 구조다. /국가유산진흥원

‘밝은 정치를 펼치다’는 뜻을 지닌 희정당(熙政堂)은 전통과 근대가 섞인 독특한 궁궐 전각이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 화재로 소실됐으나, 1920년 경복궁 강녕전을 헐어 그 부재로 재건했다. 외관은 전통 목조 건축물이지만 실내 장식에는 샹들리에, 화려한 벽지 등 서양식 요소가 도입된 구조다.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 시대에는 왕의 집무실이자 외국 사신 등을 접대하는 곳으로 쓰였다. 백 대표는 “궁궐이라는 특성상 벽에 못을 박거나 천장을 활용하는 데 제약이 많았다”면서도 “하지만 어떤 공간에 배경을 만드느냐에 따라 다양한 관계성이 생겨난다. 제약이 오히려 차별화된 전시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창덕궁 희정당 소접견실. 전통 전각 안에 서양식 실내 장식이 결합된 독특한 구조다. /국가유산진흥원

이번 전시에는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전수자 26명과 현대 작가 7명이 참여해 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과거 귀빈을 접대했던 공간에는 ‘환대’의 의미를 담아 국가무형유산 최성우 보유자의 대형 궁중채화(宮中綵花·비단과 모시로 엮어낸 궁중 잔치용 꽃)가 놓인다. 다른 방에는 권대섭 작가의 달항아리와 점·선·면으로 공간을 만들어내는 오종 작가의 설치 작품이 어우러진다. 염장 조대용 보유자가 제작한 붉은 발이 걸리고, 허유정 작가는 대한제국의 상징인 오얏꽃을 은으로 재해석해 선보인다.

백 대표는 전시 주제인 ‘백(白)’을 여백의 개념으로 풀어냈다. “제가 생각한 백색은 여백이에요. 빈 종이를 그냥 여백이라고 부르진 않지만, 거기에 점 하나를 찍는 순간 나머지가 여백이 되죠. 점을 하나 더 찍으면 두 점 사이에 관계성이 생기고 운동감도 태어납니다. 그 다양한 관계를 공간 안에서 표현하고 싶었어요.”

백종환 감독은 "창덕궁 희정당을 처음 방문했을 때 느낀 여백 속 질서를 고스란히 전하고 싶다”고 했다. /국가유산진흥원

인위적인 조명은 최소화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 채광과 희정당에 원래 걸려 있던 샹들리에만으로 빛을 낸다. “관람객들이 그 시대의 온도를 그대로 느끼게 하기 위한” 연출이다. “전시를 보기 전 입구에서 희정당에 대한 설명을 먼저 읽어보셨으면 해요. 이 공간을 거쳐 간 역사적 사건과 인물, 겹겹이 쌓인 공간의 기억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장인과 현대 작가들의 작업이 궁궐 안에서 이렇게 호흡할 수 있구나 하는 것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시는 현장에서 신청해 관람할 수 있다. 축전 기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15분마다 25명씩 입장을 제한한다. 국가유산진흥원은 “하루 700~800명 정도 관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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