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 가을바람 불면… 살짝~ 데쳐먹는 재미… 살살~ 입안에서 녹네[이우석의 푸드로지]

2024. 10. 1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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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석의 푸드로지 - 푸짐하게 먹는 ‘샤부샤부’
中 원나라때 궁중 요리로 출발
日에 건너가 재료 변형·대중화
中 훠궈·태국 수끼 등과 유사
퐁뒤에 치즈 대신 육수 쓰기도
위 큰 사진은 경기 고양시 ‘따뜻할온’의 1인 샤부샤부. 1인용이라 냄비가 작지만 들어갈 건 다 들어간다. 아래 작은 사진 왼쪽부터 서울 광화문 샤부샤부 전문점 ‘노야’의 샤부샤부, 서울 다동 ‘세림’의 국수전골, 서울 자양동 ‘얼땅쟈’의 꼬치훠궈, 부산 명지동 ‘금소리’의 갈미조개 샤부샤부, ‘하모 유비끼’라 부르는 갯장어 샤부샤부.

기억 선연한 폭염의 날들이 언제 있었나 하는 듯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이러다가 곧 따끈한 국물 요리가 당기는 계절이 온다. 탕과 전골이며 찌개, 뚝배기가 있지만 우리 식생활에 이미 깊숙이 자릴 잡은 샤부샤부도 생각난다. 둘러앉아 팔팔 끓는 국물에 고기와 채소를 담가 먹는 요리다.

샤부샤부(しゃぶしゃぶ)란 이름은 일본어로 ‘찰방찰방’ ‘슬쩍슬쩍’ 정도의 상황을 가리키는 의태어다. 중국에선 솬솬궈라 쓰는데 솬은 씻거나 헹구다는 뜻의 쇄자를 쓴다. 영어로는 발음 그대로 샤부샤부(shabu shabu)라 표기한다. 이름 뜻처럼 고기나 채소를 얇게 저며 육수에 헹구듯 데쳐서 먹는 요리다. 1952년 일본 오사카 식당 ‘스에히로’(スエヒロ)에서 이름을 처음 붙여 팔았다고 전해진다. 이름은 식당에서 지었지만 요리법은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베이징(北京) 음식인 솬양러우는 원(元)나라 때 궁중요리로 출발했을 만큼 유서 깊은 음식이다. 칭기즈 칸의 손자인 원 세조 쿠빌라이 칸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1260년 원 세조 쿠빌라이 칸은 지금의 베이징인 옌징(燕京)을 수도로 정하고 정권 초기 반란군과의 전쟁을 벌였는데 이때 생겨난 음식이 솬양러우라고 한다.

직접 군대를 이끌던 쿠빌라이는 시장기를 느껴 평소 즐겨 먹었던 칭둔양러우를 먹고 싶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 중이라 시간이 없었던 나머지 주방장이 얇게 썬 양고기를 재빨리 데쳐 먹는 요리를 개발했다. 쿠빌라이는 새로운 음식에 매우 만족했고 이후 전쟁이 끝난 후 궁에서 ‘그때 그 요리’를 다시 해오라고 명했다. 이렇게 생겨난 요리가 바로 ‘데쳐 먹는 양고기’라는 뜻의 ‘솬양러우’다.

애초 궁중요리였지만 이후 청나라 때 둥라이순(東來順)이라는 식당 주인이 요리법을 빼돌려 일반인들도 맛볼 수 있게 됐다. 지금도 베이징을 비롯해 중국 북방에선 솬양러우를 즐겨 먹고 있다. 솬양러우는 방식이 비슷한 쓰촨(四川)식 훠궈(火鍋)와는 달리 담백한 육수 맛이 특징이며 주로 양고기를 넣어서 먹는다. 아무튼 솬양러우는 일본에 전해지며 쇠고기와 채소 등으로 재료가 바뀌며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1947년 잡지 등에 규니쿠노미즈타키(牛肉の水炊き)란 이름으로 솬양러우와 비슷한 요리가 소개됐는데 ‘소고기 전골’이란 뜻이다. 이것이 점차 인기를 끌면서 전국에 샤부샤부 메뉴로 통용되기 시작한다. 현대 일본에선 특별한 날의 가정식이나 외식 메뉴로 자리를 잡았다. 샤부샤부의 기본 원리는 식탁에서 국물을 끓이면서 채소와 고기를 데쳐 먹는 것이다. 고기를 굽다가 양념 국물을 붓는 스키야키와는 조리 방식이나 순서가 좀 다르다. 전골은 데쳐서 먹지 않고 재료를 모두 한데 넣고 끓이는 것이니 사뭇 다른 개념이다.

서울 광화문 샤부샤부 전문점 ‘노야’의 샤부샤부

샤부샤부는 담백하면서도 고기와 채소를 양껏 즐길 수 있어 꽤 균형 잡힌 영양 식단으로 꼽힌다. 기름기가 빠져 건강식이기도 하다. 식도락을 즐기는 이들은 물론, 식이요법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좋은 메뉴다. 고기를 쓰지만 생선으로 하는 경우도 많다. 새조개나 갯장어(하모) 등 주로 샤부샤부용으로 즐기는 어패류도 많다. 원래는 밑국물을 따로 내지 않지만 국물을 즐기는 한국에 와서는 여러 재료를 넣고 육수를 뽑는다. 다 먹고 난 후 마지막에 국수를 넣어 끓이거나 죽을 쑤는 것은 한국식 샤부샤부의 기본이 됐다. 그래서 한국에선 ‘샤부 칼국수’ ‘국수전골’이란 이름으로 샤부샤부 메뉴를 취급하는 음식점이 많다.

샤부샤부는 하나의 냄비 앞에 많은 인원이 둘러앉아서 함께 즐기는 ‘회식 요리’로 출발했지만 요즘은 나 홀로 가정이나 혼밥 문화가 퍼지며 일인용 샤부샤부집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작은 냄비에 자신이 먹고 싶은 것만큼 주문해서 즐기는 방식이다. 전문점이나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샤부샤부와 비슷한 방식으로는 솬양러우와 더불어 중국의 훠궈, 태국의 수끼 등이 있다. 훠궈는 샤부샤부와 같은 방식이지만 육수에 방점을 둔다는 점이 다르다. 탕의 종류에 따라 퍽 다양한 향신료를 넣고 끓여낸다. 홍탕과 백탕, 토마토탕 등 육수를 주문하고 재료를 각각 골라 넣어 먹는 것인데 요즘 중화권 전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솬양러우가 몽골 황제의 음식으로 출발했다면 훠궈는 서민들의 삶에서 시작했다. 장강 나루 사공의 고된 삶이 녹아든 식단이다. 덥고 습한 기후 속 밧줄을 당겨 배를 운항하며 고된 삶을 살아가던 사공 노동자들이 하루를 견디기 위해 먹었던 생존의 음식이었다. 사공들은 짧게 주어진 휴식 시간 중 재빨리 밥을 먹기 위해, 각자 가져온 값싼 내장 등 허드레 고기를 커다란 냄비 하나에 함께 데쳐 먹었다. 이때 상태가 좋지 않은 재료를 그나마 냄새 없이 먹기 위해 매콤한 양념을 넣고 펄펄 끓여낸 육수 냄비가 바로 쓰촨식 홍탕 훠궈의 기원이다.

냄비 하나에 둘러앉아 함께 데쳐 먹다 보니 때론 자신의 고기와 남의 것을 헷갈려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를 구분하기 위해 냄비 가운데 우물 정(井) 모양의 칸막이를 만들었는데 그 형태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사공들의 허기를 달랬던 홍탕으로 시작한 훠궈는 점점 세인들에게 인기를 끌며 대중화됐다. 식재료의 질 또한 원래의 값싼 허드레 고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더 이상 진한 양념으로 질 나쁜 고기 악취를 애써 감출 필요도 없어졌다. 좋은 식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기 위해 육수에 매운 향신료 양념을 빼고 버섯, 생강, 구기자 등 몸에 좋은 재료를 추가한 백탕도 생겨났다. 홍탕과 백탕을 함께 맛볼 수 있도록 현대의 훠궈집에선 ‘S’자나 일(一)자로 된 칸막이로 나눈 것을 판다. 한편 쓰촨 현지에선 꼬치 형태의 훠궈인 촨촨샹(串串香)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재료를 미리 꿰어놓았기 때문에 국물에 담가 먹기에 편리해 폭넓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훠궈는 우리 국수전골처럼 국물을 대놓고 마시지 않는다. 그냥 재료를 익히고 향신료를 더하기 위해 육수를 쓸 뿐이다. 태국의 수끼도 매우 유사하다. 수끼의 경우 어묵이 주재료이지만 고기나 야채, 면, 만두 같이 이런저런 음식을 넣어 먹는 요리다. 지금이야 이 같은 즉석 냄비 요리들이 샤부샤부나 핫포트로 통하지만 비슷한 방식은 과거 유럽에도 존재했다. 퐁뒤(Fondue)는 스위스 서부와 프랑스 동부 등 알프스 산악 지역의 전통 음식이다. 국물이나 오일을 쓰는 것도 있다. 우리 서북 지방의 어복쟁반과 열구자탕(신선로)도 함께 둘러앉아 먹는 관습이나 그 모양새는 샤부샤부와 닮았지만 이쪽은 미리 삶아 익혀서 내온 고기를 식지 않게 데워가며 즐기는 것이라 원리가 다르다. 게다가 부유층이 먹던 고급 요리로 출발한지라 사뭇 다른 느낌이다.

당최 끝날 줄 모르던 올여름의 습한 입김 대신 쾌적하게 불어든 선선한 공기, 오매불망 기다리다 만났지만 이마저도 순식간에 차가운 한파로 변할지 모른다. 수확의 계절, 짧은 나날에 친지들과 한 냄비 앞에 두런두런 모여 즐기는 자리는 가을 들판처럼 풍요로울 듯하다. 이젠 즐거운 자리를 데워줄 냄비가 당장 필요할 때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주꾸미 = 부드럽고 졸깃한 주꾸미는 샤부샤부로 먹는 경우가 많다. 태안 몽산포 몽대횟집은 원래부터 주꾸미 샤부샤부의 명가로 소문난 집이다. 봄보다는 가을철에 더욱 부드러운 주꾸미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주꾸미를 데쳐 먹고 국물에 칼국수를 말아준다. 주꾸미 대가리를 터뜨린 먹물 라면도 특별한 풍미를 낸다. 충남 태안군 남면 몽대로 495-83.

◇버섯 = 약초와 버섯골. 약초의 고장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유명한 집이다. 나물 중에도 약효가 좋은 약초를 소고기, 버섯과 함께 데쳐 먹는다. 각종 버섯과 방풍나물을 데쳤다 소고기를 싸먹으면 맛의 조화를 이룬다. 막판에 죽을 쑤면 약초 국물 보약 한 첩을 먹은 기분. 경남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로 555번길 35.

◇갈미조개 = 금소리 갈미조개. 갈매기 주둥이를 닮았대서 갈미조개라 부르는 개량조개. 낙동강 하구 부산 명지 쪽에서 많이 난대서 명지조개라고도 한다. 제법 커다란 조개 안에 발간 살이 들었는데 이게 요즘 별미다. 조갯살의 탄력과 그 달달한 맛과 향은 새조개 못지않다. 부산 강서구 르노삼성대로 602 선창회타운 내.

◇국수전골 = 세림. 오랫동안 다동을 지켜온 맛집 노포다. 한국식 샤부샤부인 국수전골로 유명하다. 육수에 소고기와 채소를 넣어 먹는데 이게 다 육수를 내려고 하는 일이다. 얼추 국물이 진해지면 국수를 말아 팔팔 끓인 후 즐기면 된다. 때론 국수보다 얇은 소고기를 데쳐 먹는 재미에 계산서 올라가는 줄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서울 중구 을지로1길 32-3.

◇차돌박이와 주꾸미 = 삭금쭈꾸미. 수족관을 두고 씨알 좋은 주꾸미를 파는 집. 냄비 안에는 버섯이며 채소로 이미 가득하다. 척 보기만 해도 육수에 과연 진심인 집. 장흥군 특산물 표고버섯에 갖은 양념이 진득하게 들었다. 산 주꾸미를 넣어 감칠맛을 더한 다음 건더기와 국물을 즐기면 된다. 전남 장흥군 장흥읍 물레방앗간길 14.

◇1인 샤부샤부 = 따뜻할온. 기본 샤부샤부 8800원부터 시작하는 1인 샤부샤부집이다. 냄비는 작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베트남 포, 탕탕마라, 맴맴고추장 등 다양한 육수를 선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오트밀 죽을 만들어 먹을 수 있어 좋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동송로 63 1층 101호.

◇채소 무제한 = 노야. 광화문에 위치한 샤부샤부 전문점으로 스키야키도 판다. 와규 샤부샤부(2만9000원), 차돌 샤부샤부(3만2000원)를 인원수대로 주문하면 배추와 청경채, 쑥갓, 분모자 등이 무제한 제공된다. 호주산 와규와 차돌박이를 넣고 희귀한 버섯들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 136 파이낸스빌딩 지하 2층.

◇촨촨샹(串串香) = 얼땅쟈. 중국판 샤부샤부 꼬치훠궈를 파는 집이다. 서울에서 중국 현지 음식점이 가장 많은 건대입구 부근에서 쓰촨 현지 인기 메뉴를 파는 집이다. 양고기와 소고기, 각종 내장, 오리피, 돼지 뇌 등 다양한 재료를 꿰어놓은 꼬치를 골라 탕에 담갔다 먹으면 된다. 서울 광진구 동일로18길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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