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사돈 갈등’ 승기 잡은 롯데…태광 ‘애경 밀어주기’ 막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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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홈쇼핑 이사회가 대폭 재편되면서 20년 가까이 이어진 롯데·태광 간 ‘사돈 갈등’의 판세가 바뀌었다. 이사회 장악력을 확보한 롯데에 비해 2대주주인 태광산업의 견제력은 크게 약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특별결의가 가능한 의결구조가 마련되면서 애경산업 인수를 발판으로 실리를 노리던 태광의 전략도 제동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13일 롯데홈쇼핑에 따르면 회사는 이날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사외이사 확대를 포함한 이사 선임 안건을 원안대로 의결했다. 이사회는 롯데 측 5인(사내 3, 사외 2), 태광 측 4인(태광 임원 3, 사외 1) 체제에서 롯데 측 6인(사내 3, 사외 3), 태광 측 3인(태광 임원 2, 사외 1) 체제로 재편됐다.  현재 롯데홈쇼핑 지분은 롯데쇼핑이 약 53%, 태광산업 및 계열사가 약 45%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 재편의 핵심은 롯데가 이사회 의석의 3분의2(66.7%)를 확보했다는 점이다. 상법상 특별결의 요건을 충족하게 된 롯데는 이제 태광의 동의 없이도 정관 변경이나 주요 자산 처분 등 핵심 경영사안을 단독 추진할 수 있다. 롯데홈쇼핑 측은 “태광산업이 제기한 의혹에 대응하고 이사회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태광산업이 제기한 내부거래 문제가 결과적으로 롯데를 자극해 역효과를 낳았다고 분석한다. 앞서 태광산업은 롯데백화점·하이마트 등 계열사 위탁상품 판매 과정에서 상법상 내부거래 승인절차 위반을 주장하며 김재겸 대표이사 재선임에 반대해왔다. 하지만 롯데 측은 롯데쇼핑과의 거래액이 2021년 207억원에서 2024년 134억원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태광 측 주장을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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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이어진 양사의 사돈 갈등에서 주도권이 롯데로 기울면서 2대주주의 반대로 해결되지 못한 숙원사업들도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추진될 가능성이 큰 사안은 법인명 변경을 포함한 브랜드 일원화다. 롯데홈쇼핑은 대외적으로 현재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지만 등기상 법인명은 여전히 ‘우리홈쇼핑’이다. 태광의 반대에 가로막혀서다.

양사의 악연은 2006년 롯데가 우리홈쇼핑을 인수할 당시 태광산업이 인수취소 소송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이후 태광은 2023년 서울 양평동사옥 매입건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경영이 고비를 맞을 때마다 견제하며 대립각을 세워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은 사촌처남과 매형으로 인척 관계지만 경영권 앞에서는 타협 없는 평행선을 달렸다.

다만 태광산업 입장에서는 애경산업 인수를 계기로 구상해온 ‘실익 중심 전략’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석유화학 등 기업간거래(B2B) 중심의 사업구조를 가진 태광산업은 그동안 홈쇼핑 채널을 통한 직접적인 수혜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애경산업을 인수해 화장품과 생활용품 등 기업·소비자간거래(B2C) 포트폴리오를 확보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주력 제품군은 방송효율이 높고 안정적인 현금창출이 가능한 대표적인 ‘캐시카우’ 품목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태광이 2대주주 지위를 활용해 롯데 계열사 제품이 차지해온 ‘골든타임’ 편성을 확보하고 애경 제품에 유리한 수수료율을 적용받는 데 주력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 태광이 내부거래 승인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경영진을 압박해온 것도 이를 협상카드로 활용해 애경산업의 판로를 넓히려는 포석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롯데가 이번 주총에서 이사회의 절대다수를 확보함에 따라 이 같은 압박 전략도 동력을 잃게 됐다. 유통 업계의 한 관계자는 “물리적 견제장치가 사라진 데다 오랜 갈등까지 이어진 만큼 태광이 내부거래 의혹 제기만으로 원하는 조건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태광이 애경산업 인수를 계기로 홈쇼핑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려 했지만 오히려 롯데의 강경대응을 자극해 이사회 내 발언권만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향후 태광이 지분 매각 등 출구전략을 모색하거나 법적 대응으로 장기전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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