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난 北, 양곡 유통비리 얼마나 심하길래..'허풍금지법' 등장
김정은, 5월엔 의약품 불법유통 척결 시도..'국가 장악력' 높이는 듯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북한이 이른바 '허풍방지법'을 제정해 양곡 유통 비리 척결에 나선 것으로 전해져 주목된다.
만성적인 배고픔에 시달리는 주민들이 악화한 식량 사정을 못 견디고 수확량을 축소 보고해 빼돌리고 있어 이런 법이 나온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국가정보원은 28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올해 북한에서 황해남도 지역에 군수공장을 동원해 생산한 농기계를 대규모로 투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허풍방지법을 제정했다고 한다"고 보고했다고 정보위 여야 간사들이 브리핑에서 밝혔다.
이어 "북한에서 워낙 쌀 생산량에 대해 허위 보고가 많았던 것 같다"며 "허풍방지법을 제정해 수확량 허위 보고를 근절하겠다는 강한 입장을 드러낸 것"이라는 국정원의 설명을 국민의힘 간사 유상범 의원이 전했다.
북한이 양곡 관리의 고삐를 바짝 죄는 것은 식량난이 그만큼 심상치 않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앞서 북한은 지난 25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열고 곡물 수매와 양곡 유통 비리 척결 방안을 다뤘다.
비록 이 회의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참석하지 않았으나,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김 위원장의 '위임'을 받아 회의를 주재한 것은 북한이 내부적으로 이 문제를 얼마나 비중 있게 다뤘는지 시사한다.
당시 회의에서는 "가을걷이와 탈곡에 모든 역량과 수단을 총동원·총집중해 양곡수매와 공급사업을 개선하고 당과 국가의 양곡정책 집행을 저해하는 현상들과의 투쟁을 강도높이 전개할 데 대하여 강조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전했다.
국가 식량 유통체계 등 양곡정책에 대한 비리 현상들이 포착됐고 이를 척결하는 방안 등이 논의됐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북한 양대 신문인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도 이날 한목소리로 식량과 관련한 허위 보고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음을 울린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노동신문은 1면 사설에서 "일군(간부)들은 허풍이 당과 인민을 속이고 당 정책 집행에 도전하는 행위로 된다는 것을 깊이 명심하고 영농실적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보고하는 기풍을 세워나가야 한다"고 다그쳤다.
민주조선 역시 "예상 수확고와 실수확고 판정을 과학적으로 엄밀히 하여 알곡 생산량과 수매량을 정확히 장악하며 허풍을 치는 현상이 절대로 나타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북한에서는 매년 이어지는 물난리와 가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국제 식량가격 폭등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까지 맞으면서 식량 사정은 더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식량난은 자연스레 생산량을 속이거나 개인이 양곡을 빼돌리는 등 수매와 유통 과정의 비리와 불법행위 남발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일각에선 북한의 식량 사정이 나쁜 건 사실이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 재현될만한 정도는 아니며, 이번 '허풍금지법' 제정이 국가의 시장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는 시도라는 해석도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월 정치국 회의에서 의약품 사재기와 불법 유통을 통제하지 못한 중앙검찰소장(남한의 검찰총장 격)을 질타하고 인민군 군의부문(의무부대)을 전 지역에 투입한 바 있는데, 이와 유사한 맥락이라는 것이다.
최은주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은 국제사회 제재의 장기화를 염두에 두고 정책을 짜고 있다"며 "제재를 상수(常數)로 놓고 보면, 내부 폐단을 시정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건 사활을 걸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특히 북한이 지난해 1월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5개년 경제계획의 핵심은 '체감할 수 있는' 인민 생활의 향상이다.
제재로 물자 수입이 막힌 상황에서 금속·화학공업은 발전에 한계가 있고, 결국 주민들이 먹고 입고 쓰는 농업·경공업 부문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최 연구위원은 "북한으로서는 피부에 와닿는 식량 문제를 안정적으로 풀어내는 게 올해 당의 성과를 보여줄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앞으로도 만성적인 수매 과정의 탈법을 바로잡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la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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