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베팬알백] <51-①>1997년 PO 삼성 꺾고 KS행 티켓

“내 평생 그런 일은 처음이었어요. 벤치에서 대타 교체를 지시했는데 타자가 타석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기가 치겠다고 하니…. 그야말로 항명이죠. 그런데 거기서 끝내기 안타를 날릴 줄 누가 알아겠습니까.”
연천 미라클 김인식 감독은 1997년 가을을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이 돋는다.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의 플레이오프 2차전. 4-5로 뒤진 9회말 1사 1·2루. 여기서 LG 서용빈은 벤치의 대타 교체 지시를 거부(?)하고 타석에 들어선 뒤 끝내기 2루타를 날리면서 역전 드라마를 만들었다.
LG는 그 기세를 타고 해태 타이거즈와 대망의 한국시리즈에서 맞붙게 된다.
[엘팬알백-LG 트윈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51화는 1997년 포스트시즌 스토리다.
<51-①>에서는 삼성과 4년 만에 격돌한 플레이오프 이야기를 다룬다.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서용빈의 9회말 대타 교체 거부와 끝내기 안타, 그리고 이어진 한국시리즈 진출 과정은 우리의 추억 속에 진한 향수로 남아 있다.

◆LG vs 삼성 4년 만의 PO 격돌…고교 선후배 사령탑들의 매치업
삼성은 준플레이오프에서 쌍방울을 2승1패로 꺾고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1차전(전주) 5-4 승리, 2차전(대구) 1-3 패배, 3차전(전주) 4-3 승리. 매 경기 숨막히는 접전을 펼친 끝에 4위 삼성이 업셋에 성공했다.
이로써 LG와 삼성이 1997년 한국시리즈 진출 티켓을 놓고 5전3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됐다.
양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격돌하는 것은 사상 두 번째. LG는 4년 전인 1993년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 2승3패로 밀리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포스트시즌 전체를 놓고 보면 LG는 1990년 우승할 당시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4승무패로 꺾은 바 있어 한 번씩 희비가 엇갈렸다. 이번이 세 번째 가을야구 격돌이었다.
[엘팬알백] <50편>에서 설명했듯이, 그해 양 팀 사이에서는 크고 작은 악연이 계속 빚어졌다.
어린이날 시리즈에서 부정 방망이 시비가 일어나면서 삼성 백인천 감독과 LG 천보성 감독의 감정싸움이 격해졌다. 6월 22일에는 백 감독과 LG 조 알바레즈 3루코치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7일 후 백 감독이 뇌출혈로 입원해 조창수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았다.
백 감독은 8월 1일 현장에 복귀했지만, 9월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더블헤더 제1경기에서 패한 뒤 뇌출혈 증세가 재발해 결국 스스로 중도사퇴를 했다.
그러면서 조창수 감독대행이 지휘봉을 이어받아 팀을 수습한 뒤 플레이오프 무대까지 견인했다.

조창수 감독대행과 천 감독의 인연도 세간의 화제였다.
둘은 경북고 3년 선후배 사이였다. 선배인 조창수는 1967년 임신근 강문길 등과 함께 경북고를 사상 처음 전국대회 우승(대통령배, 청룡기 2관왕)으로 이끌면서 ‘경북고 신화’의 서막을 연 주인공. 천보성은 남우식 배대웅 정현발 등과 함께 1971년 고교야구 역사상 최초로 5관왕(대통령배, 청룡기, 봉황대기, 황금사자기, 쌍룡기) 신화를 썼다.
이들은 단순한 선후배 사이가 아니었다. 천 감독의 사촌누나와 조 감독대행의 사촌동생은 부부로 집안이 사돈지간으로 엮이기도 했다. 둘은 1975년 실업야구 롯데 자이안트 창단 멤버로 활약을 하기도 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조창수는 해태 타이거즈 원년 코치로, 천보성은 삼성 내야수로 활약하면서 가는 길이 엇갈렸다.
조창수가 1990년부터 1991년까지 LG에서 코치생활을 한 뒤 팀을 떠나자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천보성이 귀국해 1993년부터 LG 코치를 맡았다. 조창수는 1993년부터 삼성에서 코치생활을 시작했다.
이런 얽히고 설킨 인연의 실타래 속에 둘은 1997년 가을, 플레이오프라는 백척간두 무대에서 팀의 운명을 짊어지고 격돌하게 됐다.

한편 플레이오프에 앞서 양 팀은 비상이 걸렸다.
삼성은 입단 3년 만에 홈런(32)왕에 오르면서 타점, 최다안타, MVP까지 휩쓴 주포 이승엽이 준플레이오프에서 어깨를 다쳐 걱정이 태산이었다.
LG는 1997년 실질적인 에이스로 자리잡은 최향남이 충수염 수술로 전열에서 이탈한 부분이 뼈아팠다.

◆류지현 생애 첫 만루홈런으로 기선제압

플레이오프 1차전부터 홈런 5방과 16점이 터지는 난타전으로 전개됐다. LG 김용수(4.1이닝 3실점)와 삼성 성준(4.2이닝 5실점) 두 선발투수가 예상보다 일찍 강판한 가운데 첫판부터 불펜싸움이 펼쳐졌다.
중반까지 홈런 공방 속에 엎치락뒤치락하는 시소게임. LG는 2회말 박종호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그러자 삼성은 3회초 김한수의 3점홈런으로 전세를 뒤집었다.
4회말 이날의 히어로가 등장했다. 2사 만루에서 '꾀돌이' 류지현이 좌월 만루포를 터뜨리면서 5-3으로 재역전에 성공했다. 이는 플레이오프 역사상 최초의 만루홈런일 뿐만 아니라 류지현 개인적으로 생애 첫 그랜드슬램. 값진 타이밍에서 터져나온 천금의 결승포였다.
LG는 이어 5회말 김동수의 중월 솔로홈런으로 6-3으로 달아났다.
2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던 차명석이 7회초 2사후 류중일에게 솔로홈런을 허용해 6-4로 쫓기자 천보성 감독은 이상훈을 조기에 투입했다.
그해 47세이브포인트(10구원승+37세이브)로 신기록을 세우며 구원왕에 오른 이상훈은 8회까지 4타자를 모조리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LG가 7회말 타자일순하며 5점을 뽑아내 사실상 승기를 잡자 9회에는 전승남이 등판해 이상훈에게 휴식을 줬다.

9회초 은퇴를 앞둔 삼성 이만수(39세22일)가 대타로 나서 솔로홈런을 날려 상심한 삼성 팬들의 마음을 달래줬다.
승부의 버스가 이미 떠난 뒤에 터져나온 홈런. 하지만 이 홈런포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당시 플레이오프 최고령 홈런 기록(현재 기록은 삼성 강민호의 40세2개월1일)이었고, ‘헐크’ 이만수의 현역 선수 마지막 홈런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치겠습니다”…서용빈의 항명과 끝내기 안타

1차전이 중반까지 밀물과 썰물이 오갔다면, 2차전은 막판에 스릴 넘치는 역전에 재역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LG는 신인 임선동, 삼성은 좌완 김태한이 선발로 등판했다. 삼성은 에이스 김상엽이 있었지만 좌타자가 많은 LG를 고려해 김태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2차전의 하이라이트는 8회 이후였다. LG가 4-1로 앞선 가운데 8회초 무사 1루가 되자 이상훈이 등판했다. 이대로 2연승을 결정짓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경기는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2사 1·2루로 이어진 상황에서 양준혁의 2루 쪽 내야땅볼을 2루수 박종호가 어렵게 백핸드로 잡아 1루로 던졌지만 세이프. 공식기록은 내야안타였다. 그런데 이때 송구가 1루수 뒤로 빠지면서 2루주자 김종훈이 홈까지 파고들었다. 스코어는 4-2로 좁혀졌다.
어수선한 분위기. 그런데 이상훈이 여기서 삼성 신동주에게 좌월 3점홈런을 맞고 말았다. 스코어가 단숨에 4-5로 역전됐다.
1루쪽 LG 관중석은 충격을 받은 듯 침묵했고, 3루쪽 삼성 팬들은 LG의 상징 인물인 이상훈을 무너뜨렸기에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9회말 LG 마지막 공격. 삼성 박동희(작고)를 상대로 1사 1·2루 찬스를 잡았다.
그러자 삼성 벤치는 전날 선발투수로 등판한 좌완 성준을 마운드에 올렸다. 3번타자 서용빈~4번타자 심재학으로 연속 좌타자가 등장하는 타순이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한 마무리투수가 없는 삼성의 고민이 드러나는 상황이기도 했다.
LG 벤치도 움직였다. 천보성 감독이 김인식 수석코치에게 서용빈을 빼고 좌투수에게 강점을 보이는 우타자 최동수를 대타로 내보내라는 시그널을 보냈다.
서용빈은 1차전에서 성준에게 3타수로 묶인 데다 이날도 앞선 4타석에서 무안타로 부진했다.
김 코치가 타석 쪽으로 걸어나가는 서용빈을 불렀다.
“용빈아, 용빈아!”
서용빈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타석 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김 코치가 다급하게 그라운드로 달려가면서 다시 한번 크게 서용빈을 불러 세웠다.
“야, 서용빈!”
서용빈이 그제서야 고개를 돌렸다.
“감독님이 대타로 바꾸자고 하신다.”
최동수가 덕아웃 앞에서 방망이를 붕붕 돌리며 타석으로 나서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서용빈이 가뜩이나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을 내저었다.
“자신있습니다. 제가 치겠습니다. 치게 해주세요.”
서용빈은 김 코치를 향해 완강하게 대타 교체 거부 의사를 밝혔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항명이나 마찬가지였다.
서용빈이 너무나 자신감을 보이자 김 코치는 벤치 쪽의 천 감독을 쳐다봤다. 천 감독과 김 코치는 1953년생으로 동기. 1975년 대학 졸업 후 실업야구 롯데 자이안트 창단 멤버로 활약한 친구 사이였다.

천 감독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손짓으로 “OK” 사인을 냈다. 서용빈의 기백을 믿고 밀어붙였다.
성준의 초구 직구가 날아들었고, 서용빈의 방망이는 거침없이 돌았다. 타구는 우중간을 완전히 갈랐다. 발 빠른 2루주자 박종호와 1루주자 박준태가 모두 홈을 밟았다.
끝내기 2루타!
서용빈은 2루를 밟은 뒤 마치 농구선수가 덩크슛을 할 때처럼 하늘 높이 점프를 하며 환호했다.
덕아웃의 선수들이 모두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갔고, LG 팬들은 잠실구장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8회초 신동주가 이상훈을 홈런으로 무너뜨릴 때부터 승리의 기쁨에 미리 도취됐던 삼성 응원석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최종 스코어 6-5.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었다.
“제 야구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몇 장면 중 하나죠. 잊을 수 없죠. 처음 타석으로 나갈 때 김인식 수석코치님이 저를 불렀지만 사실 듣고도 못 들은 척하면서 타석으로 갔어요. 제가 그 전까지 성준 투수에게도 약했기 때문에 벤치에서는 대타로 교체하려고 했던 것이죠. 하지만 그땐 진짜 자신이 있었어요.”
서용빈 현 LG 트윈스 전력강화 코디네이터는 “그날 상황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며 웃었다.
야구에서 감독의 대타 교체 지시를 타자가 거부하는 건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 그것도 플레이오프 무대, 9회말 마지막 찬스였다.
반기 또는 항명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여기서 끝내기안타가 아니라 실패를 했다면 서용빈과 LG 벤치 모두 나락으로 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항명? 그렇죠. 항명이었죠. 투수는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갔을 때 종종 교체 거부 의사를 나타낼 때가 있잖아요. 한 타자만 처리하면 승리투수가 될 수 상황이라든지, 타자에게 자신감이 있다든지, 아직 힘이 남아 있다든지…. 하지만 사실 타자가 교체를 거부하는 건 보기 쉽지 않죠(웃음). 그래 놓고 제가 안타를 못 쳤다면 역적이 되는 거죠. 하지만 그날 저는 두려움이 없었어요. ‘내가 여기서 못 치면 안 된다’는 생각은 단 1%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자신감만 가지고 타석에 들어섰어요.”

서용빈은 마치 조금 전에 끝난 경기를 복기하듯 당시의 상황을 되새기며 말을 이어갔다.
“성준 선배가 초구를 던지려다가 투수판에서 발을 빼고는 생각을 가다듬더라고요. 제가 직구를 노릴까, 변화구를 노릴까, 다시 한 번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걸 보고 저는 직구를 던질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초구가 오자마자 바로 방망이를 돌렸던 거죠. 그날 덕아웃 앞에서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는데 팬들이 그때까지 난리였어요. 1루쪽 그물망을 붙잡고 우시는 팬들도 있고….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이날의 승부는 사실상 그해 플레이오프 전체 판도를 가르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만약 서용빈이 끝내기 안타가 아닌 병살타를 쳤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만딩고’ 김상엽에게 눌린 LG 타선…막판 대추격전 불꽃도 무위

안방에서 2연승을 거둔 LG는 휘파람을 불며 대구 원정을 떠났다. 남은 3경기 중 1승만 추가하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상황.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더라도 힘을 비축한 채 해태와 맞붙어야 승산이 있기에 LG는 내친 김에 대구에서 플레이오프 승부를 끝내겠다는 각오로 달구벌에 입성했다.
벼랑 끝에 몰린 삼성은 에이스 김상엽 카드를 꺼내들었다. LG는 실질적 에이스 최향남의 급작스런 충수염 수술로 손혁을 3차전 선발투수로 내세웠다.
삼성이 1회말 2점을 선취했다. 부진했던 이승엽 양준혁의 플레이오프 첫 타점이 터져나왔다.
LG는 2회초 신국환의 솔로홈런으로 추격했지만, 삼성은 3회말 최익성의 솔로홈런, 4회말 신동주 김한수의 연속 2루타로 5-1로 도망갔다.
‘만딩고’ 김상엽의 역투에 밀리던 LG는 8회말 대추격을 시작했다.
선두타자 동봉철이 볼넷을 골라나가자 삼성 조창수 감독대행은 2차전 선발투수였던 좌완 김태한을 호출했다.
서용빈의 총알 같은 중전안타성 타구가 유격수 류중일의 다이빙캐치에 걸려들면서 1루주자까지 횡사하고 말았다. LG의 희망도 함께 날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심재학이 스트레이트 볼넷을 골라나간 뒤 김동수가 중월 2점홈런을 날렸다.
이어서 이병규의 우중월 3루타가 터졌다. 삼성은 다급하게 박충식을 투입했지만 폭투. 3루주자 이병규가 홈을 밟아 순식간에 스코어는 5-4, 1점차로 좁혀졌다.
삼성은 8회말 1사 만루서 대타 황성관의 스퀴즈번트로 6-4로 달아났다.
LG는 9회초 선두타자 송구홍의 중전안타로 찬스를 잡았지만 2점차였기에 강공으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판 대추격전의 불꽃도 여기까지였다. 결국 득점에 실패하면서 LG는 2연승 후 첫 패를 안았다.

◆아, 이상훈! 통한의 결승 투런포 허용…2승 후 2연패

4차전 선발투수로 LG는 김용수가 나섰지만, 마운드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삼성은 2년생 정성훈을 깜짝 선발로 내세웠다.
LG는 1회초 시작하자마자 류지현의 볼넷과 박준태의 몸에 맞는 공으로 무사 1·2루 황금찬스를 잡았다.
삼성은 급기야 좌완 전병호로 투수를 교체했다. LG는 여기서 선취득점에 실패하면서 5회까지 전병호의 ‘흑마구’에 끌려갔다.
삼성은 1회말 이승엽의 솔로홈런과 4회말 2점을 추가하면서 3-0으로 치고나갔다.
LG는 6회초 마침내 전병호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1사 후 김동수의 우익선상 2루타, 이병규의 우전 적시타로 1점을 뽑은 뒤 신국환의 좌익선상 2루타로 2·3루 찬스를 이어갔다.
삼성이 박동희를 구원투수로 호출한 뒤 LG는 송구홍의 3루수 땅볼로 2-3으로 따라붙었다.
계속된 2사 1·3루. 류지현의 1루 선상 강급 땅볼을 이승엽이 다이빙캐치를 하는 순간 이닝이 끝날 줄 알았지만, 박동희의 베이스커버가 늦어지면서 내야안타가 됐다. 3-3 동점.
LG는 여세를 몰아 7회초 역전에 성공했다. 구원등판한 김태한을 상대로 이병규가 중전적시타를 날리면서 4-3으로 스코어를 뒤집었다.
7회말 차명석이 선두타자 김한수에게 중전안타를 맞자 LG는 ‘여기서 끝내겠다’는 듯 이상훈을 투입했다.
하지만 이상훈은 평소보다 볼 스피드가 4~5㎞ 떨어질 정도로 구위가 정상은 아니었다.
정경배의 희생번트와 대타 김태균의 삼진으로 만들어진 2사 2루에서 김종훈에게 중전적시타를 맞아 4-4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다음 타자는3차전에서 솔로홈런과 2루타를 날리며 타격감이 절정에 올라 있는 최익성. 여기서 좌중월 2점홈런을 내주면서 LG는 4-6으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안방에서 2연승을 올린 뒤 적지에서 2연패를 당한 LG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서울로 향했다. 무엇보다 이상훈이 또 홈런포를 맞고 무너졌기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4년 전과 정반대…3승2패로 삼성 꺾고 KS 진출

최후의 일전. LG는 4일을 쉰 임선동을, 삼성은 2일밖에 쉬지 못한 김상엽을 선발투수로 낙점했다.
LG가 유리해 보였지만 중반까지는 예상과는 정반대 분위기로 흘렀다.
1회초 선두타자 최익성이 솔로홈런을 날리며 ‘삼성판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이어 좌전안타를 치고 나간 류중일의 도루와 양준혁의 중전적시타가 터지면서 삼성이 2-0으로 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이때부터 행운의 여신이 LG를 향해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1회초 적시타를 때린 양준혁이 투수 견제구에 횡사를 한 것이 반전의 시작이었다.
2회초에는 1사 후 삼성이 3연속 안타를 쳤지만 득점에 실패했다. 우전안타로 출루한 양용모가 2루도루를 시도했지만 LG 배터리의 피치아웃에 걸려 아웃되고, 중전안타로 출루한 김종훈이 최익성의 좌전안타 때 무리하게 3루까지 달리다 횡사를 했다.
LG로선 하마터면 초반에 분위기를 완전히 넘겨줄 뻔했지만, 삼성의 연이은 성급한 주루플레이 덕분에 위기의 강을 건넜다.
문제는 LG 타선. 5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역투를 펼친 김상엽에 눌려 침묵을 이어갔다.
반격은 6회말 시작됐다. 선두타자 동봉철이 김상엽을 흔들기 위해 3루수 쪽 기습 번트안타로 출루한 것이 기폭제로 작용했다.
삼성은 김상엽의 투구수가 73구에 이르자 교체를 단행했다.
하지만 버팀목 김상엽이 물러나자 삼성의 고질적 약점인 불펜 문제가 드러났다.
6회에만 전병호~변대수~김태한~성준을 줄줄이 투입했지만 LG의 안타 퍼레이드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무려 6점을 뽑아내며 전세를 뒤집었다.
서용빈의 좌전안타와 김동수의 희생번트로 만들어진 1사 2·3루에서 포수 김영진의 패스트볼로 1-2로 따라붙었다. 이병규의 중전 적시타로 동점을 만든 뒤 신국환의 좌전안타 때 투수 변대수의 중계플레이 실책로 3-2 역전에 성공했다. 심재학의 좌월 3루타(1타점), 대타 김선진의 좌전안타(1타점), 박종호의 투수 앞 번트안타, 류지현의 좌중월 2루타(1타점)가 쉴 새 없이 폭발한 다음에야 LG의 신바람 공격이 멈췄다.
김동수의 희생번트를 제외하고 선두타자인 2번타자 동봉철부터 타자일순 후 1번타자 류지현까지 무려 8연타수 안타. 플레이오프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었다.
7회말 김동수의 1타점 2루타까지 더해지면서 LG는 5차전을 7-2로 크게 이겼다. 결국 3승2패로 한국시리즈 진출 티켓을 거머쥐었다.

LG는 1993년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 2승3패로 패퇴한 아픔을 4년 만에 고스란히 되갚아줬다.
4년 전에는 1~2차전(잠실)에서 2연패를 한 뒤 3~4차전(대구)에서 2연승을 올렸지만 잠실 최종 5차전에서 패하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이번에는 1~2차전(잠실)에서 2연승한 뒤 3~4차전(대구)을 내주고, 5차전(잠실)에서 승리하면서 당시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었다.
LG는 이로써 전신 MBC 청룡 시절을 포함해 4번째 한국시리즈 진출(1983년, 90년, 94년, 97년)에 성공했다.
천보성 감독 부임 첫 시즌에 예상을 뒤엎고 한국시리즈 무대에 오른 것 자체가 경사였다.
하지만 그해 한국시리즈를 복기해 보면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대구에서 플레이오프를 끝냈더라면 휴식을 취한 뒤 한국시리즈에 올라갈 수 있었지만, 5차전 혈전을 치른 까닭에 하루 휴식 후 해태와 한국시리즈를 치르게 됐다.
특히 최종 5차전 스코어(7-2)만 놓고 보면 가볍게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중반까지 뒤지는 바람에 최후의 보루 이상훈을 5회부터 투입해 소모한 점이 뼈아팠다.
이상훈은 4.1이닝 53구로 1안타 무실점 역투를 펼쳤지만 LG로선 한국시리즈를 생각한다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LG는 MBC 청룡 시절이던 1983년 한국시리즈에 이어 14년 만에 해태와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하게 됐다. 14년 전에는 용과 호랑이의 싸움으로 '용호상박'이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청룡은 1무4패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준우승에 그쳤다.
LG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해태와 처음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 상황. 최고의 흥행카드인 LG와 해태가 우승을 놓고 격돌하면서 팬들의 관심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플레이오프를 5차전까지 치르며 체력을 소모했지만 LG 천보성 감독은 “공도 배트도 둥글다”면서 맏형 김용수를 1차전 선발투수로 결정했다.
9번째 한국시리즈를 맞이하는 해태 김응용 감독은 “승산은 반반”이라며 신중한 발언을 하면서 선동열 이후 뉴 에이스로 떠오른 이대진을 1차전 선발투수로 내정했다.
해태 시대의 마지막 한국시리즈는 10월 19일 잠실구장에서 막이 올랐다.
[엘팬알백] <51-②>편에서 계속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유튜브 '이재국의 와일드피치' 운영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