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싸다"는 말의 착시…창고형 약국 가격의 구조

최재경 기자 2026. 5. 8.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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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싼 품목 vs 아닌 품목”…가격의 이중 구조
그래픽 by 주혜성 기자

창고형 약국 1년 그 후

창고형 약국 등장 1년. 약국 시장은 가격, 구조, 제도 전반에서 변화를 맞고 있다. 본지는 총 5회에 걸쳐 창고형 약국의 확산이 가져온 변화와 쟁점을 짚어본다. - 편집자 주 

①창고형 약국 1년, 무엇이 달라졌나 ②창고형약국의 진화  ③저가 판매 가격의 구조 ④인근 약국의 경영 악화 ⑤제도화·법 개정 현황

창고형 약국이 '저가'를 내세우며 확산되고 있지만, 실제 가격을 들여다보면 모든 품목이 동일하게 저렴한 것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품목에서는 일반 약국과 큰 가격 차이를 보이지만, 상당수 제품은 차이가 크지 않는 등 선택적으로 가격 경쟁이 나타나는 구조다.

실제 특정 지역 4곳의 창고형 약국을 방문해 주요 상비 의약품 가격을 조사한 결과, 품목별 가격 양상은 뚜렷하게 갈렸다.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정 500mg', 진통소염제 '탁센' 등은 일반 약국 대비 약 10~20% 낮은 수준에서 형성됐다. 반면 일부 소화제는 가격 차이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비타민 제품 '텐텐'이나 고용량 제품의 경우 가격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일부 이벤트 품목은 최대 20~30%까지 낮은 가격이 형성되며, 동일 제품임에도 약국 간 가격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 사례도 확인됐다.

결국 창고형 약국의 가격 전략은 전 품목이 아닌 특정 품목에 집중된 '선별적 저가' 판매로 요약된다. 일부 의약품 가격을 크게 낮춰 고객을 유인한 뒤, 건강기능식품이나 화장품 등에서 수익을 보전하는 구조다.

왜 싸게 팔 수 있나…대형화 유통 구조

이 같은 가격 차이는 단순한 할인 경쟁이라기보다 유통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창고형 약국의 저가 판매가 확산되면서 약국 간 가격 경쟁을 넘어 유통질서 왜곡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대량 구매 기반의 저가 매입 구조가 시장 경쟁 조건을 바꾸면서, 판매 가격을 둘러싼 제약사와 약국 간 불신도 커지는 양상이다

현장 약사들은 창고형 약국의 저가 판매를 단순한 '할인 경쟁'으로 보지 않는다. 대량 구매를 기반으로 한 할인구간(가격 구간)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소형 약국은 애초에 해당 구간에 진입하기 어려워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의약품의 공공성과 약국의 전문성보다 가격 경쟁에만 초점이 맞춰질 경우, 단기적으로는 일반의약품 가격 인하 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약국 경영 악화와 시장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약사는 "일반의약품의 경우 제약사에서 신제품이 출시되면 영업사원들이 일정한 판매 가격대를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그 범위 내에서 조정해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며 "제약사가 정해준 금액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약국이 비슷한 수준에서 판매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창고형 약국의 저가 판매 이후 일반 약국이 상대적으로 비싸게 판매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규모가 작은 약국은 일반의약품이나 영양제도 10~20개 단위 구매도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수백 개 단위 구매를 전제로 한 가격 구조는 따라갈 수 없는 게임"이라며 "같은 약을 취급하면서도 경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량 흡수·접근성 저하 우려…"동네 약국에서 약 못 구할 수도"

또 다른 서울의 한 약사는 창고형 약국의 가격 경쟁이 단순한 매출 감소를 넘어 의약품 접근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창고형 약국이 특정 품목을 대량으로 확보하면서 일반 약국의 공급 여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며 "극단적으로 보면 동네 약국에서는 약을 구하지 못하고, 특정 대형 약국까지 이동해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보건의료 측면에서 바람직한 구조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소형 약국 폐업 사례와 창고형 약국 확산 간 연관성도 제기되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현장에서는 체감 변화가 분명하다는 반응이다.

창고형 약국 한 곳의 매출이 일반 약국 수십 곳에 맞먹는다는 평가가 나오는 만큼, 소비 수요가 특정 채널로 집중되는 구조는 이미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구조를 둘러싸고 창고형 약국과 제약사 간 별도의 할인 계약 조건이 있는 이른바  '히든 계약'이나 '연간 계약' 등 다양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창고형 약국의 대량 구매에 따른 할인 조건이 별도의 계약 형태로 운영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은 초기 등장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그러나 제약사들은 이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대부분 온라인몰 기반의 공개된 주문거래 구조를 따르고 있으며, 특정 약국에만 별도의 공급 조건을 제공하는 것은 공정거래 측면에서 어렵다는 입장이다.

즉, 현재의 가격 격차는 특정 약국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거래 규모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설명이다.

이에 규모와 물량을 통한 할인가격 판매라는 구조에 대해 약국가에서는 단순한 가격 경쟁 대응을 넘어 제도적 보완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의약품 정찰제 도입과 같은 가격 체계 재정비 방안이 거론된다. 또한 할인 중심 구조 대신 비가격적 보상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예를 들어 대량 구매에 따른 직접적인 가격 할인 대신 사은품 제공이나 물류 지원 등으로 보상을 전환할 경우, 가격 왜곡을 줄이면서도 거래 유인을 유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부 지역 약사회는 '구매 파워'를 확보하기 위해 제약사와 MOU를 맺고, 의약품을 공동 구매해 지역 회원 약국에 공급하는 등 가격 대응에도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