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같은 홈런을 치고도 다른 반응을 보인 KIA 타이거즈 김도영이 “믿음이 생겼다”며 ‘봉인 해제’를 알렸다.
홈 6연전이 펼쳐졌던 지난주 김도영은 4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다.
3·4일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두 경기 연속 담장을 넘겼던 김도영은 7일에는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17·18호포를 동시에 날렸다.
김도영의 시즌 18호포는 6-6의 승부를 7-6으로 만든 극적인 결승 홈런이기도 했다.
보기에는 똑같은 김도영표 홈런이었지만 김도영의 표정과 이야기는 달랐다.
4일 경기가 끝난 뒤 김도영은 “감은 최악이다. 어떻게 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타석에서 만족스러운 느낌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몸이 만들어내는 홈런이라는 게 김도영의 이야기였다.
7일 경기 후 김도영은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면서 ‘확신’에 차 있었다.
이날 김도영은 2개의 홈런 포함 시즌 첫 4안타 경기를 펼쳤다.
어떻게 치는 지도 모를 정도로 감은 좋지 않았고 그래서 이것저것 생각이 많았지만, 김도영은 더 이상 자신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격폼 생각 없이 오로지 타석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김도영.
홈런 뒤 반응은 달랐지만 4일과 7일 김도영은 ‘뛰는 야구’에 대해서는 같은 이야기를 했었다.
4일 김도영은 유격수 방향으로 내야안타를 기록했고, 7일에는 3루수 앞으로 공을 보낸 뒤 공보다 먼저 1루에 도달했다.
김도영은 4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면서 ‘뛰는 야구’의 시작을 알렸다.
오늘부터, 1회부터 전력으로 뛰려고 했다는 김도영은 “하나 나왔다”면서 준비된 달리기를 이야기했다.
7일에도 김도영은 특유의 홈런과 함께 내야안타도 선보였다.
1회 첫타석에서 3루 땅볼로 물러났던 김도영은 3회 두 번째 타석에서 중앙 담장을 넘겼다.
그리고 4회 세 번째 타석, 이번에도 3루 쪽으로 공이 갔지만 결과는 달랐다.
전력 질주로 1루로 내달리면서 세이프 판정을 받았다.
1회 상대 수비진은 보통의 타자주자를 상대하듯 수비를 했다.
하지만 3회, 김도영은 1회와는 다른 질주로 1루를 통과했다.
그 순간 김도영을 감싸고 있던 껍데기가 깨지는 느낌이었다.
확신을 가지고 치고 달렸던 김도영은 결국 승부가 6-6 원점으로 돌아간 8회 그냥 물러나지 않았다.
시원하게 챔피언스필드 밤하늘을 가르면서 7-6 승리를 만들었다.

타석에서 김도영은 무섭다. 걸리면 넘어간다.
감이 안 좋다고 해도, 중요한 승부처에서 아쉽게 고개 숙이는 순간도 많았지만 홈런 1위 자리에 김도영의 이름이 랭크됐다.
4안타를 날렸던 날, 사실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장면은 홈런이 아니라 내야안타였을 것이다.
진짜 김도영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올 시즌 KIA와 김도영의 최우선 목표는 ‘완주’였다.
지난 시즌 지독했던 부상에 시달렸던 만큼 부상 없이 풀타임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욕심 많은 김도영이지만 힘든 시즌을 보냈기 때문에 뛰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눌러야 했다.
그만큼 타석에서 김도영은 가슴을 쳤다.
뛰지 않는 김도영은 어려운 선수이기는 하지만 경기 분위기를 송두리째 바꿀 두려운 주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상대 벤치의 계산은 복잡하지 않았다.
굳이 승부해서 홈런타자를 소환하느니 50% 확률을 생각하면서 어려운 승부를 하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도영이 뛴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완벽한 몸상태의 김도영이 루상에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싼 홈런 하나 맞고 흐름을 끊는 게 더 나을 지도 모른다.
주자 김도영은 배터리를 흔들면서 타자와의 승부를 복잡하게 만든다.
그러다 수비 실수가 나오면 대량 실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제 상대들의 머리는 복잡하다. 김도영의 봉인이 해제됐다.
“이제 시작”을 외친 김도영의 흐름에 팀 상황도 절묘하다.
김도영 앞뒤로 동료들이 시너지 효과를 연출하고 있다.
빅재현이 신나게 그라운드를 누비면서 상대를 흔들더니, 김민규라는 또 다른 얼굴이 등장했다.
고졸 루키지만, 아니 고졸 루키라서 겁이 없다. 일단 뛰고 본다.
‘김도영 앞에 주자 김민규’라는 새로운 조합은 득점 확률을 극대화하는 KIA의 새로운 무기가 됐다.
무조건 뛰겠다면서 눈에 불을 켜고 있는 1루 주자 김민규를 생각하면 느긋하게 변화구 승부를 하기 어렵다.
덕분에 김도영의 수싸움은 단순해진다.
직구 위주로 생각하면서 힘 대결을 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나성범의 든든한 활약도 김도영을 더 위협적인 타자로 만든다.
될 듯 말 듯 롤러코스터를 타던 초반 모습과는 확실히 다른 나성범이다.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나성범은 타이밍 고민을 했다.
시동이 걸리는 것 같다가도 멈췄던 이유가 바로 이 타이밍이었다.
답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나성범은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다.
좌측으로 향하는 안타, 나성범의 타석에서 쉽게 볼 수 없던 안타가 연달아 나왔다.
이범호 감독은 “포인트 앞에 가져가서 크게 크게 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정확하게 공을 보고 확인하고 치는 느낌이었는데, 나가면서 확인하는 그런 변화들이 있으니까 페이스가 좋아진 것처럼 보인다”며 “타이밍을 앞으로 가져가기 위한 변화를 시도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빗맞는 안타도 나오고 있다”고 나성범의 타이밍 싸움을 이야기했다.
김도영을 피해도 이제는 만만치 않은 나성범이 기다리고 있다.
김도영이 원하던 정면 승부가 펼쳐지게 됐다.
물론 유난했던 지난 시즌이었기에 부상 잔상은 쉽게 지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팬들도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김도영을 지켜볼 것이다.
하지만 김도영의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뛰는 김민규에 치는 나성범이 앞뒤로 배치되면서 외롭게 버티던 김도영은 동료라는 날개를 달았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향했던 의문을 거두면서 김도영이 알을 깨고 나왔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