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미식가와 성찰하는 RM, 그리고 청년 동호를 만났던 그곳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10. 16. 09:03
[취향저격] 스물아홉 살 부산국제영화제, 그 성찰의 시간들: OTT 디아스포라와 꿈꾸는 세 명의 청년 (글 : 장은진 대중문화평론가)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부산국제영화제가 스물아홉 번째 항해를 무사히 마쳤다. 서른 살을 목전에 둔 BIFF(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아홉이란 수는 미완의 숫자이자 완전한 0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불완전한 숫자다. 서른을 향해 달려가는 BIFF는 스물아홉 해라는 지난한 세월을 거치며 부산이 유네스코 영화 창의도시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혈기왕성했던 청년의 모습을 지나 어느덧 중후한 얼굴의 중년이 되어가고 있다.
매년 10월이 되면 축제의 도시를 강타하는 태풍도 부산을 향해 모여든 시네 키즈들과 콘텐츠 마니아들의 열기를 꺾을 순 없었다. 영화제를 방문한 인파는 예년에 비해 다소 감소했지만 매회 상영관마다 관객 점유율 85% 이상을 기록했고 4,500석 규모의 야외 상영장 오픈 시네마 관람객은 객석을 꽉꽉 채웠다. 영화제 기간 중 ID 카드를 목에 건 외국인 게스트들과 관계자들의 모습은 줄어든 대신 그 자리는 전국의 영화 마니아들과 어릴 적부터 영화를 보며 자라온 영상 MZ와 Zalpha 세대가 채웠다. 우리의 일상에 스며든 영화제가 된 느낌이랄까.
올해의 BIFF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차분하고 깊이 있게'. 피할 수 없는 OTT와의 상생도 기꺼이 받아들이며 작년보다 증가한 9편의 작품을 소개했고 영화제 개막작도 넷플릭스에 공개된 작품인 <전,란>이었다. 영화제 기간 내내 주공간인 영화의 전당 맞은편 KNN 외벽에는 <전,란>과 <지옥2>의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영화제에서 OTT 콘텐츠를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비단 BIFF뿐만이 아닌 글로벌 영화제들의 화두는 OTT 시대 영화제라는 플랫폼 안에서 장르와 매체의 경계를 허문 콘텐츠들의 디아스포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올해 BIFF 상영작과 영화제의 이슈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여전히 꿈꾸는 남자들'이었다. 각자의 가슴에 담은 그 꿈은 무언가를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자 에너지다. 내일을 위해 오늘도 꿈꾸는 행복한 세 청년을 BIFF에서 만났다. 나이와 상관없이 푸르른 꿈을 가진 남자들을...
첫 번째 만난 남자는 이노가시라 고로 상 혹은 마츠시게 유타카. 12년 만에 영화로 제작된 <고독한 미식가>의 영화 버전은 일본이 아닌 부산에서 첫 공개됐다. 마츠시게 유타카가 레드 카펫에 등장하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야외 상영장 무대 인사에서는 함께 출연한 배우 유재명을 자신이 매우 좋아하는 배우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의 식재료에서 찾은 비밀의 육수를 찾아가는 여정은 고로 상의 음식을 향한 철학과 세계관을 보여준다. 만화가 원작이고 오랜 기간 OTT로 방영된 터라 MZ 세대들에게도 익숙한 이노가시라 고로 상의 인기는 대단했다. 영화제 측은 입장객들에게 젓가락 세트를 선물로 증정하는 이벤트도 벌였다.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속 고로 상은 여전히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의 근원을 찾아 여행한다. 영화는 드라마와 달리 짧은 시간 내에 극적 서사가 이루어져야 하기에 좀 더 코믹하고 역동적이다. 예상치 못한 표류로 한국에 와서 처음 먹어본 황태국과 에소라는 일본의 심해어 재료를 찾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깨닫는 소소한 행복. 110분 길이의 영화로 압축되면서 전달하는 메시지는 나 홀로 즐기는 고독한 행복이 아닌 함께 연대하고 상생하는 즐거움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고로 상은 고독한 미식가가 아닌 사랑을 나눠주는 행복한 미식가일지 모른다. 죽음을 앞둔 초로의 신사가 그토록 찾아 헤매이던 궁극의 맛은 바로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던 추억의 맛이자 그 맛의 비결이 한국 식재료에 있었으니, 이쯤 되면 고로 상의 영화는 한일 양국의 미래, 음식으로 화합하는 화해의 제스처로 읽혀진다. 음식과 문화, 그것은 모든 장벽과 담을 허물고 손을 내민다. 우린 자연 앞에 다 똑같은 하나의 미물일 뿐이라고. 고로 상의 음식을 향한 호기심과 음식을 향한 지치지 않는 에너지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미소 짓게 되고 공복의 위장을 덮는 음식처럼 힐링이 된다.
영화제 가이드북을 넘겨보다가 특별 상영에 눈길이 갔다. 올해 칸영화제에도 초대되었던 <영화 청년 동호>.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들고 15회까지 이끌었던 BIFF의 수장 김동호 위원장의 영화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2011년 영화의 전당이 완공되기 전 수영만 요트 경기장 컨테이너 박스 시절을 회상하며 걷는 팔순의 노장. 신수원 감독의 말처럼 '지치지 않는 뚜벅이' 김동호 위원장은 걷고 또 걸으며 영화의 풍랑을 헤쳐 나갔다.
스물아홉 BIFF에겐 수많은 사연이 있지만 그중에서 아마 김동호 위원장의 에피소드는 밤을 새워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영화제의 발전과 부흥을 위해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던 그가 어느 날 배우로 등장하고, 75살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영화 청년 동호의 도전은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걷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영화 청년 동호>를 보며 너무 그리운 얼굴들과 작별한 것에 대한 슬픔도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여배우 강수연, 영화제 해외 출장 중 유명을 달리한 김지석 프로그래머, 영화계의 큰 형이었던 이춘연 대표까지. 그리고 영화제는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어 '고운 사람, 이선균'으로 그를 추모했다. <사과>에서 만난 청년 이선균을 함께 나이 들어가며 서리가 내리 앉은 배우로 스크린에서 만나고 싶었는데... 떠난 이를 향한 그리움은 가을밤 달맞이꽃처럼 피어났다 수그러들었다.
마지막 청년은 BTS RM이 영상에 그린 청춘 스케치다. <알앰: 라이트 피플 롱플레이스>는 자신의 음악 작업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성찰을 펼친다. 꽃길만 걸어온 청춘이 아닌, 치열하게 고민하는 영상을 통해 고치를 벗고 나비가 돼가는 성장을 보여주는 청춘의 Reality Bites다. RM과 고로 상, 영화 청년 김동호 세 명의 청년 덕분에 풍성한 영화제를 즐겼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부산국제영화제가 스물아홉 번째 항해를 무사히 마쳤다. 서른 살을 목전에 둔 BIFF(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아홉이란 수는 미완의 숫자이자 완전한 0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불완전한 숫자다. 서른을 향해 달려가는 BIFF는 스물아홉 해라는 지난한 세월을 거치며 부산이 유네스코 영화 창의도시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혈기왕성했던 청년의 모습을 지나 어느덧 중후한 얼굴의 중년이 되어가고 있다.
매년 10월이 되면 축제의 도시를 강타하는 태풍도 부산을 향해 모여든 시네 키즈들과 콘텐츠 마니아들의 열기를 꺾을 순 없었다. 영화제를 방문한 인파는 예년에 비해 다소 감소했지만 매회 상영관마다 관객 점유율 85% 이상을 기록했고 4,500석 규모의 야외 상영장 오픈 시네마 관람객은 객석을 꽉꽉 채웠다. 영화제 기간 중 ID 카드를 목에 건 외국인 게스트들과 관계자들의 모습은 줄어든 대신 그 자리는 전국의 영화 마니아들과 어릴 적부터 영화를 보며 자라온 영상 MZ와 Zalpha 세대가 채웠다. 우리의 일상에 스며든 영화제가 된 느낌이랄까.
올해의 BIFF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차분하고 깊이 있게'. 피할 수 없는 OTT와의 상생도 기꺼이 받아들이며 작년보다 증가한 9편의 작품을 소개했고 영화제 개막작도 넷플릭스에 공개된 작품인 <전,란>이었다. 영화제 기간 내내 주공간인 영화의 전당 맞은편 KNN 외벽에는 <전,란>과 <지옥2>의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영화제에서 OTT 콘텐츠를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비단 BIFF뿐만이 아닌 글로벌 영화제들의 화두는 OTT 시대 영화제라는 플랫폼 안에서 장르와 매체의 경계를 허문 콘텐츠들의 디아스포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꿈꾸는 남자들: 청년 동호, 유쾌한 고로 상, 성찰하는 RM
첫 번째 만난 남자는 이노가시라 고로 상 혹은 마츠시게 유타카. 12년 만에 영화로 제작된 <고독한 미식가>의 영화 버전은 일본이 아닌 부산에서 첫 공개됐다. 마츠시게 유타카가 레드 카펫에 등장하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야외 상영장 무대 인사에서는 함께 출연한 배우 유재명을 자신이 매우 좋아하는 배우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의 식재료에서 찾은 비밀의 육수를 찾아가는 여정은 고로 상의 음식을 향한 철학과 세계관을 보여준다. 만화가 원작이고 오랜 기간 OTT로 방영된 터라 MZ 세대들에게도 익숙한 이노가시라 고로 상의 인기는 대단했다. 영화제 측은 입장객들에게 젓가락 세트를 선물로 증정하는 이벤트도 벌였다.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속 고로 상은 여전히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의 근원을 찾아 여행한다. 영화는 드라마와 달리 짧은 시간 내에 극적 서사가 이루어져야 하기에 좀 더 코믹하고 역동적이다. 예상치 못한 표류로 한국에 와서 처음 먹어본 황태국과 에소라는 일본의 심해어 재료를 찾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깨닫는 소소한 행복. 110분 길이의 영화로 압축되면서 전달하는 메시지는 나 홀로 즐기는 고독한 행복이 아닌 함께 연대하고 상생하는 즐거움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고로 상은 고독한 미식가가 아닌 사랑을 나눠주는 행복한 미식가일지 모른다. 죽음을 앞둔 초로의 신사가 그토록 찾아 헤매이던 궁극의 맛은 바로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던 추억의 맛이자 그 맛의 비결이 한국 식재료에 있었으니, 이쯤 되면 고로 상의 영화는 한일 양국의 미래, 음식으로 화합하는 화해의 제스처로 읽혀진다. 음식과 문화, 그것은 모든 장벽과 담을 허물고 손을 내민다. 우린 자연 앞에 다 똑같은 하나의 미물일 뿐이라고. 고로 상의 음식을 향한 호기심과 음식을 향한 지치지 않는 에너지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미소 짓게 되고 공복의 위장을 덮는 음식처럼 힐링이 된다.
뚜벅이 영화 '청년 동호'와 성찰하는 청춘 RM
스물아홉 BIFF에겐 수많은 사연이 있지만 그중에서 아마 김동호 위원장의 에피소드는 밤을 새워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영화제의 발전과 부흥을 위해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던 그가 어느 날 배우로 등장하고, 75살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영화 청년 동호의 도전은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걷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영화 청년 동호>를 보며 너무 그리운 얼굴들과 작별한 것에 대한 슬픔도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여배우 강수연, 영화제 해외 출장 중 유명을 달리한 김지석 프로그래머, 영화계의 큰 형이었던 이춘연 대표까지. 그리고 영화제는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어 '고운 사람, 이선균'으로 그를 추모했다. <사과>에서 만난 청년 이선균을 함께 나이 들어가며 서리가 내리 앉은 배우로 스크린에서 만나고 싶었는데... 떠난 이를 향한 그리움은 가을밤 달맞이꽃처럼 피어났다 수그러들었다.
마지막 청년은 BTS RM이 영상에 그린 청춘 스케치다. <알앰: 라이트 피플 롱플레이스>는 자신의 음악 작업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성찰을 펼친다. 꽃길만 걸어온 청춘이 아닌, 치열하게 고민하는 영상을 통해 고치를 벗고 나비가 돼가는 성장을 보여주는 청춘의 Reality Bites다. RM과 고로 상, 영화 청년 김동호 세 명의 청년 덕분에 풍성한 영화제를 즐겼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SBS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아이들 걷는데 주택이 '와르르'…생사 가른 단 몇 초
- 착석 확인 않고 카트 출발시켜 이용객 사망…캐디 집유
- 도축장 탈출해 행인 덮쳤다…비명 지르며 혼비백산
- "거기서 다 봤대" 경찰 말에…신고자 찾아간 뺑소니범
- 식당서 훠궈 폭발…담배 피우고 국물에 라이터 '휙'
- 전국체전 마라톤 주자 70대 운전 승용차가 추돌, 선수 1명 부상
- "윤, 홍준표보다 더 나오게"…여론조사 조작 의혹 '증폭'
- 국감 나온 뉴진스 하니, 결국 눈물…'하이브 따돌림' 호소
- 스타벅스 로고 입혀 '뚝딱'…위조 텀블러 13만 개 팔았다
- '측량 자료' 빼돌려 제공하다 덜미…"명절에 포도상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