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여성 스파이들은 액션 히로인을 넘어 치밀한 서사와 내면을 지닌 입체적 캐릭터로 진화해왔다. 빗발치는 총성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과 지적 두뇌 플레이들. 관객들의 마음을 한번에 사로잡은, 그들의 피할 수 없는 필살기를 소개한다.

본드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여인
<007 카지노 로얄>(2006) │ 베스퍼 린드
소속▶ 영국 HM 재무부
활동▶ 2000년대 몬테네그로
필살기▶ 제임스 본드마저 무너뜨린 매혹
관능적이면서도 청순한 매력이 돋보이고, 신비롭고 지적이며 강인한 면모를 지닌 본드 걸. 에바 그린이 연기한 ‘베스퍼 린드’는 지금까지 스물네 편이나 만들어진 ‘007’ 시리즈의 수많은 본드 걸 중 최고로 손꼽힌다. 강한 추진력과 냉철함을 갖춘 것은 물론 흑발에 글래머러스한 매력까지, 천하의 제임스 본드도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모든 걸 버릴 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여인이다. 베스퍼 린드는 멜로라 해도 손색없을 이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와 환상의 궁합을 선보였다.
그토록 완벽한 그녀의 약점은 복잡한 감정 상태. 이중 첩자인 그녀는 본드를 배신하지만 결국 그에게 돌아오고, 그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이는 본드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다음 편인 <007 퀀텀 오브 솔러스>(2008) 속 본드의 감정선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베스퍼 린드의 존재는 제임스 본드가 훗날 왜 플레이보이가 됐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해준다.

적을 사랑한 스파이
<색, 계>(2007) │ 왕 치아즈
소속▶ 중국 국민당
활동▶ 1940년대 중국 상하이
필살기▶ 연기력과 위장술
홍콩에서 대학을 다니며 연극부 활동을 하다가 항일 단체에 가담하게 된 왕 치아즈. 무술이나 정보를 다루는 기술은 없지만 연기력 하나는 일품이었다. 게다가 고혹적인 외모마저 지녔으니 미인계 작전에 최적화된 스파이.왕 치아즈는 친일파 관료 ‘이’를 유혹하기 위해 막부 인으로 위장하고는 그를 꾀어내려 하지만 실패한다.
이후 상하이에서 둘은 다시 만나게 되고 그녀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하지만, 동시에 그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결국 그녀는 ‘이’에게 암살 작전을 폭로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구하지만 자신은 체포되어 사형당한다. 영화에서 왕 치아즈로 분한 탕웨이는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들었다는 평을 받으며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외유내강의 뇌섹녀
<본 시리즈>(2002~2016) │ 줄리아 스타일스
소속▶ CIA→트레드스톤→반정부
활동▶ 해커 활동 2000년대 전 세계
필살기▶ 완벽한 해킹 실력
CIA에서 비밀리에 창설한 암살 단체 ‘트레드스톤’. 니키 파슨스는 이 조직 요원들의 이동, 정신 건강 체크, 중간 연락을 담당하는 내근직 여성 요원이다. <본 아이덴티티>(2002), <본 슈프리머시>(2004), <본 얼티메이텀>(2007), <제이슨본>(2016) 등 시리즈를 거듭하며 그녀의 존재감은 더욱 높아졌다. 특히 제이슨 본이 위기에 처할 때면 순간적인 기지로 뒤에서 돕는 조력자이기도 하다.
니키 파슨스는 다른 요원과는 달리 격투나 사격에 능하지 못해 내근직으로 남았다. 실제 적에게 너무 쉽게 미행당한다거나 공포에 질려 도망치기도 하지만 순식간에 CIA를 해킹하는 해킹 실력과 비밀 정보를 활용해 새로운 판을 짜는 두뇌 회전은 일류다. 컬럼비아 대학을 나온 줄리아 스타일스만이 할 수 있는 연기였다.

여성에게서 느끼는 카타르시스
<솔트>(2010) │ 에블린 솔트
소속▶ CIA
활동▶ 2000년대 미국
필살기▶ 무력·지능·미모 삼위일체
할리우드 최고의 액션 스타로 꼽히는 안젤리나 졸리가 주인공이니 액션 장면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에블린 솔트는 폭탄 제조와 백병전이 특기로, 주로 러시아 비밀 작전을 담당해온 CIA 최고 요원이었다. 적어도 러시아 망명자가 그녀를 러시아 스파이로 지목하기 전까지는. 남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내근직을 신청한 시점에 러시아 스파이로 지목받은 에블린 솔트는 그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들에게 쫓기게 되고, 자신은 물론 남편의 목숨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놓인다. 철통 같은 CIA 건물을 빠져나오는 상황에서 최고 요원 솔트의 능 력이 빛을 발한다. 무기 하나 없이 쫓기던 그녀는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조합해 폭탄을 제조한 후 반격에 나서고, 추격을 피해 달아나는 과정에서 초인적인 액션을 펼치며 관객들에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프로페셔널 여전사의 귀환
<아토믹 블론즈>(2017) │ 로레인 브로튼
소속▶ 영국 M16
활동▶ 1989년 독일 베를린
필살기▶ 맨손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격투술
군살 없는 탄탄한 몸매와 민첩한 순발력은 <매드맥스: 분노의도로>(2015)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여전사 샤를리즈 테론 그대로다. 그녀가 연기한 로레인 브로튼은 뛰어난 격투 실력과 카리스마로 M16에서도 이미 남자 요원들을 제치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인물.
그녀는 팔꿈치, 손바닥 등을 이용한 맨손 격투술과 주변 집기를 이용한 변화무쌍한 방식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많은 여성 스파이 캐릭터처럼 절절한 사연도 없다. 그저 직업으로써 스파이 임무를 수행할 뿐. 사적인 복수심 따위 없이 치열하게 전개하는 그녀의 프로페셔널한 첩보 액션은 영화의 흥행여부와는 별개로 ‘올해의 액션’으로 뽑아야 한다는 평이 압도적이다.

어두운 과거를 감춘 슈퍼히어로
<어벤져스 시리즈>(2015~2021) │ 블랙 위도우
소속▶ 어벤져스
활동▶ 2000년대 전 세계
필살기▶ 스파이더 웹, 거미처럼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
스칼렛 요한슨 하면 온몸에 딱 달라붙는 검정 가죽 수트가 연상될 만큼 블랙 위도우는 그녀의 매력을 한껏 살려준 캐릭터다. 블랙 위도우의 본명은 나타샤 로마노프. 어린 시절 KGB의 비밀 요원으로 훈련받은 그녀는 동료인 남편이 임무 수행 중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의 영웅적 행동을 이어가고자 ‘블랙 위도우’라는 코드 네임의 킬러 스파이가 된다.
거짓말과 속임수에 능하고 악명 높은 암살자로 활동하던 그녀는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스파이를 그만 둔 후 어벤져스의 정식 멤버로 합류한다. 어벤져스 캐릭터 중에서도 단연 화려한 격투 실력을 지닌 그녀는 첨단 특수 장비와 강한 승부욕으로 끝내 승리한다. ‘어벤져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그녀의 어두운 과거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데, 과거에 대한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인 만큼 점차 그녀의 이야기가 비중 을 더할 예정이다.

치명적인 킬러의 재탄생
<건파우더 밀크셰이크>(2021) │ 샘
소속▶ The Firm
활동▶ 2020년대 전세계
필살기▶ 창의적인 즉흥 무술
12살에 어머니에게 버려져 암살 조직에서 성장한 샘은 조직의 최정예 킬러로 활약한다. 논리적이고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로,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임무 수행 중 만난 어린 소녀 에밀리를 구하기 위해 조직을 배신하면서 그녀의 인생은 급격한 전환점을 맞는다. 팔이 마비된 극한의 상황에서도 에밀리와 협력해 차량을 운전하는 등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준다. 소원했던 어머니 스칼렛과 그녀의 동료들과 힘을 합쳐 조직에 맞서는 과정에서 샘은 단순한 킬러를 넘어 진정한 보호자로 성장한다. 화려한 액션 속에 담긴 모녀의 화해와 성장이 돋보이는 작품.
ㅣ 덴 매거진 Online 2025년
에디터 김진우(tmdrns1111@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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