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사드가 던진 ‘맞춤형 삐삐’ 미끼…헤즈볼라는 덥석 물어”

오남석 기자 2024. 10. 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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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 “딱맞는 성능 만들어 대만상표 붙이니 감탄해 ‘납품하라’”
“납품업자도 해당 삐삐 이스라엘서 조립 사실 몰라”
지난달 18일(현지시각)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서 헤즈볼라 대원들이 무선호출기 폭발로 숨진 4명의 시신이 든 관 중 하나를 옮기고 있다. AP 뉴시스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레바논에서 일어난 무선호출기(삐삐) 동시다발 폭발 사건은 폭탄이 숨겨진 삐삐 설계부터 제조와 공급까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치밀하게 편 작전의 결과였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 사건은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주요 통신 수단인 삐삐가 폭발하면서 조직원 3000여 명이 죽거나 다치고 민간인들도 큰 피해를 본 사건이다.

WP는 이스라엘과 아랍권, 미국의 안보 당국자, 정치인, 외교관, 레바논 관리, 헤즈볼라와 가까운 인사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토대로 이 같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현대판 ‘트로이 목마’로 불리는 ‘삐삐 폭탄’의 작전 구상은 2022년에 처음 나왔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가자지구 전쟁이 촉발되기 1년 전에 이미 모사드가 헤즈볼라 침투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모사드는 역내 친이란 무장세력 가운데 가장 강력한 헤즈볼라의 내부에 침투하기 위해 수년간 노력했다.

헤즈볼라 지도부는 이스라엘의 도청과 해킹, 추적을 우려했는데, 모사드는 이 점을 역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WP는 헤즈볼라는 2023년 대만 브랜드인 아폴로 호출기(AR924 기종) 대량 구매 제안을 받는다.

모사드가 헤즈볼라의 의심과 경계를 살 수 있는 미국이나 다른 이스라엘 동맹국의 업체 가 아닌 대만 브랜드를 내세운 것이다.

이 제안은 아폴로와 관련 있는 전 중동 영업 담당자에 의해 이뤄졌다. 신원과 국적을 밝히길 거부한 여성으로, 자신의 회사를 세워 아폴로 호출기를 판매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받았다.

이스라엘 당국자는 "그녀는 헤즈볼라와 연락을 취한 사람이었다"며 헤즈볼라에 AR924 모델이 케이블로 충전이 가능하고 배터리가 오랜 지속된다는 점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호출기를 추적할 위험이 없다고 판단한 헤즈볼라 지도부는 이 모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 결과 헤즈볼라는 이 삐삐 5000개를 구매해 전투원과 지원요원에게 나눠줬다.

이 모델의 실제 생산은 외주로 이뤄졌으며, 그녀 역시 모사드의 감독 하에 이스라엘에서 조립됐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이 호출기의 무게는 85g 미만으로, 강력한 소형 폭발물이 숨겨져 있는 배터리 팩이 장착됐다.

관련 당국자들에 따르면 호출기를 분해해도 사실상 탐지할 수 없을 정도로 폭탄 부품이 조심스럽게 숨겨져 있었다.

특히, 호출기 폭발 시 이용자의 피해를 키우기 위해 암호화된 메시지를 보려면 두 손으로 두 개의 버튼을 누르도록 설계됐다. 이는 이용자 대부분이 손과 얼굴을 다친 이유를 뒷받침한다.

모사드는 지난 2015년에도 헤즈볼라의 무전기(워키토키)에 도청 시스템과 폭발물을 심었지만, 도청에만 주력했다.

이스라엘 정부의 선출직 고위 관료들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달 12일 헤즈볼라 대응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정보 참모들을 소집할 때까지 이같은 무선기기 폭탄에 대해 몰랐다고 이스라엘 당국자들이 말했다.

그러나 이 폭탄의 사용을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고 전해진다. 하마스 지원을 명분으로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하는 헤즈볼라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지만, 헤즈볼라의 대규모 미사일 보복 공격과 이란의 개입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보 당국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선기기 폭탄이 발견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결국 네타냐후 총리가 작전 실행을 승인하면서 지난 17일 무선호출기, 이튿날 무전기를 폭발시켰다.

이 작전은 헤즈볼라에게 무시할 수 없는 타격을 줬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통신망이 와해된 틈을 타 그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같은 달 27일 폭사시키고 사흘 뒤 레바논 남부에서 지상전에 나섰다.

오남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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