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를 찾아서] “근로자 잠을 챙겨야 사회가 안전”…1인 가구의 불면증 위험 밝힌 의사

박근태 과학전문기자 2024. 9.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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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찬 순천향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1인 가구는 불면증 발병률 더 높아
잠 못 자면 기업, 사회도 피해
공공서비스 빼고 교대 근무 재고해야”
권순찬 순천향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지난 6일 국제학술지 직업환경의학연보에 혼자 사는 직장인, 임금 근로자들이 불면증을 겪을 위험이 여러 명의 가족과 어울려 사는 가구 근로자보다 높다는 분석 결과를 소개했다. /mostphotos

혼자 사는 사람이 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회원국 32국의 평균 1인 가구 수는 전체 가구의 30.6%를 차지한다. 한국은 지난 2010년 23.9%이던 1인 가구가 2022년 34.5%로 늘었고 2050년이면 다시 39.6%로 늘어날 전망이다. 지금까지 국내 연구를 살펴보면 혼자 사는 삶은 아프고 외롭다. 1인 가구는 만성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고 그만큼 병원에 가는 일이 많다. 다인(多人) 가구에 비해 우울증에 시달리는 비율이 높고 고독 속에서 극단적 선택을 더 많이 떠올린다.

수면 부족에, 불면의 밤을 겪는 독거인도 많다. 권순찬 순천향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지난 6일 국제 학술지 ‘직업환경의학연보’에 혼자 사는 직장인, 임금 근로자들이 불면증을 겪을 위험이 여러 명의 가족과 어울려 사는 가구 근로자보다 높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불면증 발병률은 1인 가구는 9.4%를 차지했으며, 가족 수가 늘수록 줄었다. 2인 가구는 8.7%, 3인 가구는 7.8%, 4인 가구는 7.5%로 나타났다. 혼자 사는 사람은 나이가 많을수록 불면증을 앓는 비율이 더 높았다.

혼자 사는 사람이 불면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말은 어쩌면 누구나 알 만한 내용처럼 보인다. 하지만 경험적 추정일 뿐이지 자료에 근거한 결과는 없었다. 정부가 수집한 공식 근로실태조사 데이터를 근거로 1인 가구와 다인 가구의 불면증 실태를 비교한 것은 권 교수가 처음이다.

수면은 정신건강의 지표로 활용되지만 최근에는 사회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지표로도 쓰인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 2019년 국민 건강과 생산성을 망치는 불면증이 전 세계적으로 만연하고 있다며 수면 순위를 공개했다. 당시 한국은 일본과 함께 수면 환경이 최악인 국가로 지목됐다.

권 교수는 “근로자들이 잠을 설쳐서 건강을 잃거나 사고가 나면 결과적으로 기업과 사회도 큰 손해를 입는다”며 “사회와 기업이 건강해지려면 충분한 수면 보장을 위한 강도 높은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기업의 직업 환경과 근로자의 건강 문제를 주로 연구했다. 권 교수를 지난 14일 온라인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권순찬 순천향대 의대 교수는 “근로자들이 잠을 설쳐서 건강을 잃거나 사고가 나면 결과적으로 사회나 기업도 큰 손해를 입는다”며 “불면증 문제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지 알려주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순천향대

–잠이 왜 중요한가.

“잠은 단순히 몸의 피로를 회복하는 행동이 아니다. 몸은 시간이 지나면 금방 회복되지만 정신은 다르다. 뇌는 정기적으로 쉬어야 한다. 잠은 하루동안 뇌에 축적된 기억과 슬픔과 기쁨 같은 감정을 정리하는, 컴퓨터로 따지면 조각모음을 하는 시간이다. 잠을 잘 자야 정신과 몸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며 살 수 있다. 행복하게 살려면 잠을 잘 자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불면증은 왜 문제인가.

“잠을 잤는데도 몸이 찌뿌둥하고 자다가 중간에 자꾸 깨거나 자고 싶은데 2시간 이상 지나도 잠이 안 오는 증상이 바로 불면증이다. 잠을 못 자는 사람은 일상 생활에 문제가 생기고 건강을 해친다. 그런 구성원이 사회에 많아지면 사회도 병든다. 지금까지 연구를 보면 우리 국민 5%가 불면증이라고 하는데 좀 더 폭을 넓히면 약 20%가량이 잠을 잘 못 자는 것으로 추정된다. OECD 회원국 평균 수면 시간이 8시간 22분인데 한국은 7시간 41분으로 나온다. 이것도 실제보다는 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한국인은 왜 잠을 잘 못 잘까.

“불면증의 요인은 다양하지만 걱정이 많아 그렇지 않나 생각된다. 요즘 우리 사회에 경제 논리가 강해지면서 삶 자체가 힘들다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 유튜브만 봐도 소비 욕구를 자극하고 소비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콘텐츠가 많다. 볼 것도 많고 할 일도 너무 많아서 쉴 시간이 없고 잠도 못 잔다. 코로나 때문에 재택 근무도 하고 집에서 지내면서 사적인 시간이 많아질 것 같았는데 오히려 더 줄었다는 연구도 있다. 사람은 마음이 편해야지 잠을 잘 잔다.”

–독거 근로자의 불면증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우리 사회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당장 논문의 제1 저자로 참여한 전공의만 해도 혼자 살면서 돈을 벌고 있다. 내 직장이 있는 천안처럼 지방이지만 큰 기업 사업장이 있는 도시에도 혼자 사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산다. 전공의들은 나중에 전문의가 돼서 돈도 벌고 잘 살겠지만, 1인 가구는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병에 걸린 사람들도 많고 우울증도 많고 외로움도 겪고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는 조사 결과들이 있다.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이다.”

–이번에 어떤 점이 새롭게 발견됐나.

“사실 1인 가구의 실태에 관한 연구는 별로 없다. 이번 연구는 불면증만 보기로 했다. 임금을 받고 생활하는 1인 가구부터 2인, 3인 가구들을 쭉 봤더니 혼자 사는 가구의 근로자가 불면증에 걸린 경우가 많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고 상식적인 내용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국내 노동 실태를 반영하는 국가 통계를 활용해서 과학적인 결론을 얻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혼자 사는 근로자는 왜 불면증에 취약할까.

“사회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큰 것 같다. 혼자 사는 사람 중에는 독립할 능력이 돼서 혼자 나온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젊어서 자리를 잡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기반이 없어서 비정규직이나 임시직, 배달, 퀵서비스, 대리운전처럼 온라인 중개로 하루하루 먹고사는 플랫폼 노동자 같은 사람들의 비율이 높다. 건강에 자신감이 있는 사람도 혼자 살면서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 사는 사람은 또 언제나 시간이 부족하다. 일상 생활에 필요한 집안일만 해도 가족이 많으면 분담할 수 있지만 혼자 해야 한다. 퇴근하고 나서도 잘 시간을 쪼개야 한다. 정신적 요인도 있다. 사람에게 사회적 지지는 정신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더라도 가족의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못 자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다.

“생물학적으로 늙으면 잠을 깊게 못 자는 것도 한 원인이지만 경제적인 어려움과 일자리 걱정이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인다. 나이를 먹으면 대부분 은퇴를 하거나 계약직이나 촉탁직 형태의 불안정한 상태에서 일을 하다보니 그런 불안감이 반영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잠은 단순히 몸의 피로를 회복하는 행동이 아니다. 몸은 시간이 지나면 금방 회복되지만 정신은 다르다. 뇌는 정기적으로 쉬어야 한다. 잠은 하루동안 뇌에 축적된 기억과 슬픔과 기쁨 같은 감정을 정리하는, 컴퓨터로 따지면 조각모음을 하는 시간이다. /미 버지니아대 간호대

–가족이 많을수록 불면증 유병률이 낮게 나왔다.

“가족끼리 서로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은데 결과를 보고 정말 신기했다. 혼자 사는 가구보다 2인 가구가, 2인 가구보다 3인 가구가 불면증을 앓는 비율이 더 낮다. 기족과 같이 살지 않고 1년에 한두 번 설날이나 추석에나 만나면 오히려 더 갈등을 겪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한다.”

–8시간 자도 피곤하다는 사람이 있다.

“한국의 근로자들은 평균 6시간 정도 잔다고 한다. 특수건강진단 제도로 수집한 정보를 분석해 보면 8시간 자는 게 제일 좋다. 7시간은 양호하지만 6시간 미만으로 자면 건강을 해친다. 물론 오래 자는 것보다 잘 자는 게 더 중요하다. 전체 수면에서 숙면 시간은 한두 시간 정도인데 사실 그 시간에 모든 잠은 다 해결된다. 그래도 8시간을 잔 사람이 한두 시간 깊게 그 시간에만 잔 사람보다 더 행복하게 산다는 연구들이 있다.”

–왜 근로자들의 불면증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수건강진단 검사를 해보면 밤에 일을 하는 사람은 낮에만 일을 하는 사람보다 고혈압, 당뇨, 유방암, 소화기 질환을 훨씬 많이 앓는다는 연구가 있다. 또 밤에는 집중력이 떨어진다. 두 명이 서로 지켜보면서 작업을 해도 동시에 졸리운데 ‘김용균씨 사건’처럼 혼자 작업하다 사고가 나는 일은 얼마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사람은 밤에 자도록 진화해왔고 밤에만 잘 자는 동물이다. 타고난 대로 살아야 한다. 자연스럽게 살지 않아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사고가 나고 질병도 걸린다. 잠을 못 자고 병에 걸린 근로자들이 늘어나면 기업의 생산성에 영향도 주고 사회도 건강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

–근로 환경에서 시급히 개선해야 할 부분은.

“한국 사회에서 수면 장애는 교대 근무에서 비롯됐다. 야간 작업을 하는 근로자를 만나보면 하루에 잠을 2~3시간밖에 못 잔 사람도 많았다. 우리 사회나 경제가 24시간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병원이나 군대, 경찰 같은 공공 서비스를 빼고는 정말 필요한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20~30대 젊은 근로자들이 교대 근무를 많이 한다. 앞으로 10~20년 뒤 이들의 건강이 어떨지 주목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수면 개선을 위해 필요한 정책은.

“10시 이후 청소년들을 PC방 출입을 금지한 것 같은 법적 규제를 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잠을 8시간 안 자면 벌금을 내게 할 수는 없다. 다만 국민건강증진계획을 10년마다 세우는데 여기에 우선 순위로 불면증 개선을 넣으면 큰 힘이 될 것 같다. 잠을 제대로 자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을 확산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플랫폼 노동이 확산하면서 하루 18시간씩 일하다가 돌아가시는 분들이 나온다. 플랫폼 노동이 자영업 같은 성격이 있다 보니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하다가 그렇게 된 건데 왜 국가 탓, 기업 탓을 하느냐 하는 인식이 있다. 이런 생각을 바꿔야 한다.”

☞권순찬 교수

한양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직업환경의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양대 병원과 경기도 농업안전보건센터를 거쳐 순천향대 천안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대한직업환경의학회, 대한인간공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위원을 맡고 있다.

참고 자료

Ann Occup Environ Med(2024), DOI: http://doi.org/10.35371/aoem.2024.36.e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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