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성추행' 무혐의 나왔는데도…노동위는 "정당한 해고" [김대영의 노무스쿨]
노동위서도 "해고 정당"…결국 행정소송
법원·경찰, 성희롱 부정…檢, 여직원 기소
"노동위서 성희롱 넓게 인정해 분쟁 증가"
외부 조사 의뢰는 비용 부담으로 한계
회사 여직원을 성희롱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남직원이 법정 다툼을 벌여 "신체 접촉을 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1심 판결을 받아냈다. 법원은 징계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 만큼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봤다. 인사노무 관계자들 사이에선 노동위원회가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을 법원보다 상대적으로 폭넓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어 법적 분쟁이 늘어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13부(재판장 박정대)는 앞서 전직 건설사 현장관리직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중노위와 회사 측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A씨가 피해자 의사에 반해 신체 접촉을 하고 성희롱을 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직장 내 성희롱을 이유로 한 징계해고의 징계사유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성희롱 의혹 받은 남직원, 결국 '징계해고'
A씨는 2022년 7월 두 차례에 걸쳐 여직원 B씨를 성희롱했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A씨를 징계해고로 이끈 것은 B씨 진술이었다. B씨는 같은 해 8월 회사 부장과의 면담 과정에서 A씨가 자신을 강제로 추행했다고 털어놨다. 이후 부장 중재에 따라 A씨는 B씨에게 사과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B씨는 그해 9월 A씨를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고, A씨를 신고하는 서면을 회사에 제출했다. B씨가 제출한 신고서엔 A씨가 부장 생일날 함께 술자리를 가진 뒤 숙소로 데려다준다면서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B씨는 A씨가 이튿날 공사 현장 회식 이후에도 숙소로 향하는 자신을 따라와 껴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고 주장했다. 또 A씨가 성기를 자신의 주요 부위에 닿도록 접촉해 강한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다. B씨는 이 과정에서 "불쾌하니 이러지 말라", "가정에 충실해라" 등의 거부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고 덧붙였다.
회사는 신고 접수를 받고 부장 등 직원 7명을 조사했다. 이어 인사위원회를 열고 A씨를 징계해고하기로 의결했다. A씨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연이어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찰선 무혐의 나왔지만 중노위는 "해고 정당"
심지어 중앙노동위원회 판단이 나오기 전인 지난해 3월 경찰이 폐쇄회로(CC)TV와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불송치 결정을 내놨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CCTV 속 모습, 목격자 진술을 종합해 볼 때 A씨가 강제추행을 했다는 B씨의 주장과는 상반된 정황이 다수 확인됐다는 것이 경찰 판단이었다.
검찰은 오히려 B씨를 무고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A씨가 B씨 의사에 반해 강제추행한 사실이 없는데도 허위사실을 신고했다는 것. B씨에 대한 형사재판은 아직 1심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A씨는 줄곧 결백을 호소했다. A씨의 손을 잡고 포옹과 입맞춤을 한 행위 모두 B씨가 동의했다고 항변했다. 또한 자신의 성기를 B씨 주요 부위에 맞닿게 한 사실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법원은 A씨 손을 들어줬다. A씨가 포옹하는 과정, 그 직후 다시 B씨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 등이 어색하거나 거부감을 표시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B씨 의사에 반한 신체 접촉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동료 직원이 회사 조사 당시 "A씨는 유부남이고 자녀가 있는데 늦은 시간 다른 여성과 웃으며 화기애애하게 걷고 있어 걱정이 됐다"고 말한 점도 법원 판단에 힘을 실었다. 재판부는 "성희롱이 존재했다면 이 동료가 목격한 시점에 A씨와 B씨가 화기애애한 관계로 보였다는 것은 다소 생각하기 어렵다"고 봤다.
일관된 여직원 진술에도 "신빙성 높지 않아"
B씨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선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을 일관되게 주장했다는 이유로 A씨에 대한 해고가 정당하다고 본 중노위 판정도 꼬집었다. 재판부는 "B씨 진술은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 법률전문가 조력을 받아 작성된 서면"이라며 "이 과정에서 교차 검증이 이뤄진 것도 아니어서 신고 내용이 구체적이란 사정만으로 신빙성이 높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A씨가 회사 부장 중재로 B씨에게 사과한 것 역시 성희롱을 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가족이나 회사에 관련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우선 사과를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사과를 한 것"이라는 A씨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회사는 재판 과정에서 유부남인 A씨가 B씨에게 입맞춤을 하고 포옹을 한 행위가 취업규칙상 징계사유인 풍기문란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회사가 작성한 징계해고 통지서엔 '직장 내 성희롱'만 징계사유로 언급됐기 때문에 풍기문란 해당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회사는 이 같은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해 서울고법으로 넘어간 상태다.
"직장 괴롭힘·성희롱 무고 급증…악용 사례 많아"
인사노무 업계에선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등을 앞세워 직장 상사나 동료를 무고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관련 사건·사고가 잇따르면서 이를 악용하는 사례들이 급증했다는 설명이다.
업계 일각에선 노동위원회를 향한 볼멘소리도 적지 않다. '고도의 개연성'을 기준으로 괴롭힘·성희롱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법원과 달리 노동위원회에선 비교적 폭넓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법원으로 공이 넘어갈 경우 노동위원회 판정이 부당하다는 판결이 늘고 있고 결국 법적 분쟁만 불거진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법적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려면 회사 차원에서 철저한 사실조사가 이뤄져야 하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은 곳이 다수다. 일부 대기업에선 로펌이나 노무법인에 사실조사를 의뢰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있지만 중견기업의 경우 비용 부담 탓에 자체 조사를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원희 노무법인 가교 대표노무사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을 이용한 무고 사례가) 적은 편이었는데 작년 하반기부터 이런 사례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 같다"며 "고용노동부나 노동위원회에선 권위적인 기업문화를 타파하기 위해서 직장 내 성희롱이나 괴롭힘을 법적 기준으로 엄격하게 따져보기보다는 넓게 보고 판단하는데 법원으로 넘어가면 모두 뒤집혀서 문제"라고 말했다.
이 대표노무사는 "이런 사례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회사가 괴롭힘·성희롱을 정확하게 조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총무팀 직원에게 조사 업무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부실한 조사보고서가 나오게 되고 결국 회사가 피해를 입는 사례가 많아진다"며 "제3자가 치밀하게 조사를 하거나 자체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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