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사진집 이야기 <61> 로버트 푸플립, 나딘 슐리퍼의 얼터너티브 문(Alternative Moons)] 정체성을 변형시키는 카메라, 해석을 조종하는 사진의 잠재력
일상의 사물이 불현듯 평상시와는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다 닮은 무언가를 떠올리게 된다거나 평상시와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다 새로운 인상을 받는다거나 말이다.
그런데 카메라의 능력은 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물의 정체성을 변형시킨다. 일상적인 사물이어도 카메라는 대상을 일상적 맥락에서 떼어내고,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등 기계적 능력을 통해 사물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 지각을 변형시키고 영향을 미친다.
로버트 푸플립(Robert Pufleb)과 나딘 슐리퍼(Nadine Schlieper)의 ‘얼터너티브 문(Alternative Moons, The Eriskay Connection·2017)’에는 달의 전체 모습, 지표면의 세부 모습, 달의 공전 주기에 따른 모습의 변화 등 ‘누가 봐도’ 달 사진으로 보게 만드는 사진들이 담겨 있다.
깊은 분화구와 협곡, 홈과 구덩이 등이 흩어져 있고, 때로는 얼음층에 덮인 것처럼 밝고, 때로는 짙은 어둠 속에 있는 듯한 다양하고 정밀한 미지의 달의 모습이 펼쳐진다. 독자는 이 책을 보며 지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천체인 달의 상세하고 다양한 표면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담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조금 더 면밀한 독자는 의문을 품을 것이다. 달의 모습을 기존 달 사진을 통해 잘 알고 있는 독자는 ‘내가 아는 달의 모습과는 다른데⋯’라든가, 너무나 상이한 지표면의 모습을 보면서 ‘다 다른 행성 같은데⋯’라든가. 여하간 대부분의 독자는 ‘달’ ‘행성’ ‘우주’ 등의 범주를 빙빙 맴돌며 이 책을 보게 된다. 그 이유는 이 사진들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천체 사진의 기본 문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행성은 매우 밝게 빛나는 대상 중 하나이며, 이에 비해 우주 공간은 상대적으로 매우 어둡다. 행성 사진은 대체로 어두운 배경 가운데 밝은 원형의 행성이 지닌 세부적인 모습을 드러내도록 촬영된다. 독자는 이 사진들에서 어둡고 까만 배경은 우주로, 울퉁불퉁한 표면의 구체는 행성으로 해독한다.
하지만 제목이 암시하듯 달로 보이는 사진 속 대상은 사실 달이 아닌 다른 무언가다. 그 정체는 독자가 책을 거의 다 본 후 마지막에야 반전처럼 등장한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레시피 하나가 수록돼 있다. 버터밀크 500ml, 달걀 3개, 밀가루 6테이블스푼, 소금 조금 등의 재료와 만드는 법이 쓰여 있다. 레시피의 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당신만의 달 탐험을 즐겨보세요. 그리고 팬케이크도!”
마지막에 수록된 팬케이크 레시피를 본 독자는 그제야 지금까지 자신이 달로 바라본 대상이 사실 팬케이크였다는 점, 사진마다 암호처럼 적혀 있던 ‘PC’로 시작하는 텍스트가 팬케이크(pancake)의 약자라는 점, PC-017-170217과 같이 암호처럼 적힌 숫자는 팬케이크의 일련번호이자 팬케이크를 구운 날짜임을 알게 된다.
때때로 우리는 일상에서 익숙하게 바라보던 사물들이 우리의 눈에 새롭게 비치는 순간을 경험하곤 한다. 구워진 케이크가 달의 모습으로 보였던 어느 날, 작가들은 밀가루·버터밀크·기름 등의 재료로 이루어진 팬케이크 달 작업에 착수했다. 반죽의 농도나 프라이팬의 온도 등이 작품에 영향을 줬다. “밀가루의 양을 더 쓰는가 덜 쓰는가에 따라 표면구조가 영향을 받았다. 프라이팬 위에 사용한 버터밀크나 기름의 양도 영향을 줬다.”
행성의 진화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이 행성을 이루고 있는 재료와 그에 따른 행성의 성격을 탐구하는 것처럼, 이들은 매번 다르게 형성되는 구멍과 얼룩이 있는 팬케이크를 만들었다. 그리고 팬케이크를 반구 모양의 틀에 올린 후 위에서 아래로 사진을 찍었다.
어떠한 사진이든, 바라보는 과정에서 관객은 의미를 덧붙이고 해석한다. 작가들은 이 사진들이 ‘과학적’으로 해석되도록 사진 자체뿐 아니라 사진 외적으로도 책에 간단한 장치를 해뒀다. 책은 군더더기 없이 최대한 단순한 디자인으로 편집됐고, 사진마다 알파벳과 숫자가 표기돼 있어 이 사진들이 과학적 담론 속에서 생산됐다는 인상을 준다. PC라는 약자는 특수 망원경 같은 촬영 도구, 내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태양계와 관련된 약어일지도 모른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관객은 자유로운 해석을 하기보다 문화적인 틀 속에서 작가가 의도해둔 해석의 길을 따라가게 된다.
그리하여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앗, 내가 본 것이 달이 아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이미지를 잘못 판독하는 일이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 것인지를 이 책은 유쾌하게 전달한다. 사진이 실제로 담았던 대상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를 우리는 ‘볼 수 있다’는 점을, 그리하여 사실과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점 말이다. 이미지를 보며 확고한 신념을 가지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특히 이미지가 표면에 보여주는 앞모습뿐 아니라 뒷모습, 그러니까 이미지가 만들어진 제작 방식과 배경에 대해 들여다보고 고민하지 않을 때 말이다. 이 책은 사람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는 이미지의 엄청난 잠재력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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