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려고 꿈 접은 ‘천재 문학청년’…62년만에 낸 첫 소설집

조봉권 선임기자 2025. 3. 3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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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출신 사상계 신인상 등단

- 가난한 집안형편으로 문학 접고
- 부산시공무원 돼 문화행정 담당
- 그의 인생이 응축된 작품집 발간

소설가 신태범(83) 선생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두 가지 축이 필요하다. 문학 그리고 문화다. 두 영역 모두에서 그는 꼭 기억돼야 할, 부산 예술의 살아있는 역사다.

단편소설집 ‘수탉이여 영원하라’를 펴낸 신태범 작가. 전망 제공


최근 신태범 작가는 첫 소설집 ‘수탉이여 영원하라’(도서출판 전망·사진)를 냈다. 등단 62주년을 맞은 1942년생 작가가 오랜 세월 흐른 뒤에야 첫 소설책을 내게 된 사연에 관해 그는 최선을 다해 말을 아끼려 했다. “(내 책이 만약 관심을 받는다면) 치열하게 열심히 소설을 쓰며 살아온 동료 작가들에게 미안한 일이며, (이제야 첫 단편집이 나온 일은) 소설가로서 부끄럽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었다. 그 사연에 서려 있을 부산 문학의 풍경과 부산시 문화정책 역사 회고 그리고 이번 책에 관한 이야기는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최근 부산 서면 영광도서 앞에서 만난 80대 신 작가는 정정했다. 문학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그의 연륜과 다채로운 경험에 이끌려 다양한 문화 분야로 이야기는 곧잘 샜다. 작품집 이야기도 뒤에 가서야 나누게 됐다.

일제강점기 일본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그는 광복된 해 귀환동포로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온다. 그는 “배 타고 부산항으로 들어왔을 때 수많은 사람이 부두에서 환영하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가족은 부산에 자리 잡았고, 오래도록 몹시 가난했다. 부산의 동성고등학교 야간부를 졸업하고 대학은 나오지 않은 그는 21세 되던 1963년 잡지 ‘사상계’ 신인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등단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실감 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한마디로 대사건이다. “1960년대 등단 경로는 사실상 ‘현대문학’ 추천 완료, ‘자유문학’ 신인상 수상 또는 신춘문예뿐이었죠.” 게다가 장준하 선생이 주도한 ‘사상계’는 선망받는 잡지였다. 신태범과 엇비슷한 시기에 ‘사상계’ 신인상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문단에 나온 작가가 황석영 이청준 박상륭 서정인 박태순 최인호 강은교 등의 문호이니 큰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너무 형편이 어려워 서울서 열린 시상식에 못 갔습니다.” 그는 수상 직후 군대에 가 3년 넘게 복무했다. 제대하니, 가장이었다. “돈 벌려고 온갖 일을 닥치는 대로 한” 그는 고생 끝에 시험을 쳐 1969년 부산시 공무원이 됐다. 야간 고졸 학력 21세 청년으로 ‘사상계’ 신인상을 거머쥔 이 ‘문학 천재’는 그 길로 문학을 포기했다. 문학으로 집안을 먹여 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은 한 문인의 개인사를 넘어 부산 예술사 한 장면이기도 하다. 그 뒤로 일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국제신문 기자였던 정영태 시인이 갓 공무원이 된 저를 무려 세 번이나 찾아와 문학을 다시 하자고 권했습니다. 애초 완강히 거절했는데 나중엔 ‘내가 뭐라고’ 하는 미안한 마음이 생기더군요. 결국 1973년 부산문인협회에 가입했죠. 들어가니 소설가는 저 포함해 7명뿐이었습니다.” 간간이 협회 기관지 등에 글을 쓰는 한편, 그는 이즈음부터 공무원으로서 ‘문화행정’에 집중한다. 문화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도, 관심을 가진 공무원도 희귀한 때였다. 문학에 진 빚을 문화행정을 통해 갚고 싶기도 했다.

“부산시 문화예술 지원 담당 공무원으로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1962년 창단한 부산시립교향악단을 ‘월급 받는 교향악단’으로 만든 일을 내가 기획했는데 보람이 컸죠. 많은 장르 숱한 예술인을 만나 고충을 듣고 시책에 반영했습니다.” 1970· 80년대 예술 현장에서 그는 헌신적인 마당발이었다. 2000~2001년 국제신문에 ‘신태범의 부산 문화 야사’라는 중요한 기록을 연재한 바탕도, 전국연극제 대상 작품인 ‘노인, 새 되어 날다’를 비롯해 많은 무용·연극 대본을 쓴 원동력도 이때 생겼다. 요산김정한기념사업회 초대 상임이사로서 펼친 활동 등 그에게 들을 이야기가 많았다.

사연이 이렇다 보니 단편 7편을 실은 첫 소설집 ‘수탉이여 영원하라’는 신태범 소설과 인생이 고농도로 응축된 책일 수밖에 없다. 수록작은 2010년대 들어 발표한 작품들이다. 이들 소설은 어떨까? 노 작가는 담박하게 수다스럽지 않게 단순하게 ‘노경(老境)’의 원숙한 시선과 깨우침을 풀어냈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에서 젊은 날 주인공한테서 큰 도움을 받은 억척 여성 미자 씨가 나이 들어 폭망한 주인공을 돕지만, 두 사람이 결국 맺어지지 않고 각자 스스로 인연을 개척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노 작가는 “진심과 정성은 결국 통하며, 생은 알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꿈꾸는 겨울밤’에서 친절한 어른이 젊은 것에게 당하는 비극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인간에 대한 선의와 사랑을 담박하게 그린다. ‘밤마다 울음소리’에서는 가난 때문에 그림도 문학도 포기했던 작가 자신의 내면이 겹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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