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측정...이대로도 괜찮나?
허리케인은 풍속을 기준으로 등급을 매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거대 폭풍과 관련된 사망의 원인 중 90%를 차지하는 요인을 고려하지 못하게 된다.
그 때문에 과학자들은 기존의 불완전한 체계를 개선해, 대중에게 폭풍의 위험성을 제대로 경고하려 하고 있다.
푸에르토리코는 허리케인 에르네스토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봤다. 이 폭풍의 풍속은 120km/h였기에, 공식 허리케인 분류 체계인 사피르-심슨 척도 체계에 따라 가장 낮은 등급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허리케인 등급에서 가장 낮은 등급을 받은 폭풍도 5등급(최고 등급)만큼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폭풍이 더 강력해지고 허리케인 시즌은 더욱 극단적인 양상을 띠게 됐다. 이에 따라 허리케인 등급 책정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허리케인 등급 책정 방식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사피르-심슨 척도다. 이 척도는 50년 이상 사용돼 왔다. 하지만 중대한 결함이 있어, 학계에선 과연 이것이 최선의 척도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사피르-심슨 척도의 단점을 개선하고 더 나은 경고 체계로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도 나오고 있다.
물이 문제다
사피르-심슨 척도는 1970년대 초 미국의 토목 공학자인 허버트 사피르와 기상학자인 로버트 심슨이 개발했다. 이 척도는 폭풍의 최대 지속 풍속을 측정한다. 이를 바탕으로 허리케인 등급을 1에서 5로 매기는 데, 5등급이 가장 센 허리케인이다. 풍속 측정은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에서 운영하는 정찰기가 태풍 속으로 장비를 떨어뜨리고, 이 장비가 바다로 떨어지면서 기압과 풍향, 풍속을 측정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사피르-심슨 척도는 폭풍 해일과 폭우, 홍수와 같은 허리케인에서 일어나는 다른 영향들은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허리케인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주로 바람이 아니라 물에서 비롯된다. 플로리다 주립대 산하 플로리다기후센터에 따르면, 전 세계 허리케인 관련 사망 사건의 90%가 폭풍 해일이나 극심한 폭우가 초래한 홍수로 인한 익사 사고였다.
캘리포니아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의 선임 과학자인 마이클 웨너는 “사피르-심슨 척도는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단순히 어느 시점에서 폭풍의 최대 풍속을 측정한 것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피해는 바람이 아니라 물 때문에 발생하죠.”
기록적인 피해를 남긴 허리케인 샌디를 보자. 샌디는 풍속이 비교적 느린 1등급 폭풍이었다. 하지만 이런 폭풍이 때로는 해안 지역에 무지막지한 홍수를 일으킨다. 샌디가 만든 홍수는 100년간의 범람원 경계를 53% 이상 침수시켰고, 주택 수십만 채에 피해를 줬다. 그 피해 규모는 885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플로리다 주립대 산하 해양대기예측연구센터 소속 기상학자인 바수 미스라는 “최대 풍속은 폭풍 해일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폭풍 해일은 바람의 스트레스에 비례합니다. 스트레스란 바람이 해수면에 가하는 힘이죠.”
그는 “따라서 특정 지점으로 측정하는 게 아니라 열대성 저기압 주변에 바람의 수평적 분포가 어떤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폭풍의 크기
그는 사피르-심슨 척도는 허리케인의 전반적 크기나 바람의 수평적 분포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스라는 사피르-심슨 척도를 보완하기 위해 허리케인의 파괴력을 측정하는 새로운 지표를 제안했다. 트랙 통합 운동 에너지(Track Integrated Kinetic Energy)라는 이 지표는 폭풍의 강도 및 수명과 함께 바람이 부는 지역의 크기를 측정한다. 미스라는 이 방법론은 정찰기를 사용하는 대신 허리케인의 바람 분포에 대한 위성 추정치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스라에 따르면, 이 방법론은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했다. 보통 허리케인 주변에는 구름이 많이 끼는 경우가 많은데, 이로 인해 데이터에 “약간의 불확실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큰 현실적 문제”도 있다. 위성의 위치 때문에 이런 추정치는 인도양이나 서태평양이 아닌 동부 태평양 유역과 대서양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미스라는 세일 드론(소형 범선처럼 생긴 풍력 추진 장치로 허리케인의 강도를 측정하는 장비)처럼 새로운 기술이 데이터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비용이 문제입니다. 수천 km까지 퍼지기도 하는 허리케인을 놓고 바람 분포를 파악하기 위해 몇 대의 세일 드론을 띄울 수 있을까요?”
MIT의 대기과학 분야 명예 교수인 케리 엠마누엘도 허리케인 측정 방법론에 대한 전면적 재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엠마누엘은 “사피르-심슨 척도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이 척도는 실제적인 위험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합니다. 위험보다는 기상학에 초점을 맞춰 왔기 때문에 바꿔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엠마누엘은 트랙 통합 운동 에너지 방식도 사피르-심슨 척도와 비슷한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바람만 측정하는 척도는 위험 예측에서 좋지 못한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 산하 국립허리케인센터 부국장인 제이미 홈은 BBC에 “하나의 척도로 모든 지역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영향을 모두 보여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국립허리케인센터가 허리케인 때 폭풍 해일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폭풍 해일 감시 및 경보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소개했다.
“허리케인에는 여러 가지 위험 요소가 복합되어 있습니다. 국립허리케인센터는 이러한 위험의 잠재적 영향이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발생할 수 있으므로, 각각의 위험에 대해 개별적인 경고를 보내는 것을 선호합니다.”
신호등
엠마누엘은 “영국 기상청이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새로운 분류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국 기상청의 기상 특보는 기상 현상이 미칠 수 있는 영향과 그 영향의 발생 가능성에 따라 빨강, 노랑 등 서로 다른 색상으로 대중에게 경고한다.
엠마누엘은 “허리케인 경보는 폭풍 그 자체를 중심에 두는 게 아니라, 인간을 중심에 두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기상 이변의 확률을 제공하는 개인화된 접근법이 나온다면, 대중이 위험 수준을 이해하고 예방 조치를 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위험에 초점을 맞추고 사용자의 현재 위치를 파악해 해당 지역에 파괴적인 바람이 불거나 홍수가 일어나 집이 침수될 확률을 알려주는 별도의 스마트폰 앱이 필요합니다. 이미 일반 일기 예보에서도 이러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죠.”
엠마누엘은 자신은 동의하지 않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대중이 이러한 정보를 해석할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반응도 있다고 말했다.
6등급 허리케인?
그러나 사피르-심슨 척도는 단순해서 대중이 이해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미스라는 “이 범주를 기반으로 열대성 저기압의 위협을 전달하는 게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이를 다른 것으로 바꾸기를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웨너는 “사피르-심슨 척도가 전부는 아니다”라는 사실을 대중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중에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면, 이로 인한 이점이 더 커질 겁니다. 국립허리케인센터가 이러한 정보를 제공하고, 훌륭한 방송 기상학자들이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바닷물의 온도는 폭풍의 연료다. 그런데 기후 변화로 바닷물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허리케인은 더욱 강력하고 파괴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 발생하는 폭풍은 40년 전에 비해 주요 허리케인(카테고리 3 이상)의 기준치인 시속 180km/h에 도달할 가능성이 25% 더 높다.
이처럼 허리케인이 더 강력해지고 풍속이 빨라지는 상황에서, 기존 사피르-심슨 규모에 6등급을 추가로 도입해야 할까?
노아에서 은퇴한 대기과학자 제임스 코신은 웨너와 함께 5등급에서 멈추는 사피르-심슨 척도의 단점을 다룬 논문을 발표했다. 코신은 2024년 초 허리케인 베릴이 발생했을 때 BBC와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 등급에 제한을 둘 이유는 없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2015년 허리케인 패트리샤, 2013년 태풍 하이옌 등 이미 몇몇 허리케인은 6등급의 이론적 기준치를 넘어섰다.
하지만 코신은 더 강한 폭풍을 설명하고자 단순히 상위 등급을 추가하는 건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며 “등급 추가는 끔찍한 생각”이라고 했다. 등급이 더 늘어나면 사람들이 5등급 허리케인을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고 무시할 수 있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다. “인간의 행동은 이런 식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위험한 상황에서 대피하지 않는 핑계를 등급에서 찾으려 하겠죠.”
웨너는 현재 척도에 6등급을 추가할지 여부는 궁극적으로는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의 국립허리케인센터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허리케인센터의 롬은 5등급은 이미 바람으로 인한 “재앙 수준의 피해”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폭풍이 더 강해진다고, 또 다른 등급이 필요할까요?” 그는 허리케인으로 인한 사망자 대부분은 바람이 아닌 물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에 “등급 숫자에 너무 중점을 둬서 바람의 위험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웨너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는 “허리케인이 가진 위험성은 하나의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고 말했다.
물론 어떤 과학자들은 6등급을 추가로 만드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엠마누엘은 우리가 사피르-심슨 등급을 고수하면서 6등급을 추가하면 “기후 변화가 허리케인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실에 주목하게 만드는 게 정말 큰 효과를 가져올 겁니다.”
이런 식의 분류에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있다. 미스라는 “3등급 이상의 모든 허리케인은 위험하다고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6등급 허리케인 경보가 나왔을 때만, 행동을 하거나 반응을 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 내 허리케인 연구원인 헤더 홀바흐는 등급의 수를 늘리면 사람들이 낮은 등급 폭풍의 위험성을 간과할 수 있다며, 6등급을 추가로 만들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분명 심각한 위험인 1등급이나 2등급 허리케인을 사람들이 경시하는 상황이 벌어질까봐 우려가 됩니다. 이 사안에는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한 사회과학적 요소가 많이 결합되어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