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팝스타가 아니다. 피치 위에서 증명해라!"
5일 오후 영국 런던 지테크 커뮤니티 스타디움 앞. 브렌트포드와 울버햄턴의 프리미어리그 7라운드 경기가 끝났다. 믹스트존 인터뷰를 마치고 황희찬이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한국 팬들이 울버햄턴의 버스 앞에서 황희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희찬은 한국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었다.
갑자기 누군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누군지 슬쩍 봤다. 울버햄턴 유니폼을 입은 20대 초반 정도의 백인 남성이 저 멀리서 소리를 질렀다. 약간 취한 듯 보였다. 다른 선수들에게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유독 황희찬에게만 '화가 나' 있었다. 황희찬은 그를 무시했다. 팬들에게 서비스를 해준 후 퇴근했다.
그 사람의 행동에 화가 났다. 황희찬이 퇴근하는 것을 본 후 그 사람을 찾아봤다. 이미 경기장에서 사라진 후였다. 분명 황희찬이 아시아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황희찬이 백인이거나 '브리티시' 였다면 절대 저런 행동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험 상 저런 사람들은 무식하면서 인종 차별에 대해 별로 경각심을 가지지 않고, 술의 힘을 빌려 뒤에서 이상한 소리나 하는 '비겁한' 부류였을 것이다.
그래도 씁쓸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 몰지각한 팬이 그런 이야기를 할 정도로 현재 황희찬의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다.

울버햄턴이 최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7경기를 치른 현재 1무 6패. 승점 1점으로 20위,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9골을 넣었지만 21골을 내줬다. 수비가 처참하게 무너졌다. 카라바오컵에서도 탈락했다. 개리 오닐 감독 경질설이 계속 뜨고 있다. 울버햄턴과 더불어 황희찬도 위기에 직면했다. 올 시즌 컵대회 포함 8경기에 나섰다. 첫 아스널과의 원정 경기에서 풀타임을 뛰었다. 이후 출전 시간이 줄어들었다. 352분 출전. 경기당 44분 출전에 불과했다. 아직 공격 포인트는 없다. 지난 시즌 13골 3도움을 기록했던 황희찬이 왜 한 시즌 만에 위기에 직면하게 됐을까.
가장 큰 이유는 요르겐 스트란드 라르센의 영입이다. 울버햄턴은 올 시즌을 앞두고 스트란드 라르센을 데려왔다. 노르웨이 출신인 이 장신(193cm) 공격수가 들어오면서 울버햄턴 공격진의 색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 시즌까지 울버햄턴은 스리톱을 세우면서 속도와 뒷공간 침투에 많은 공을 들였다. 황희찬도 한 축을 담당했다. 측면 날개 공격수와 최전방 공격수를 오가면서 공격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트란드 라르센이 들어오면서 울버햄턴은 스리톱 시스템을 원톱 시스템으로 바꾸었다. 4-2-3-1이나 , 4-4-1-1 혹은 4-1-4-1 전형으로 바꾸었다. 모든 공격의 중심이 라르센의 머리와 발에 맞춰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피해는 오롯이 황희찬이 입었다. 현재 울버햄턴 공격 패턴에서 날개 공격수는 사실상 없다. 4-1-4-1 전형을 서도라도 윙어들은 안쪽으로 들어간다. 공간을 치고 들어가지 않고 중앙으로 이동하며 패스를 주고 받는 역할에 치중한다. 때문에 마테우스 쿠냐나 벨레가르드 등이 윙어로 나설 때가 많다. 아니면 중앙 미드필더인 마리오 레미나가 측면에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황희찬은 스피드를 활용해 공간으로 치고 들어가는 저돌성이 최대 강점이다. 직선적으로 움직여서 상대 수비진을 파괴하는 불도저와도 같다. 때문에 현 체제 아래에서 '윙어' 황희찬의 장점은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오닐 감독으로서는 황희찬을 마냥 놀릴 수도 없다. 궁여지책으로 황희찬의 포지션을 바꾸었다. 오른쪽 미드필더로 한 칸 내려왔다. 장고 끝 악수였다. 측면 윙어와 측면 미드필더는 움직임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스프린트의 시작점도 아래에서 시작한다. 스프린트를 하더라도 상대방 진영까지 가기 힘들다. 상대 수비수들도 윙어보다 더 많다. 패스를 받기도 여의치 않다. 공간이 많이 나지 않는다. 오른쪽 미드필더 황희찬은 활용 가치가 높지 않았다. 출전 시간은 줄어들었다.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황희찬은 포기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황희찬이 걸어온 길은 '좌절 그리고 증명을 통한 극복의 연속'이었다. 2015년 오스트리아 레드불 잘츠부르크 입단 후 위성 구단인 리퍼링으로 향했다. 1시즌 반을 그곳에서 증명하며 뛰었다. 그리고 잘츠부르크로 돌아왔다. 2015~2016시즌 후반기에 잘츠부르크에 합류했다. 2016~2017시즌부터 자신을 증명했다. 16골을 넣었다. 2017~2018시즌에도 13골을 넣으며 오스트리아 무대를 평정했다.
그러나 2018~2019시즌 함부르크 임대 생활은 실패했다. 각종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된 기회를 잡지 못했다. 1시즌 동안 2골을 넣는데 그쳤다. 좌절을 맛보았다. 2019~2020시즌 황희찬은 잘츠부르크로 돌아온 후 한 번 더 성장했다. 얼링 홀란, 미나미노 타쿠미 등과 함께 삼각 편대를 형성하며 잘츠부르크의 황금 시대를 이끌었다. 그 결과 2020~2021시즌 라이프치히가 황희찬을 영입했다.
다시 좌절을 겪었다. 2020~2021시즌 라이프치히를 이끌던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과 결이 맞지 않았다. 26경기에서 3골을 넣는데 그쳤다. 전력 외 판정도 받았다. 돌파구는 잉글랜드 무대였다. 울버햄턴으로 왔고,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그리고 지난 시즌 13골을 넣으며 자신을 증명해냈다.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극복의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오닐 감독이 구상하고 채택한 스트란드 라르센 원톱 체제는 일단 한계점에 봉착했다. 그는 리그 7경기에서 모두 선발로 나섰다. 2골을 기록했지만 모두가 의미없는 골이었다. 승부에 영향을 주지 못한, 영양가가 없는 골이었다. 움직임이나 활동량에서도 팀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10월 A매치 이후 공격 전술이나 공격 조합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오닐 감독이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울버햄턴 내에서 그의 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포백 라인도 고쳐야 한다. 오닐 감독은 지난 시즌 스리백 라인을 가동했다. 리그 38경기에서 65실점을 했다. 그러나 올 시즌 들어 포백 라인을 운용했고 그 결과 리그 7경기에서 21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리그가 5분의 1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지난 시즌 실점의 3분의 1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스리백으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풀백을 윙백으로 올리고 스리톱으로 바꿀 가능성이 크다. 그 경우 황희찬이 딱 적임자라고 할 수 있다.
황희찬도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EPL)가 세계 최고의 리그고 정말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있는 곳이잖아요. 경쟁을 계속해야 되는 곳이고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왔고요. 거기서 이겨 가면서 이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당연하게 아쉽지만 그래도 제가 해야 될 일들을 계속해서 해나가고 있고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거라는 걸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 순간이 올 때까지 계속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황희찬은 늘 그렇듯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리 곁에 웃으며 우뚝 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