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 사회’가 만든 법조 특권주의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2024. 10. 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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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회색지대] 민관합동으로 만든 법조공화국②

● 한국적 특징 ‘중앙과 정상을 향한 맹렬한 돌진’
● 일제강점기, 식민고등관료 진출 위한 고시 열풍
● “사시 합격한 다음 날부터 내 말에 힘 실렸다”
● 법조계 양파껍질처럼 두껍게 자리한 ‘서열문화’
● ‘특권의식’에서 비롯된 판·검사들의 갑질 언어
● 법조 특권주의 대미 장식한 ‘전관예우’
● 검찰개혁 목숨 걸던 정권, 전관예우 방관한 아이러니

[Gettyimage]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과 토지의 완전 국유화를 주장한 선각자요 개혁가였다. 하지만 그런 위대한 인물조차 죽기 전 자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 가지 말고 버텨야 하며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며 사회적으로 재기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사정이 그러했던 만큼 지방 관리들은 서울에 줄을 대기에 바빴다. 1894년 1월에서 1897년 3월까지 조선을 네 번이나 방문한 영국인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1831~1904)이 쓴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란 여행기를 잠시 들여다보자. 여행기라서 그렇지 사실 "서울이 곧 한국이다"라는 진단의 원조는 비숍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한국인의 마음은 서울에 있다. 지방 관리들은 수도에 따로 저택을 갖고 있으며, 연중 많은 기간 부임지의 직무를 경시해도 된다고 믿고 있다. (…) 어느 계급일지라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단 몇 주라도 서울을 떠나 살기를 원치 않는다. 한국인들에게 서울은 오직 그 속에서만 살아갈 만한 삶의 가치가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왜 한국은 '소용돌이 사회'인가

한국 정치의 최대 특수성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런 서울 초집중화 체제다. 이건 서양 정치 이론으론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한국적 현상이다. 이런 한국적 특수성을 가장 먼저 간파한 연구가 미국의 한국 전문가인 그레고리 헨더슨의 '소용돌이의 한국정치'(1968)다. 반세기 전에 나온 책이지만,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건 바로 '중앙과 정상을 향한 맹렬한 돌진'이다. 정치학자 김달중이 잘 분석·요약했듯이, 이 책의 메시지는 다음 네 가지다.

첫째,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는 동질성(homegeneity)과 중앙집중(centralization)에 있다. 둘째, 엘리트와 대중 간에 매개 그룹이 없는 사회관계로 인해 한국 정치의 역학은 사회의 모든 활동적 요소를 태풍의 눈인 중앙 권력을 향해 치닫게 하는 거센 소용돌이(vortex)를 닮았다. 셋째, 이런 중앙집중적 환경 속에서 한국의 정치는 당파성, 개인 중심, 기회주의성을 보이면서 합리적 타협의 기초를 결여하게 됐다. 넷째, 소용돌이 정치 패턴에 대한 처방은 다원주의(pluralism)와 분권화(decentralization)다.

이런 소용돌이 현상은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나타났다. 헨더슨은 "한국에서 집단을 만드는 것은 주로 구성원들을 권력에 접근시키기 위한 기회주의적 수단이었으며, 서로 간 별 상이점이 없기 때문에 각 집단은 구성원의 개성과 그 당시 권력과의 관계에서만 구별할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의 여러 조직들은 조직 자체나 조직원들이 중심축을 향해 상승하는 흐름에 참여하려고 하는 아메바적 성격을 갖고 있어야 했다. (…) 모든 가치는 중앙 권력에 속했다. 권력 기반도, 안정성도, 야심을 만족시킬 수 있는 대체 수단도 없이 권력을 행한 경쟁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계속 증가했다. 이 사회는 높이 솟은 원추형 소용돌이라는 특유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경성제국대와 고등시험이 조성한 법조 특권주의

권력! 오직 권력만이 살길이었다. 권력을 가진 양반 계급의 양민 착취 또는 갑질이 워낙 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겨난 게 바로 가짜 양반이다. 역사학자 이덕일의 조사에 따르면, 대구 지역의 경우 1690년(숙종)에는 양반이 9.2%, 양민이 53.7%, 노비가 37.1%였다. 약 100년 뒤인 1783년(정조)에는 양반이 37.5%, 양민은 57.5%, 노비는 5.0%로 되었다. 그 70년 뒤인 1858년(철종)에는 양반이 70.3%, 양민이 28.2%, 노비는 1.5%로 줄었다. 조선 말기에는 양반이 80~90%가 됐다고 한다. 양반 족보를 돈으로 사거나 위조해서라도 양반 시늉을 내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권력에 맺힌 한(恨)은 일제강점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운명을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식민 통치 체제하에서 오죽 정치가 하고 싶었겠는가. 광복 직후 밀어닥친 정치 홍수 사태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일제강점기에도 아주 작은 출구가 존재하긴 했다. 조선총독부가 조선인에 의한 교육 운동을 억누르고 식민지 지배의 효율화를 노려 1924년에 세운 경성제국대학(서울대 전신)을 나오면 '요보'(조선인을 얕잡는 표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었다.

전체 조선인 누적 졸업생이 810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경성제국대학 졸업장은 희소가치가 있었다. 물론 조선인 학생들의 고시 열풍은 뜨거웠다. 예과를 거쳐 본과로 갈 때에 거의 대부분 법학과로 진학했다. 문학계 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은 고시 준비를 하기 위해 다시 법학과로 진학해 2개의 학위를 얻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식민고등관료로 진출하기 위한 고시 열풍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일제가 설립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오늘날의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자리다. [동아DB]
‌경성제국대학은 조선인 학생들에게 일본식 엘리트주의, 즉 일본 지배층의 '무사적 윤리'를 심어주는 악영향을 초래했다. 조선인 학생들은 일본인 학생들이 하는 '객기 부리기'에 동참했다. '달리는 전차 세우기'를 하거나 '파출소 앞에서 일본인 경찰관의 발에 오줌 누기' 등의 만용적 행동을 따라 한 것이다. 정선이는 '경성제국대학 연구'(2002)에서 "이러한 행동은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발견하기 힘든 것이다. 식민지 사회에서 조선인 학생이 이러한 만용적 행동들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고 했다.

흥미롭게도 그런 '객기 부리기'는 훗날 한국의 일부 사법고시 합격자들에게도 똑같이 나타난다. 법조인을 특권층으로 인식하는 '법조 특권주의'의 수혜자로 입문하게 된 것을 자축하는 의례(儀禮)라고나 해야 할까. 그런데 그들에겐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의례가 교통법규 위반이나 노상방뇨 등과 같은 경범죄 저지르기로 나타났다는 것은 너무 측은하지 않나?

경성제국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곧장 출세가 보장된 건 아니었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두식은 '법률가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2018)에서 "제대로 사람 대접을 받으려면 고등시험에 붙어야 했다"며 "해마다 봄이 오면 식민지 조선의 많은 법학도들이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 향하는 관부연락선에 올랐다. 6월 말 도쿄에서 시행되는 고등시험 사법과에 도전하려는 젊은이들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아예 1년을 잡고 일본에 머물며 시험을 준비한 사람들도 많았다. 일본 본토에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조선인 유학생들이 시험 대열에 합류했다. 가난한 청년들은 꿈도 꿀 수 없는 길이었다. 시험을 치려면 왕복 여비뿐만 아니라 물가가 비싼 도쿄에서 최소한 한 달을 버틸 돈부터 마련해야 했다. 그래도 얼마나 많은 조선 청년들이 이 경로를 오갔는지,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시모노세키에서 도쿄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 후지산을 바라보면 시험에 떨어진다는 징크스가 존재할 정도였다."

오늘날 '법조 특권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검찰을 향한 비난이 쇄도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법조 특권주의의 동력은 '소용돌이 사회'인데, '소용돌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쓴 사람들이 '법조 특권주의'를 비난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특권은 대의를 위한 것이라 아름답지만, 너의 특권은 사리사욕을 위한 것이라 추하다"는 식이다. 그런 '내로남불'을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저지르고 있으니, 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위선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권력을 대하는 사람의 뇌는 건강한가

2001년 1월 6일 서울 중구 정동 국가고시응시접수처 앞 공터에서 사법시험 및 군법무관 임용시험 응시 희망자들이 원서를 내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동아DB]
‘신동아' 9월호에서 소개한 김두식의 '헌법의 풍경: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2004)에 이어 이 책의 후속작인 그의 '불멸의 신성가족: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2009)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이 두 책의 개정판은 각각 2011년, 2019년에 나왔다). 김두식이 '법률가들'에서 스스로 요약한 바에 따르면 이 두 책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시험 한 방으로 인생이 좌우되던 법률가 탄생 과정, 판·검사 임용에 목숨을 거는 경쟁 구조, 법률가 집단 특유의 특권의식과 내부 서열, 살인적인 업무량, 전관 양산과 평판 형성, 그 사이로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브로커, 법조계 전체를 지배하는 '원만함' 이데올로기 등이 형편없는 법률서비스를 만들어왔다."

필자는 그런 다양한 내용 중에서도 특히 '사회가 버려놓는 사법고시 합격자'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법조공화국은 법조인이나 관(官)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게 아니라, 사법고시 합격자를 대하는 일반 국민의 자세와 태도도 민관(民官)합동 작품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신경심리학자 이언 로버트슨은 "권력을 쥐면 사람의 뇌가 바뀐다"고 했는데, 우리는 동시에 권력을 대하는 사람의 뇌는 건강한지 살펴보면서 권력을 대하는 자세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제목에서부터 법조계의 부족주의를 고발하는 '불멸의 신성가족'은 김두식이 공동연구자인 변호사 김종철과 함께 2008년 2월부터 7개월 동안 법조계 안팎 23명을 만나 심층 면담을 하고 구술을 녹취하는 등 엄청난 공을 들인 작품이다. 검사, 전·현직 판사, 변호사를 만났고, 법원 일반 공무원과 변호사실 직원, 이른바 '브로커'로 불리는 사건 수임 중개업자도 만났고, 소송 경험자와 신문기자, 교수, 결혼소개업자(속칭 마담뚜)의 구술도 들었다. 그런데 가장 가슴에 와닿는 건 '들어가는 글'에 쓴 김두식의 자기 고백이다.

"시험에 합격한 다음 날부터 당장 제 말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친척들과의 모임에 가도 어른들이 앞다투어 저와 이야기를 나누려는 듯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겸손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고, 합격 이전의 정신 상태를 유지하려고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그런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자부했는데, 검사를 그만두고 꽤 시간이 흐른 뒤 어머니께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였길래 충격을 느낀 걸까.

"네 이모가 지난번에 그러더라, 두식이가 검사하는 동안 애가 좀 이상해졌나 생각했다고. 젊은 애가 왜 늘 뒷짐을 지고 걷는지, 어른들을 모신 자리에서 왜 늘 중심에 있으려고 하는지, 쟤가 원래는 안 그랬는데 검사가 되더니 아예 영감 노릇을 하려나 생각했다고 하더라."

‘불멸의 신성가족'은 판·검사가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거룩함'과 불가침의 '성역'이 된 집단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성가족 진입에 성공한 판·검사들은 영광스러운 '인간 승리'를 구현해 보인 것이지만, 구술자인 철학자 변상환은 사법시험에 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오로지 자기 욕망 하나에 의해서, 수년에 걸쳐서 자기를 채찍질해서 결국 거머쥔 합격증이니까 저는 그것 자체가 인간성의 파괴, 어떤 조직적인 파괴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법조인들의 타고난 '서열 중독'

2007년 7월 5일 로스쿨법이 국회를 통과하던 날,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고시생들이 법률 학원 전단지들을 뒤로한 채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동아DB]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에도 살벌한 경쟁은 계속된다는 데에 신성가족의 비극이 있다. 신성가족 안에도 명백한 등급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등급 없는 조직이 있을 리 없지만, 신성가족의 등급 서열제가 가장 심하다는 걸로 이해하면 되겠다. 김두식은 "법조인으로 살아남으려면 사법연수원에서 더 심한 경쟁을 해야 합니다. 한번 정해진 서열은 좀처럼 바뀌지 않으므로, 출발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법조계 내부에는 각종 서열들이 벗겨도 벗겨도 끝이 보이지 않는 양파껍질처럼 두껍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판·검사들 세계에도 엘리트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가르는 다양한 기준이 있습니다. 관료화된 조직에서 이런 서열은 법조인들에게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줍니다. 변호사들도 어디 출신으로 어떤 로펌에서 일하는지에 따라 또 나름의 서열이 매겨집니다. (…) 판사들은 길을 걸어도 언제나 이 (서열) 순서대로 걷고, 등산을 해도 이 순서 그대로 산에 올라가며, 심지어는 화장실을 들어갈 때도 이 순서대로 들어간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입니다."

서열 중독은 검사가 판사에 비해 한 수 위다. 2006년부터 검사로 일한 정명원이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외곽주의자' 검사가 바라본 진실 너머의 풍경들'(2021)에서 초임 검사 시절 겪은 일들을 털어놓은 게 재미있다. 부장실에서 회의가 있으니 검사들은 모두 오라는 연락을 받고 막내인 자신이 제일 먼저 회의실에 가야 할 것 같았다고 생각한 것까진 좋았는데, 거기까지만 생각한 게 문제였다.

인상 좋은 부장님이 환하게 웃으며 앉으라기에 가장 안쪽 자리에 앉았다나. 회의가 끝나고 검사실로 복귀하자 자신의 지도를 담당하는 선배(사부검사)가 조용히 부르더니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선배들이 오면 자리를 양보해야지, 그대로 앉아 있으면 안 돼."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되물을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알겠다고만 대답했다나.

정명원은 "회의실 자리에도 지엄한 법도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회의실 자리 배치뿐 아니라 밥 먹는 식당에서도, 물컵과 수저를 놓는 순서에도, 하다못해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순서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석순'이라는 원칙이 있다는 사실을 머지않아 알게 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석순이란 건 그러니까 몇 가지 원칙으로 정해 둔 서열이다. 가장 우선되는 기준은 연수원 기수, 그다음으로 사법시험 기수, 임관 연도, 나이순이다. 이런 원칙에 따라 전국의 모든 검사들을 한 줄로 세울 수 있다. 모든 일에서 검사의 자리와 순서를 정하는 원칙을 미리 명확히 해둔다는 측면에서 석순 문화는 나름 편리하고 유용한 측면이 있다. 누가 부장님 옆자리에 앉을지, 누가 먼저 술잔을 받을지를 매번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므로 불필요하게 우왕좌왕할 일을 줄여줄 수 있다."

그런 서열제가 좋은 점도 있겠지만, 검찰의 인사기록 카드인 '블루북'에 함께 검사로 임관한 사법연수원 동기생 간의 서열이 숫자로 표시돼 있다는 건 좀 심하지 않은가. 그 나름의 객관화 작업을 거쳤다곤 하지만, 주관적 평가가 모여 결국 검찰 내부의 서열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법무부 검찰국의 입장은 "외부에서 볼 때는 과열 경쟁을 부추긴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2000명이 넘는 검사를 관리하기 위해선 꽤 합리적인 제도"라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그런 엄격한 서열제가 이 세상을 오직 관리의 대상으로만 보게끔 만드는 게 아닐까.

‘천재, 신동'이었던 이들의 특권의식

2015년 12월 7일 사법시험 준비생들이 서울 관악구 서울대 정문에서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다. [동아DB]
다시 '불멸의 신성가족'으로 돌아가자. 판·검사들은 어려서부터 늘 '천재, 신동'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이며, 지방에서 서울법대 들어간 사람은 한 군(郡)에 한 명 정도에 불과했다. 어린 시절부터 '서열 중독'과 더불어 '특권의식'에 빠지기 쉬운 환경에서 성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법원 일반직으로 고위직에 오른 구술자는 법관 조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옛날부터 독불장군이거나 유아독존적이거나 자기만 똑똑하다고 생각하거나 이런 친구들이 굉장히 많은 동네다."

그런 친구들은 자신이 누리는 모든 수혜와 특권은 철저히 자신의 능력에 따른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게끔 길들여졌다. 사회비평가 박권일이 '능력주의와 불평등: 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다는 믿음에 대하여'(2020)에서 잘 지적했듯이, "고시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능력주의의 이상에 가장 가까운 제도였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박권일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시 잡지인 '고시계'에 실린 합격자들의 합격 소감을 분석한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시계'에 실린 수많은 합격 수기와 조언들은 마치 (경제적) 환경의 차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고시 제도야말로 완벽한 개인 능력의 경쟁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수천, 수만의 실패와 불운은 지워지고, 몇몇 승자가 용이 되어 승천하는 장면을 장구한 세월에 걸쳐 보여줌으로써, 고시 제도는 능력주의를 끝없이 퍼 올리는 가장 강력한 원천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어느 순간 조직에선 '원만함'도 중요한 평가의 기준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승진을 위해서라도 원만함, 특히 '윗분들을 향한 원만함'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공부를 잘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요구에 자신을 잘 맞춰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평생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 이에 대해 김두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능력과 원만함을 통해 넘어서야 하는 마지막 벽인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고 나면, 그동안 너무 오래 억압당한 자아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후에도 계속 평가를 받지만, 이때부터는 순서대로 법원장도 나갈 수 있고, 운이 따르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도 될 수 있으므로, 이제야 비로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원만함'이란 게 기본적으로 윗분들을 향한 것인데,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되고 나면 그렇게 바라보아야 할 윗분들이 현저히 줄어든 것도 중요한 요인일 겁니다."

억압당한 자아는 다른 방식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지난 2009년 39세 판사가 69세 소송 당사자(민사사건 원고)에게 법정에서 "버릇없다"고 말해 논란이 된 사건이 있었다. 원고가 소송 상대방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려고 "판사님" 하는 순간 "조용하세요, 어디서 버릇없이 툭 튀어나오고 있어"라면서 "할 말 있으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어서 하라"고 면박을 줬다는 것인데, 모멸감을 이기지 못한 원고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격권을 침해당했다"며 진정을 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소송 당사자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는 판단을 내리고 소속 법원장에게 주의 조치를 하도록 권고했다.

사실 판사들의 이런 '갑질 언어'는 정기적 뉴스거리가 된 지 오래다. 그간 보도된 사례들을 보면, "어디서 끼어들어" "입은 터졌다고 말이 계속 나오나" 하는 식의 고압적 태도를 보이고, "IQ(지능지수)가 얼마야. 거의 제로 수준이군" 같은 막말을 내뱉기도 한다. 또 어떤 판사들은 "공무원 새끼들이 하여튼…" "에이, 저런 사람이 무슨 공인중개사를 한다고…" "딱 봐도 짜고 치는 것 아니에요?" 등 막말을 일삼았고, 증인에게 '당신'이라는 호칭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변호인에게 "법원에 도전하는 거냐. 법대로 해주겠다"고 윽박지르는가 하면, "그냥 놔뒀더니 신났네" 하며 비아냥거린 판사들도 있었다.

그런 갑질 언어에서 검사가 어찌 판사에게 밀릴 수 있으랴. 대한변호사협회가 2016년 처음으로 시행한 검사평가제에 따라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가 서울 지역 검사들을 대상으로 평가한 1079건의 검사평가표에 따르면, '막말 검사' '호통 검사' 등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수사 검사의 사례가 낱낱이 적혀 있었다. 사기 사건과 관련해 항고인에게 "사기당한 놈이 미친놈 아니냐" "내가 조사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막말하며 항고를 기각한 검사, "모 지역 교도소나 구치소에서 나는 또라이로 알려져 있다" "시간이 되면 (고소인의) 회사를 압수수색하겠다" "검찰청은 들어오는 것은 자유지만 나가는 것은 마음대로 안 된다"고 말하는 등 위압적 언행으로 고소인을 압박한 검사도 있었다.

법조 개혁은 증오·혐오로 이루어질 수 없다

2018년 3월 2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 대강당에서 열린 제49기 사법연수생 임명장 수여식에서 연수생들이 성낙송 사법연수원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사법시험이 2017년 폐지되면서 이날 참석한 연수생들은 마지막 사법연수생이 됐다. [동아DB]
판·검사들의 '갑질 언어'는 별 실속 없는 '법조 특권주의'의 발현이지만, 그 대미를 장식할 실속형 특권주의가 있으니 그게 바로 '전관예우(前官禮遇)'를 이용한 축재(蓄財)다. 이건 끈끈한 동업자 의식이 전제돼야 하는 것이므로, 현직 시절에 갈고닦은 '원만함'이 이때에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된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013년 6월 소속 변호사 761명을 상대로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결과, 90.7%(690명)가 '존재한다'고 대답했다. 놀랍지 않은가.

더욱 놀랍고도 흥미로운 건 검찰개혁에 목숨을 건 것처럼 난리법석을 떨던 지난 정권이 그 문제엔 전혀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방관하거나 부추기는 짓을 저질러놓고도 '그게 왜 문제가 되느냐'는 식으로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었다는 점이다. 아니, 역대 어느 정권이 그 문제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기라도 했던가. 전관예우의 실상에 대해선 나중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우리가 진정 검찰개혁을 포함한 법조 개혁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누구의 원한을 갚겠다는 식으로 정치·정략적 증오·혐오에 의해 추동되는 '개혁'과 결별해야 한다.

날이 갈수록 '소용돌이 사회'는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중앙과 정상을 향한 맹렬한 돌진'이 학벌주의와 결탁하면서 보통 사람들까지 '법조 특권주의'의 잠재적 고객으로 변질돼 가고 있잖은가. 지방민이 '지방 살리기' 대신 가족 중심의 각자도생(各自圖生)을 꾀하는 것과 비슷하다. 자식을 서울로 보내 성공하게 만들면 되지 왜 모두를 위한 쓸데없는 일에 힘을 뺀단 말인가. '법조 특권주의'도 마찬가지다. 내 가족 중에서 법조인 나오게 만들면 된다는 게 해법으로 통용되고 있다.

법조인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법조인이 아니다. 출신 성분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2년 전 어느 수습 변호사가 자신이 소속된 법무법인의 대표가 자신에게 폭언, 부당 지시 등을 했다는 진정을 대한변호사협회에 제기한 적이 있다. 그가 대표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서울대도 못 나온 루저"였다나. 아니, 세상에 이렇게 솔직한 사람도 있나. 그런 말은 대부분 뒷담화로 하는 건데 그렇게 대놓고 말하다니 얼마나 솔직한가 말이다.

2020년 국내 12대 로펌에 입사한 신입 변호사 235명 가운데 서울대 로스쿨 출신이 104명, 연세대가 41명, 고려대가 40명으로 이들 세 학교 출신이 78.7%를 차지했다. 그래서 나타난 게 이름 없는 로스쿨에 불어닥친 '반수 열풍'이다. 충청 지역 로스쿨에 다니는 어느 학생은 "동기 10명 중 8명 정도는 서울 상위권 대학 로스쿨 가려고 반수에 도전하겠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 지방대 로스쿨 교수는 "지방 로스쿨은 반수로 상위권 학생들이 빠져나가면서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떨어지고, 이에 반수하는 학생이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애초 로스쿨 입학생 대부분 수도권 출신이기 때문에 졸업 이후엔 아무도 지방에 안 남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오죽하면 영남대는 2024년 8월 발표한 내년도 로스쿨 신입생 모집 요강에 "다른 로스쿨로 '반수'할 학생은 지원하지 말라"는 안내문을 넣었겠는가. 이렇듯 특권을 향한 맹렬한 돌진을 기본 문법으로 장착한 법조계에서 정의를 찾는다는 게 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겠는가. (다음 호에 계속)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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