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 사면 에바" 공조 장치 에바가루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아의 인기 모델

눈에 띄게 커진 SUV 파도에 세단의 점유율이 SUV에 잠식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남아 있는 세단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존재감을 키울 수밖에 없었어요. SUV가 대체하기 어려운, 세단만이 가지는 디자인과 편안함으로 승부를 봐야 했습니다. 2019년 출시된 K7의 페이스 리프트 모델은 그 고민이 잘 드러나는 차였습니다. 프리미어라는 서브네임에 기대한 만큼 거의 신차 수준의 업그레이드를 이뤄냈죠. 외관은 사이드 캐릭터 라인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바꿨습니다. K9이 신형 모델에 흰수염고래를 대입했다면 이쪽은 호랑이를 넘어 백상아리에 가까워진 인상이었어요.

특히 기존의 날카로움을 유지하면서 더 묵직하고 담대해진 전면부가 눈길을 끌었는데요. 이전보다 더욱 커진 라디에이터 그릴은 세로 살의 두께를 함께 키웠고, 애매하게 두 번 꺾었던 라인은 하나로 깊게 정리해 입체감이 더 두드러지게 되었습니다. LED 헤드램프는 더 얇아졌고, 바깥쪽으로 꺾어 정면에서는 알기 힘들었던 Z자 주간 주행등을 안쪽으로 꺾어 그릴을 타고 흐르는 형태로 디자인해 독특한 인상을 만들어냈습니다. 범퍼 하단으로 이동한 방향 지시등은 마치 송곳니를 연상시켰죠. 덕분에 전면부의 포스만큼은 국산 고급 세단은 물론 수입차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어요.

측면의 변화는 크지 않았지만 전후방 범퍼를 살짝 늘리면서 전장이 5m에 육박하게 되었습니다. 제네시스G80보다 긴 수치였죠. 달라진 휠 디자인 역시 외관과 잘 어울렸어요. 후면부 역시 변화가 확실했습니다. 기아차의 다른 라인업과 패밀리룩을 이루기 위해 가로로 길게 이은 리어램프에는 일명 '절취선'이라고 불리는 분할된 형태의 조명을 넣어 신선함을 더했습니다. 위를 감싸던 크롬 라인은 아래로 이동했고, 전체적으로 가로 선이 강조되었습니다. 직전 모델보다 중후함을 강조한 인상이었지만 리어램프가 높게 배치되어 붕 떠 보이는 느낌은 여전했죠.

LED 램프 사이에 외로이 빛나는 밸브 타입의 방향 지시등은 이질감이 느껴졌습니다.  머플러는 기존의 양 갈래 머플러를 유지했지만, 배기가스를 내뿜는 이미지를 줄이기 위해 범퍼 매립형 장식을 넣었고, 실제로는 바닥을 향하는 수도꼭지 형태로 디자인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디자인 트렌드)

실내 역시 외관에 발맞춰 환골탈태했습니다. 어째 K7은 페이스리프트만 했다 하면 내·외관이 어마어마하게 달라지네요. 그중에서도 탑승객의 시선이 가장 먼저 향하는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화면의 변화가 달라진 분위기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화면의 크기가 이전에 8인치였던 것과 비교하면 역 체감이 상당했어요. 12.3인치 대화면 LCD 모니터 2개를 사용해 플래그쉽 세단인 K9과 동일하게 구성했습니다.

무선 업데이트를 지원하는 내비게이션 / 사물인터넷을 활용해 집안의 가전제품을 제어하는 카투홈 기능이 탑재되어 최신 차 다운 첨단 감각이 물씬 느껴졌죠. 여기에 신형 쏘나타(DN8)에서 먼저 선보인 내장형 블랙박스 '빌트인 캠'과 파도 소리·산새 소리와 같은 백색 소음으로 탑승객에게 심신 안정을 주는 '자연의 소리'라는 독특한 기능까지 추가됐죠. 로드 레이지를 방지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

화면이 커지면서 송풍구는 화면 아래로 자리를 옮겼고, 버튼이 밑으로 밀려나면서 이전의 아날로그시계는 삭제되었습니다. 대신 이전의 부츠 타입 기어 레버를 고급 라인업에만 쓰이던 '전자식 변속 레버(SBW)'로 변경하고, 뱀 가죽 대신 K9의 것과 동일한 퀼팅 무늬를 적용했습니다. 전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실내를 연출했죠. 블랙 하이그로시에 대한 기아의 변치 않는 사랑도 확인했습니다. 여기에 운동장 같은 뒷좌석과 넉넉하게 마련된 커튼, 개방감이 좋은 파노라마 썬루프도 여전히 좋은 구성이었죠. 대세에 따라 얇은 무드 라이트를 추가한 것도 좋았는데요. 너무 얇고 딱히 밝지도 않아서 차라리 1세대 모델처럼 간접 조명 방식으로 더 폭넓게 둘렀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파워트레인에도 드디어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주력 트림이었던 2.4L 쎄타 GDi 엔진을 새로운 2.5L 스마트 스트림 GDi 엔진으로 대체해 출력과 효율을 높였습니다. 특히 이 엔진은 주행 환경에 따라 간접 분사(MPI)와 직분사(GDi)를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독특한 엔진이었습니다. 여기에 8단 자동 변속기를 2.5L 모델에도 확대 적용해 배기량이 커졌음에도 연비까지 좋아졌죠.

판매량이 저조했던 3.3L 가솔린 모델은 단종되었지만 기존 3.0L GDi 모델과 LPi, 2.2L 디젤, 하이브리드는 유지해 여전히 운행 목적에 따라 파워트레인을 폭넓게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또 3.0L 모델에 한해 전동 스티어링 방식을 기존 컬럼 타입 'C-MDPS'에서 랙 구동형 'R-MDPS'로 변경했는데요. 응답성과 조향 품질이 좋아진 것은 좋지만 차급이 아닌 트림에 따라 조향 시스템에 차이를 둔 것은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승차감은 여전히 편안했고, 불과 몇 년 사이에 보편적인 옵션이 된 주행 보조 기능은 볼보의 파일럿 어시스트가 부럽지 않을 만큼 완성도가 높아졌습니다. 여러모로 풀 모델 체인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변화 폭이 상당한 페이스리프트였죠.

[식지 않는 인기, 발목 잡는 결함]

2세대 K7은 기아차의 자랑인 빼어난 디자인에 넘칠 듯한 편의 장비, 눈에 띄게 높아진 기본기가 더해져 전작의 인기를 이어 꽤 잘 팔렸습니다. 사전 계약은 한 달이 채 안 되어 1만여 대를 돌파했고, 이후로도 준수한 성적을 이어갔죠. K7 프리미어가 힘을 보탠 2019년, 국내 누적 판매량도 약 5만 5천여 대로 그랜저의 절반에 달했습니다. 보다 중후해진 디자인과 말랑한 승차감으로 차의 성격은 조금 달라졌지만 주 구매층인 중장년층 소비자에게는 확실히 반응이 좋았습니다. 공무차량과 임원용 차량으로도 여전히 인기를 끌었어요.

사실 지갑 여는 분의 입맛에 맞추는 게 맞죠. 그사이 쉐보레의 임팔라, 르노삼성 SM7 같은 경쟁차들이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서 국내 준대형차 시장은 그야말로 현대·기아차의 독무대가 되었습니다. 이후 출시된 더 뉴 그랜저의 전위적인 디자인에 거부감을 느낀 소비자는 오히려 보수적인 디자인의 K7에 눈을 돌리면서 약간의 반사 이익을 얻기도 했어요.

한편, 출시 이후 여러 문제가 생겨 많은 오너가 불편을 겪기도 했습니다. 올 뉴 K7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공조 장치의 수산화알루미늄 토출 문제, 일명 '에바가루' 사태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최근 현대·기아차의 발목을 부여잡고 있는 쎄타2 GDi 엔진 결함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은 모델이었죠. 특히 이 문제의 엔진이 1세대 모델부터 주력 트림으로 폭넓게 쓰였기에 그 문제가 더 심각했습니다. 엔진 부품 중의 하나인 '크랭크 샤프트'의 결함으로 엔진에 이물질이 발생해 소음 유발 / 엔진 오일 감소 / 심한 경우 엔진이 손상되어 주행 중 시동이 꺼지거나 화재가 발생할 위험이 있었죠.

새로 탑재된 2.5L 스마트 스트림 엔진 역시 엔진 오일이 과도하게 소모되는 결함이 지적되는 등 후폭풍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정의선 부회장이 2021년 현대차 그룹 회장직에 오른 이후 '품질 경영'을 내세우면서 조 단위의 엄청난 충당금을 쌓아 수습에 들어갔는데요. 여전히 소비자의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죠.

[후속 없이 단종?]

K7 프리미어가 아직도 팔팔한 와중에 후속 모델의 출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앞서 그랜저IG가 K7이 무색할 정도의 페이스리프트로 체급과 상품성을 키우면서 시장을 휩쓸자, 위기감을 느낀 기아가 발 빠르게 나선 건데요. 후속은 최신형 플랫폼을 적용하면서 차체를 이전보다 많이 키워 이번에도 역시 그랜저를 능가하는 사양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프리미어' 같은 서브네임으로는 성에 안 찼는지, 내친김에 이름까지 바꿔 아예 급을 올려버리기로 했습니다. 기아의 스포츠 GT 모델이 끝내 '스팅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면서 K 시리즈와 결을 달리하게 된 것도 이걸 위해서였을까요?

2022년 출시된 모델은 K8이라는 이름표를 달았고, 1을 추가한 만큼 체급, 옵션, 가격도 반 체급 커졌죠. 얼떨결에 K7이라는 이름은 K7 프리미어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요. 르노삼성 SM5가 SM6에 바톤을 넘기고 사라진 것과 비슷한 케이스죠. K8의 프로젝트명이 'GL3'인 것을 보면 분명 K8은 K7의 3세대 모델로 개발되었고, 그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나저나 소비자들이나 회사에 있어 'K7'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가 꽤 클 텐데요. 왜 말장난을 했을까요? 그래도 뭐 이름까지 바꿔줬으니 K8은 나중에 별도의 편으로 좀 더 자세히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등장과 함께 빼어난 디자인으로 젊은 아빠들의 가슴을 뛰게 했던 기아 K7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비록 한 지붕 식구이긴 하지만 전통 강자 그랜저와 함께 시장을 양분하며 기아차의 대표 세단으로 자리매김한 브랜드였어요. 국산 차 특유의 압도적인 가성비와 넉넉한 공간을 어필하며 수입차를 선택할 때 꼭 한번 고민을 하게 만드는 복병으로 활약했죠. 객관적으로 봐도 이 가격에 이만한 차를 내놓는 브랜드가 몇 개 없어요. 찾아보셔도 재미있을 겁니다.

3세대로 거듭나면서 뜬금없이 이름을 바꾸긴 했지만 높아진 가격에도 인기는 여전했습니다. 기아차 전륜 구동 라인업의 맏형으로서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죠. 파워트레인 내구성에 여전히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요. 앞으로의 행보를 좀 더 지켜보고 평가를 해도 좋을 것 같네요.

- 멜론머스크의 이용허락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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