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문 열어두고 경보기 껐다…안전불감증이 빚은 참사
(부천=연합뉴스) 홍현기 기자 = 지난 8월 19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부천 호텔 화재는 경찰 수사 결과 안전 불감증과 관리 부실이 곳곳에서 드러나 대규모 인명피해에 대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경찰은 방화문인 객실 출입문이 열린 상태로 방치되면서 화재가 급속도로 확산한 것으로 보고 관계부처에 '도어 클로저'(자동 닫힘 장치) 설치 의무화를 건의하기로 했다.
방화문에 자동 닫힘 장치 없어 불길 확산
8일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8월 22일 부천 호텔 화재 당시 최초로 불이 난 810호(7층) 객실의 출입문은 활짝 열려 있어 불길은 빠른 속도로 객실 밖으로 번졌다.
이 호텔 출입문은 2004년 준공 당시 갑종 방화문(60분 이상 화염을 버틸 수 있는 방화문)으로 시공돼 항상 닫혀있거나 화재 발생 시 자동으로 닫혀야 하지만 도어 클로저가 없는 탓에 열려 있었다.
경찰 수사 결과 설계 도면에는 도어 클로저가 설치된 것으로 표시됐고, 사용승인 때도 이런 내용이 포함됐으나 지금은 설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경찰은 2006∼2020년 인터넷에 올라온 출입문 사진 4건을 확인했으나 모두 설치 흔적을 찾지 못했다.
2022년 10월 인테리어 공사 전·후 출입문 사진뿐만 아니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식에서도 모두 설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호텔의 전 소유주는 "(과거에는) 도어 클로저가 설치돼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현 소유주는 "(호텔을) 인수할 때부터 도어 클로저가 없었다"며 상반된 입장을 밝혔다.
경찰은 관련 실험 결과를 토대로 객실 방화문이 닫혀 있었다면 5분 30초 만에 내부 산소 부족으로 불이 꺼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규정상 방화문은 닫혀 있어야 한다는 내용만 있을 뿐 도어 클로저 설치 강제 규정은 없다"며 "이번 화재를 계기로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호텔은 도어 클로저 설치를 의무화해달라고 관계부처에 건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비상구 방화문 열어놔…화재경보기 고의로 껐다
호텔 직원들은 복도 비상구에 설치된 방화문조차 환기와 청소 등을 이유로 '생수병 묶음'으로 고정해 열어두면서 화재가 다른 층으로 번졌다.
호텔 7층에서 난 불은 복도 방화문에서 차단되지 못했고 화염과 연기는 위층인 8층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경찰 조사 결과 호텔 6층과 8층 복도 비상구의 방화문도 화재 당시에 모두 열린 상태였다.
특히 호텔 매니저는 화재 직후 화재경보기가 작동했는데도 화재 발생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경보기를 고의로 끈 사실도 경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그는 경보기를 끈 상태로 호텔 7층으로 올라가 810호 객실 내 화재를 목격한 뒤에야 1층으로 이동해 경보기를 다시 작동시켰다.
경찰은 경보기를 껐다가 다시 켜면서 2분 24초만큼 투숙객들의 대피가 늦어지게 됐다고 판단했다.
경찰 관계자는 "호텔 매니저가 경보기를 끄지 않았다면 사망자 발생 객실 3곳의 투숙객 5명은 '블랙아웃'(연기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 이전에 화재 발생 사실을 알고 대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명 추락사 객실에 완강기 없어…소방교육도 미실시
경찰은 호텔의 모든 객실에 있어야 하는 간이완강기도 전체 63개 객실 중 절반가량인 31곳에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했다.
다른 9개 객실에는 간이완강기가 있었으나 줄 길이가 지상과 객실 간 높이보다 짧았고, 완강기 위치나 사용 방법도 기재하지 않는 등 관리가 소홀했다.
실제로 투숙객 2명이 에어매트로 뛰어내렸다가 숨진 807호 객실에는 완강기가 없었고, 다른 객실 투숙객들도 완강기 탈출을 시도하다가 실패해 숨지거나 다친 것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호텔 운영자는 관련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을 유지했고, 소방계획서를 부실하게 작성하고 종업원 소방교육도 실시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방화문을 비롯한 소방시설과 피난기구에 대한 관리가 소홀했다"며 "안전교육도 미흡한 탓에 (호텔 직원이) 화재경보기까지 고의로 끄면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화재는 지난 8월 22일 오후 7시 34분께 부천 중동의 한 호텔에서 발생해 사망 7명, 부상 12명의 인명피해를 냈다.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건물 소유주 A(66)씨를 포함해 4명의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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