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시간 자며 매일 고인 닦아 드리며 월 천만 원 버는 32살 장례지도사

안녕하세요, 저는 장례지도사입니다. 예전 영화에서 '아버지 뭐 하시노?' 하면 '장의사입니다' 하는 직업이 바로 저입니다. 장례식장 선정부터 입관, 발인 등 장례 전반적인 일정을 모두 담당하죠. 저는 93년생, 만 32살입니다.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어디를 가든 제가 막내였는데, 요즘은 젊은 분들도 꽤 많습니다.

보통 장례는 3일장으로 진행됩니다. 첫째 날에는 고인분께서 임종하시면 임종지에서 장례식장으로 모시고, 가족분들을 만나 장례 방식이나 입관 시기 등을 논의하며 빈소를 차립니다. 조문객을 맞이하는 예절도 알려드리고 전반적인 일정을 잡는 날이죠. 둘째 날에는 보통 오전에 입관을 진행하고, 제사를 모시고, 가족분들은 조문을 받습니다. 저는 발인 날 배차할 차량이나 인력 등을 배치해요. 셋째 날에는 발인을 하는데, 저는 이 모든 절차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 일은 7년 좀 넘게 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을 하대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어요. 친구가 장례지도사였는데, 그 친구가 제 몸에 손대려 하거나 가까이 붙어 있으면 왠지 찝찝했습니다. 친구가 "오늘도 일하고 왔다"라고 하면 "시신 만지고 왔나?", "귀신 붙는다"는 이야기도 실제로 제가 했던 말이고요. 심지어 그 친구를 만나고 오면 귀신이 집에 따라올까 봐 편의점에 들렀다가 귀신을 놔두고 가는 미신을 믿을 정도였습니다.

친구의 단순한 권유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친구가 술 한잔 하자고 하더니 갑자기 "장의사 할래?" 하더라고요. 술김에 "한번 가보자" 해서 다음 날 안치실에 갔는데, 문을 여니 고인분이 누워 계시더군요. 솔직히 흠칫했습니다. 친구가 고인분의 턱을 내리니 입안에서 피와 이물질이 뿜어져 나왔고, 그걸 보고 바로 도망쳤어요. 한두 시간밖에 있다가 다시 들어갔는데, 가족분들이 고인분 얼굴에 볼을 비비고 안고 우는 모습을 봤습니다. 제가 그동안 이 직업을 찝찝하게 생각했던 것이 죄송스럽더라고요.

친구가 가족분들께 "옛날에는 이런 염습 과정들을 가족이나 친지분들 손을 빌려 자택에서 직접 모셨다"는 멘트를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중에 우리 부모님 돌아가시면 내가 모실 수 있어?"라고 물으니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처음에는 이 일을 직업으로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나중에 우리 부모님 돌아가시면 내가 직접 모실 수 있게 일만 배워놔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보람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루에도 천 명 가까운 고인분들이 사망하시는데, 저희가 하는 일 중 입관은 열 가지 일 중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자택, 병원, 요양병원, 외인사 등 너무나 다양한 형태의 죽음이 있어서 그에 맞는 조치 방법을 알기 위해 엄청 많이 따라다녔어요.

처음에는 몸도 너무 힘들고 살도 많이 빠졌습니다. 가위에 눌린 적도 없는데, 잔상처럼 고인분 얼굴이 자꾸 보였어요. 눈을 떠도 감아도 보였죠. 수면 밸런스가 다 깨져 얼굴빛도 까맣게 변했습니다. 아침에는 일하러 나가야 하고, 밤에는 전화받는다고 잠을 못 잤죠. 이런 생활을 한두 달 하니 너무 힘들어서 3개월도 안 돼서 회사에 그만두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만두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잠 못 자고 살 빠지고 자꾸 보이던 것들이 다 없어지더군요. 그러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계속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연봉이 따로 없습니다. 일이 없으면 100원도 못 벌지만, 자기 시간 없이 매일매일 나가면 한 달에 1,000만 원도 넘게 벌 수 있어요. 잘 버는 분들은 연봉이 1억을 훌쩍 넘기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형이 있는데, 형도 장례지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아무 내색도 안 하셨어요. 하루는 어머니가 맥주를 한 잔 드시고 오셔서 "엄마, 아들 둘 다 장례지도사라서 어때?" 하고 여쭤보니, 어머니가 갑자기 우셨습니다. "내가 전생에 나쁜 짓을 많이 해서 그걸 아들들이 대신한다", "업을 많이 쌓아서 그렇다, 미안하다" 하시면서요. 그때 아, 어머니가 그런 생각을 하셨었구나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저희 형제만 이 일을 숨긴 게 아니라 어머니도 아들들이 장례지도사라는 이야기를 잘 안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부모님이 오히려 자랑을 많이 하세요. 친지분들이나 아는 분들에게 "우리 아들 장례지도사니까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라"는 식으로요.

수많은 고인분들과 유가족분들을 만나면서 장례 일에서 느끼는 게 정말 많습니다. 돈이 엄청 많아도 유족끼리 돈 때문에 싸우는 장례가 있는가 하면, 돈은 없어도 고인분을 진심으로 추모하는 장례도 있어요. 8년 동안 일하면서 정말 다양한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살면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도 못 하는 날이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죽음을 매일 보면 익숙해지지 않아요?"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전혀 익숙해지지 않아요. 익숙해지지 않지만 마주하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죽을 것을 알기 때문에, '어떻게 죽고 싶은가'를 생각하면서 제가 살아가는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요. 죽음을 외면하지 말고, 나에게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서 삶을 바꿔야 할지를 생각하면 인생이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시청하시는 분들이 제가 일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죽음과 주변인들의 죽음, 그리고 자신은 어떻게 죽고 싶은가, 그렇게 죽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느꼈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장례식 2일 차로, 입관 준비를 위해 이동 중입니다. 유가족분들께 어머님이 입으실 수의를 보여드립니다. 수의를 확인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태워보는 것입니다. 화학섬유가 많이 들어간 수의는 불에 태웠을 때 검은 연기가 나고 그을음이 남지만, 좋은 수의는 나무 타는 것처럼 재만 남아요. 냄새도 종이나 나무 타는 냄새가 나고, 다 타면 흩날리는 재처럼 됩니다. 플라스틱 타는 것처럼 찌꺼기가 남는 것은 좋지 않은 수의죠. 수의는 가격 차이가 매우 큰데, 저렴한 것은 30만 원에서 40만 원대이고, 안동포 수의 같은 것은 1,000만 원대도 있습니다.

수의와 함께 '흉배'라는 것을 보여드립니다. 조선시대 드라마에서 정삼품 이상의 높은 분들이 가슴에 착용하고 궁궐에 입궐하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어머님이 저승에 가셔서 높은 대우를 받으시라는 의미로 수의 다 입으시고 가슴에 해드릴 예정이에요.

관은 발인 나갈 집인데, 딱딱한 나무로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꽃향기 맡으시라고 관 안에 꽃을 장식해 드려요. 관의 두께에 따라 매장관과 화장관으로 나뉘는데, 보통 화장할 때는 오동나무를 쓰고, 매장할 때는 솔송나무나 향나무를 씁니다. 유가족분들이 선택하시지만, 화장 시에는 오동나무가 주로 사용되죠. 칠성판은 옛날에는 구멍이 7개 뚫려 있었는데, 고인의 몸을 바로잡을 때 사용합니다. 원래 관은 텅 비어 있는 나무 상자 같아서, 누군가의 소중한 분이 들어가시는 자리인데 너무 휑한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한지 등으로 내부를 장식해 침대를 만들어 드립니다. 이것은 고인분을 모시고 나면 마지막에 한지로 덮어드리기 위한 것이고요. 매장 시에는 이런 절차를 보통 하지 않는데, 매장의 의미 자체가 육신이 그대로 가라앉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들어가면 오히려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 장례에 여러 팀원들이 움직이기 때문에, 접객실에서 음식 서빙 등을 도와주시는 분들처럼 여러 직원분들을 관리하는 일도 제가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호칭이 다 '팀장'이에요.

처음에는 나중에 부모님 돌아가시면 제 손으로 모시고 싶어서 장례지도사 일을 시작했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저희 어머니와 닮은 고인분들을 만나면 일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형과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나중에 우리 부모님 돌아가시면 우리가 할 수 있겠나?" 물어보면 형도 저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죠. 처음에는 저희 손으로 모시고 싶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동료들과 서로의 부모님 장례를 책임지자고 말합니다. 저희는 이런 이야기를 엄청 스스럼없이 하기도 해요.

저는 형에게 제가 죽으면 수의 입기 싫으니 정장 입혀주고, 머리도 왁스칠 좀 해달라고 말합니다. 너무 엄숙한 분위기는 싫고, 누구라도 와서 편하게 있을 수 있는 분위기의 장례를 원한다고 말하죠.

저는 "왜 장례식은 영정 사진 하나로만 해야 되지?"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결혼식은 그들만의 축제이고 이야기로 가득한데, 장례식도 고인분을 위한 자리라고 생각해요. 고인이 살아왔던 흔적들을 많이 남겨놨을 텐데, 그걸 영정 사진 하나로 대체하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그래서 제 장례식장에는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청소년기, 고등학교 졸업 사진, 가족사진, 결혼사진, 아이와 함께 있는 사진 등으로 채워나가고 마지막에 영정 사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것은 예법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고, 요즘에는 빈소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는 문화도 있으니까요. 고인분만을 위한 장례 문화를 만들고 싶어서 팀원들과 회사를 차리면서 그런 것을 실현시키고 있습니다.

제 친형도 장례지도사입니다. 형도 처음에는 제가 인력이 부족해서 입관을 도와주러 갔다가, "나도 배우면 나중에 너랑 나랑 우리 엄마 아빠 모실 수 있나?" 물으니 제가 그렇다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고 합니다.

저와 함께 일하는 26살의 젊은 직원도 있어요.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모습을 보면서 '나도 뭔가 이런 직업을 해보고 싶다' 느꼈고, 이모부까지 돌아가시면서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슬픔이 가까이 있는 일이라 처음엔 힘들었지만, 뒤에 오는 뿌듯함이 커서 보람을 느낀다고 해요. 이렇게 시작하는 분들이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간혹 수의 입기를 원치 않는 분들도 계십니다. 한복이나 다른 옷을 들고 오시는 분들도 있죠. 일상적인 라운드 티나 이런 옷은 고인께 입혀드리기가 어렵지만, 꼭 입혀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면 해드립니다. 다만 비닐이나 가죽 재질은 화장했을 때 유골 색이나 그을음이 남을 수 있어서 최대한 피하고 유족분들께 충분히 설명해 드려요.

어떤 할아버님이 할머님 장례를 치르는데 "우리 할멈 입관 같이 하고 싶다"라고 하셨습니다. 염습 과정 중 할머니 귀에 대고 "나도 곧 따라갈게 조금만 기다려", "나도 곧 갈게"라고 말씀하셨는데, 놀랍게도 그 다음날 할아버지가 임종하셨습니다.

두 분이 엄청 사이가 좋으셨다고 해요. 자식분들도 금슬이 너무 좋으셨다고 했고, 조문 온 할아버지 친구분들은 "평생 그렇게 쫓아다니더니 죽는 것도 쫓아서 갔네", "넌 좋겠다" 하며 농담도 하셨습니다. 분명 슬픈 장례식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따뜻한 느낌의 장례식이었습니다.

저희는 보통 2인 1조로 입관을 진행합니다. 고인의 몸 전체를 깨끗하게 닦아드려야 하는 일이다 보니, 유족 입장에서는 남성들끼리만 입관하면 곤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분이 고인이시면 되도록 여성 팀장님을 불러 같이 해요. 지금 어머님 몸을 깨끗하게 닦아드리고 입고 계신 옷을 벗겨드릴 예정입니다. 팔을 굽혔다 폈다 하는 것은 안치실에 계시면서 몸이 굳었기 때문에 몸을 풀어드리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분의 시신을 만지는 일이라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다', '저희 어머니, 아버지다'라고 생각하니 무섭지 않아요.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니 그런 마음이 없어지더군요.

만약 고인에게 주변에 가족이 없는 경우에는 무연고자 장례 절차가 진행됩니다. 이 경우 조문을 받을 수 없어요. 나라에서 보름에서 한 달 정도 가족을 찾지만, 도저히 가족이 없으면 입관하고 바로 화장을 합니다. 부고도 알릴 수 없습니다. 안치실 전기세나 안치료로 장례식장에서는 하루 10만 원에서 15만 원 정도를 청구합니다. 한 달 정도 가족을 찾으면 안치 비용만 300만 원에서 450만 원이 나와요. 그런데 나라에서 장례식장에 지원해 주는 금액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100만 원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 금액으로 관도 사고 수의도 사고, 저희 둘 인건비도 줘야 하고, 화장장 갈 운구 차량도 섭외해야 합니다. 100만 원가량으로밖에 주지 않으니 얼마나 기본적인 것만 하겠습니까, 누군가의 마지막인데. 장례식장 입장에서는 무연고자 분들을 안 받으려고 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는 것이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형님은 입안에 복수나 피 같은 이물질이 나오지 않게 막는 '수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염을 했을 때 이물질이 나오는 것을 대비해 처치하는 것으로, 입과 코를 막는 것이죠.

염은 다 끝냈고, 이제 가족분들을 모시고 마지막 인사하시고 얼굴 가려드리고 배웅하는 단계가 남았습니다. 가족분들이 안치실로 내려오시면, 고인분은 차가운 곳에 계셔서 산 사람보다는 몸이 차갑다고 미리 말씀드립니다. 어루만지실 때 놀라지 마시라고 당부드려요.

또한, 어머니께서 입고 계신 수의에 가족분들 눈물이 묻으면 저승 가실 때 짐이 된다고 하니, 눈물 너무 흘리지 마시고 좋은 말씀만 해달라고 부탁드립니다. 어머니께서는 눈을 감고 계시지만 아직까지 귀는 열려있다고 하니, 마지막 가시는 길에 가족분들이 하시는 말씀 다 듣고 계신다고 전합니다. 가슴에 담아두신 말씀이 있으면 지금 다 전해달라고 하죠.

인사 나누실 때는 이마 위에 손을 올리고 온기도 넣어주시면서 인사한다고 안내해 드립니다. 상주분들은 "꼭 좋은 데 가십시오", "아버지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등의 말씀을 하십니다. 손자, 손녀분들은 할머니 다리도 주물러 드리고 손도 잡아드리도록 해요.

마지막으로 고인분의 얼굴을 가려드릴 때는 가족분들의 손길로 어머니의 면수, 즉 얼굴을 가리는 천을 덮어드리도록 합니다.

어머니께서 수의는 입고 계시지만 기본자세는 잡혀있지 않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7매듭 소렴으로 기본자세를 한번 잡아드리고, 21매듭 궁중대렴을 시작할 것입니다. 나실 때 바로 나셨듯이 가실 때도 자세를 다 잡고 가시라는 의미가 있어요. 힘이 조금 들어갈 수도 있지만, 어머니 좋은 곳 가시는 길이라 생각하시면서 마음속으로 많이 빌어주시면 된다고 말씀드립니다. 소요 시간은 15분에서 20분 정도 걸립니다.

예로부터 저희 장례지도사들이 했던 염습 과정을 가족분들이 자택에서 직접 다 했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현대 흐름상 저희 두 팀장 손을 빌려 어머님의 염습 과정을 마쳤지만, 마지막에 관에 모시는 입관의 과정만큼은 가족분들 손길로 한다고 해요. 남성분들은 왼손을 어머니 밑으로 받치고 오른손을 넘겨 마지막에 꼭 한번 안아보면서 입관하고, 여성분들은 집안 어른들이 먼 길 떠나실 때 배웅하듯이 몸에 손을 지그시 대서 관 쪽으로 같이 밀어주시면 된다고 안내합니다. 생전에 많이 못 안아보셨으니 마지막에 꼭 한번 안아보고 모시도록 하죠.

가족분들이 제사를 지내셔서 절에서 다라니경, 즉 진언을 모은 경전을 하나 공수해 와서 함께 올려드려도 되겠냐고 여쭙니다. 어머니 육신이 얼핏 보면 연꽃 같기도 하고 거북이 등껍질 같기도 한데, 연꽃은 불교에서 정화를 뜻합니다. 내세에 가셔서 이승에 있었던 안 좋은 일 다 잊으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라는 의미가 있어요. 거북이는 무병장수의 동물을 뜻하며, 다음 생에 태어나시면 아프지 마시고 오래오래 사시라고 이렇게 염을 해드렸다고 설명해 드립니다. 붉은 천에 은색 붓으로 어머니 본관을 적어드리는데, 어머님이 저승 찾아가실 때 이름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제 천판문, 즉 관뚜껑만 덮으면 입관 절차가 모두 끝나지만, 천판문 덮는 것을 가족분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 가슴에 대못 박힌다고 해서 가족분들은 따로 참관하지 않습니다. 가족분들께서는 손을 모으고 어머님께 반배를 드리고 재배를 드립니다. "어머니 편히 편히 가십시오", "어머니 극락왕생하십시오" 등의 말을 건넵니다. 고개 들고 손 푸신 뒤, 상주님들은 한 바퀴 돌아서 나가시는데 뒤돌아보면 미련 가지신다고 하니 앞만 보고 가시라고 안내해요. 빈소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에 들러 손 깨끗하게 씻고 눈물 자국 다 지우고, 흐르는 물에 머리에 물칠 세 번 하면 목욕재계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해 드립니다.

입관식이 끝나면 친지분들이나 가족분들이 관을 들고 화장터에 가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결관, 즉 관을 묶어 손잡이를 만드는 일을 해놓습니다. 관이 바뀌는 사고를 방지하고자 고인분의 이름을 미리 적어놓는 작업도 해요. 나가기 전에 가족분들도 확인하고 저희도 한 번 더 확인하여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입관식이 발인만큼이나 정말 중요한 절차입니다. 가족분들이 지켜보고 계시니 같이 하는 분들과 호흡이 잘 맞아야 하는데, 저희는 연습을 많이 합니다. 사무실에서 분기별로 마네킹으로 그런 연습들을 하죠.

입관을 마치고 초상을 알리는 첫제사인 성복제를 진행합니다. 가족분들 다 같이 큰절 두 번, 반절 한 번을 올리며, "사랑하는 어머님, 어머님 마지막 가시는 길에 많이 드시고 가시라고 우리 가족들이 여러 음식과 과일 준비했습니다. 혹여나 어머니 살아생전에 잘못한 것이 있다면 다 용서하시고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옵소서" 등의 축문을 낭독합니다. 마지막 인사로 가족분들은 어머니 앞에 죄인이라고 하며, 잘못했던 행동이나 말씀이 있다면 마지막 이배를 하면서 다 용서 구하자고 말씀드려요.

첫제사인 성복제가 끝나고, 어머니 남아계신 식사마저 하게끔 10분 정도 올려놨다가 상을 치웁니다. 발인이나 입관, 제사뿐만 아니라 호국원 안치 서류 확인 등 사소한 서류 작업까지 모든 행정 절차를 저희가 대신 맡아서 해요. 가족분들이 조문도 받아야 하고 정신도 없으실 테니 저희가 대신해드리는 것이죠.

점심은 보통 장례식장 빈소에서 밥을 먹습니다. 거의 매일 빈소 밥을 먹다 보니 물려요. 육개장, 시락국, 수육 등이 나오는데 너무 많이 먹어서 이제 물릴 정도입니다.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이기적이고 저만 생각하고 살았다고 하면, 죽고 나면 이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큽니다. 돈 아무리 많아봤자 죽고 나면 들고 갈 수도 없어요. 죽고 나서 돈을 들고 가는 것보다 내가 베풀었던 것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나의 빈소를 찾아와 주는 것이 정말 의미가 깊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다 보니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렵고, 주변인들의 죽음이 무섭기도 합니다. 예전에 발인 날 심장이 너무 아파 응급실에 갔는데, 별 이상이 없다고 해서 정신과에 가보니 우울증 약을 처방해 주더군요. 잠을 잘 못 자고 장의 일을 한다고 하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3일 먹었더니 싹 나았어요. 예민하고 날카롭고 저기압이던 시기가 있었는데, 슬픈 장면만 보고 슬픈 상황만 겪으니 저도 모르게 동요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잘 웃습니다.

장례지도사 직업에는 정년이 따로 없습니다. 요즘 AI 이야기가 많지만, 시신을 만지는 일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직업군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시신을 만진다는 이유로 낮은 대우를 받고 사회적 인식이 아직까지는 좋지 않아서 그런 점이 나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인데, '장례지도사다' 하면 '시체 닦으시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만 알고 계시니까요. 조금 좋게 봐주시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이구나' 하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일 하면서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제 손으로 모실 수 있다는 것에 '아 진짜 이 일하길 잘했다'라고 생각해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누군가의 삶이 끝나야지만 저희 일이 시작됩니다. 지인분들이 "범진아 누가 돌아가셨다"라고 연락이 올 때면, 너무 안타깝고 기다리지 않은 소식이지만,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이 이런 중요한 일을 겪었을 때 내가 생각이 나는구나, 나를 믿어주는구나' 하는 고마움이 항상 있습니다. 뿌듯함도 많이 느끼지만, 그런 연락은 안 왔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죠.

본 콘텐츠는 해당 유튜브 채널의 이용 허락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오늘 당장이라도 내가 죽는다면 뭐가 제일 아쉬울까, 뭐가 제일 후회될까를 생각해 보세요. 짝사랑녀에게 고백하고 싶을 수도 있고, 잘못했던 친구에게 사과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 다양한 일들이 많잖아요. 오늘 당장 죽는다고 생각하고 그 일들을 현실화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와 형, 저는 새벽에도 인사를 하고 나갑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인사일 수도 있지만, 저희 가족에게는 정말 뜻깊은 인사예요. 혹시나 내가 당장 죽거나 누군가가 당장 죽었을 때 작별 인사를 못 했을까 봐, 작별 인사처럼 하는 것이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장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면 어떻게 살아갈지는 본인 스스로가 더 잘 알 겁니다.

혹시 미성년자인 상주가 된 분이나, 정말 돈이 없어서 장례를 못 치르시는 분들은 연락 주시면 저희가 봉사하겠습니다. 음식값까지 다 해드릴 수는 없지만, 관, 수의, 입관 용품 등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봉사해 드릴 테니, 정말 가슴 아픈 사연 있으신 분들은 따로 연락 주시면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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