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원형 SSG 감독은 지난해 팀을 정규시즌 1위로 이끈데 이어 한국시리즈에서도 키움을 꺾고 정상에 섰다. 특히, 정규시즌에서 개막전부터 시즌 최종전까지 줄곧 1위를 내달린 ‘와이어 투 와이어’는 KBO리그 역대 첫 기록이었다.
김원형 감독은 현역 시절에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전주고를 졸업한 뒤 1991년 쌍방울에 입단해 2011년 SK에서 유니폼을 벗을 때까지 통산 134승(144패)을 올렸다. 이것은 역대 9위에 해당한다. 야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젊은 시절을 약체 팀인 쌍방울에서 9년을 보내지 않았다면(68승 73패 평균자책점 3.71) 더 많은 승수를 쌓았을 것은 분명하다.
곱상한 외모로 ‘어린 왕자’로 불렸지만 투구 스타일은 공격적이었다. 안타나 홈런을 맞을지언정 볼넷으로 걸어 내보내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그 투구가 유달리 빛난 것은 1993년 4월 30일 전주구장에서 열린 OB(현 두산)전이었다. 이날 김원형 감독은 역대 7번째이자 역대 최연소 노히터(20세 9개월 25일)를 달성했다. 9이닝 동안 단 1개의 볼넷만을 내줬고, 삼진은 6개를 잡아냈다.
김 감독이 현역 시절 뛰어난 성적을 거둔 데는 최고 140km/h 후반대를 기록하는 빠른 공과 안정적인 제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종으로 빠르게 떨어지는 파워커브도 빼놓을 수 없다. 12시에서 6시 방향으로 뚝 떨어지는 파워커브는 타자에게 마구 그 자체였다. 이에 ‘머니피치’는 김원형 감독에게 그 파워커브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가 커브를 처음 던진 건 초등학교 때였어요. 커브는 투수라면 누구나 던질 줄 아는 흔한 구종이지만 이것을 제대로 던질 줄 아는 이는 매우 드물어요. 투수 구종 가운데 익히기 제일 어려운 게 커브라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자기 걸로 만드는 게 쉽지 않은 구종이에요.
왜냐하면, 제구하기가 어렵거든요.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려면 릴리스 포인트라는 점이 하나예요. 어느 한 지점의 스트라이크를 던지려고 하면 이 포인트에서만 던져야 해요. 여기서 오차가 생기면 스트라이크가 되지 않아요. 순간적으로든 감각적으로든 뭔가 어긋나면 원하는 곳에 던지기가 쉽지 않은 거죠. 커브는. 반면 속구는 조금 포인트가 늦든 빠르든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거든요.
초등학교 때 야구부에 들어가니까 감독님이 “변화구를 한번 던져봐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선택한 게 커브였죠. 대부분 슬라이더를 선택하는데도요. 저는 워낙 손목을 꺾어서 던지니까, 팔 스윙이 부드러워서 그런지 처음부터 손목을 꺾어서 커브를 던졌죠. 그 후로 선수 은퇴할 때까지 쭉 커브를 던졌어요. 물론, 초등학교 때 커브 그립은 일반적인 것이었어요.

파워커브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쌍방울에 입단하니까 마티 드메리트 코치님이 인스트럭터로 있었어요. 근데 그분이 처음에는 커브를 못 던지게 하고 열흘 정도를 슬라이더만 던지는 연습을 시키더라고요. 사실 저는 그때 슬라이더를 처음 던졌어요. 고교 때까지는 한 번도 던진 적이 없어요.
그 당시는 지금과 달리 대부분 투수가 속구에 변화구 하나 정도 던졌어요. 변화구를 두 개나 던지는 투수는 거의 없었어요. 변화구를 가르쳐 주는 지도자도 드물었으니까요. 그렇게 슬라이더를 연습하는데, 한 번도 안 던진 거니까 제대로 될 리가 없잖아요. 그걸 보더니 하루는 투심처럼 실밥을 잡고 던지는 파워커브를 가르쳐주더라고요.
슬라이더만 던지게 한 것이 슬라이더를 배우라는 의미는 아니었어요. 아마 선수들의 장단점을 살펴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한 열흘 정도 슬라이더를 던지고 나서 “이제 커브를 던져봐라”라고 하셔서 자신 있게 던졌죠.
이론적으로는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에 힘을 주는 게 5:5이지만, 아무래도 가운뎃손가락 쪽에 힘을 더 주게 되더라고요. 6:4 정도로. 그렇게 던지니까 원심으로 던지는 것보다 투심이라 회전력이 더 생겨 공이 강하게 꺾이는 것 같았어요. 구속도 더 나왔고요. 손목도 팔꿈치도 많이 꺾어서 던졌죠. 그리고 속구처럼 공을 때린다는 느낌으로 던지는 게 요령이에요.
타깃은 기본적으로 타자의 어깨를 봤어요. 스트라이크존에서 볼로 떨어지는 결정구를 던질 때는 릴리스 포인트를 좀 더 앞에 뒀고요. 더 앞에서 던져 강하게 꺾이게끔 한 거죠.
이 파워커브를 배운 후, 1996년까지는 속구와 파워커브만 던졌어요. 오로지. 그러다가 구종 2개로는 타자를 상대하는 게 벅차더라고요. 그때 포크볼을 추가하고 그런 식이었죠. 다만 저는 파워커브를 단순히 스트라이크를 잡는 공이 아니라 결정구로 썼어요. 왜냐하면, 속구처럼 오다가 뚝 떨어지니까 헛스윙을 유도하기 좋았으니까요.
저는 커브든 속구든 모든 구종은 속도보다 회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이 아무리 빨라도 회전력이 없으면 타자 눈에는 밋밋하게 보여 쉽게 쳐내요. 회전력이 좋으면 공이 계속 돌면서 떨어지니까, 타자는 체감 속도를 빠르게 느끼는 거죠. 그 회전력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저는 그립과 손목하고 팔꿈치를 같이 쓰는 게 요령이었어요. 저는 손목은 물론이고, 팔꿈치를 많이 꺾었어요. 팔꿈치를 꺾는다고 표현했는데, 실제로는 비트는 거죠.
그만큼 몸에 무리가 가죠. 제가 커브 때문에 야구를 그만둘 거로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요. 커브 때문에 야구를 그만뒀어요. 물론, 나이도 있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만요. 은퇴할 때는 커브를 못 던지겠더라고요. 팔꿈치를 비틀어서 던졌으니까요. 너무 아팠죠. 지금도 오른손으로는 양치질을 못해요. 그전까지는 생각도 못했는데, 커브가 팔에 무리가 가는 구종이라는 걸 느꼈어요.

또 커브를 던질 때 공과 손바닥과의 간격도 나이에 따라 달라졌어요. 20대 때는 떨어진 상태에서 던졌는데, 나이가 들면서 악력이 조금씩 떨어지는 만큼 공이 손바닥 쪽으로 가게 됐어요. 30대 중후반이 됐을 때는 거의 손바닥에 붙었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던지지 않으면 손에서 공이 빠져 버리거든요. 공과 손바닥 사이에 간격이 있을 때는 구속도 빨랐는데, 손바닥에 붙여 던지니까 구속도 회전력도 떨어졌죠.
어쨌든 저는 변화구는 그립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립은 보조재라고 보죠. 그립보다 팔 스윙이나 각도가 더 중요해요. 제 파워커브 그립을 어느 선수에게 알려준다고 해도, 잘 쓰는 선수도 있지만 대개 잘 안 되더라고요. 당연히 저도 다른 변화구를 잘 던지는 투수의 그립 등을 배워 따라 하려고 한 적도 있어요. 그렇게 해보면 자기 게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잘 안 돼요. 그렇기에 그립보다는 자기에게 맞는 감각, 즉 팔 스윙이나 각도 등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또 요즘은 저희 때와는 달리 경기 위주로 하다가 보니까 투수라면 네다섯 개의 구종을 던지더라고요. 근데 그 변화구가 보면 주 무기와 스트라이크를 잡는 공 등으로 구분이 되어야 하는데, 변화구 제구력도 떨어지고 실질적으론 주 무기도 없는 선수가 많아요.
저는 기본은 속구와 결정구로 삼는 변화구 하나를 확실하게 자기 것으로 만든 후, 추가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변화구는 꾸준히 연마해야 자신 있게 던질 수 있거든요. 어정쩡한 서너 개의 변화구보다 확실한 변화구 하나가 더 좋은 거죠.
저에게 파워커브는 선수 생활을 오랫동안 하게 해 준 원동력인 것 같아요. 이게 없었으면 저는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그만뒀을 것으로 생각해요. 그렇기에 파워커브는 과거의 나를, 그리고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준 고마운 구종이라고 할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