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광풍에 힘입어 올해 우리나라의 초고압 변압기 미국 수출액이 1조 5000억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장벽에도 AI 데이터센터와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대미 수출량이 크게 늘어난 영향이다. 초고압 변압기 수출을 주도하는 국내 주요 기업들도 새해 또 한번의 수주 실적 경신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효성중공업과 HD현대일렉트릭, LS일렉트릭 등 전력기기 3사의 수주 잔고는 지난해 3분기 기준 27조 3512억 원이다. △효성중공업 13조 8537억 원 △HD현대일렉트릭 9조 5667억 원 △LS일렉트릭 3조 9308억 원 등으로 집계된다.
이 중 대부분은 미국에서 수주한 일감으로, 국내외 거점에서 생산된 후 현지로 향한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초고압 변압기의 미국 수출액은 6억 9093만 달러(약 1조원)다.
월평균 6000만 달러 수준의 수출액 추이를 고려하면 지난해 연간 수출 규모는 7억 5000만 달러(약 1조 800억원)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지난 2023년 2억 5797만 달러, 2024년 4억 345만 달러를 크게 뛰어넘은 수치다.
내수 산업에서 한국 대표 수출 품목으로 발돋움
초고압 변압기 등 전력기기 분야는 과거 국내 프로젝트에 주로 투입돼 내수 산업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전력 인프라 확보를 위한 세계 각국의 움직임이 빨라졌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성장형 수출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시장에서는 올해 초고압 변압기 미국 수출액이 1조 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본다. 3사의 생산 능력과 수주 잔고를 고려할 때 해당 수치를 넘기는 것은 무난할 것이라는 평가도 이어진다. 미국 현지 변압기 시장은 연평균 7.7%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24년 17조 8000억 원에서 오는 2034년에는 37조 5000억 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민재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초고압 변압기 수요는 매년 200~300대 수준”이라며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 국내 관련 기업의 실적과 수출량은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일감 증가에 국내 기업들은 현지 생산 역량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테네시주 멤피스 초고압 변압기 공장에 1억 5700만 달러(약 2270억 원)를 투자해 2년 뒤인 오는 2028년까지 생산 능력을 50% 이상 늘릴 계획이다.
멤피스 공장은 미국에서 유일하게 765킬로볼트(kV) 초고압 변압기를 설계·생산 가능한 곳이다. 765kV 초고압 변압기는 생산 난이도가 높은 전력기기로, 기존 345kV나 500kV 제품과 비교해 송전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LS일렉트릭은 지난해 미국 생산 거점인 ‘베스트럽 캠퍼스’를 준공하고 2030년까지 2억 400만 달러(약 2950억 원)를 투자한다. 전력기기와 배전 시스템, 배전반 등을 생산할 예정이다. HD현대일렉트릭도 앨라배마주에 초고압 변압기 2공장을 신설 중이다.
HD현대일렉트릭 관계자는 “현재 신·증설 중인 생산 거점을 빠르게 완성해 생산 능력 확대에 주력할 방침”이라며 “공장 라인 확충과 함께 생산성 향상을 위한 공법 고도화, 숙련 기술 인력 양성, 안정적인 원재료 공급망 확보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시장 '영국'도 정조준
미국에 이어 영국도 전력기기 3사의 ‘타깃’으로 떠올랐다. AI 산업 확대와 신재생에너지 전환 정책 등으로 신규 전력 인프라 수요가 커지고 있어서다. 국내 기업들은 기술력을 앞세워 경쟁국의 일감을 확보하며 현지 점유율도 늘리고 있다.
영국의 지난해 한국산 변압기 등 전력기기 수입액은 2502만 달러(약 360억 원)로 전년(1606만 달러) 대비 55.8%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과 중국 등으로부터의 전력기기 수입 규모는 약 40% 감소했지만, 한국산 제품의 수입량은 늘었다. 영국 내에서 한국산 전력기기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영국 전력청이 지난해 발주한 초고압 변압기 물량 전체를 수주했다. 총 수주 규모는 2200억 원이다. LS일렉트릭은 지난해 10월 영국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과 배전반 공동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본격적인 현지 공략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전력기기 슈퍼 사이클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신규 일감 확보는 물론 이미 수주한 물량을 적기에 공급해 국내 기업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한편 기술력 향상에도 만전을 기하는 한 해를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유호승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