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균 에너지11 기술 대표]
'바다 사막화'를 막는 해달
자연 생태계의 안정성과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개념으로 '핵심종(keystone species)'이라는 용어가 있다.
핵심종(Keystone species)의 완벽한 예시로 해달을 들 수 있다. 다시마 숲 생태계는 전 세계 해안가, 특히 북태평양 지역에서 매우 중요한 해양 서식지이다. 이곳은 거대한 다시마가 숲처럼 우거져 있어 다양한 해양 생물들에게 먹이, 피난처, 번식지를 제공한다. 중요한 어종들의 산란장이기도 하다. 이 다시마 숲 생태계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해달'이다.
해달은 주로 바다 밑바닥에 사는 무척추동물을 먹이로 하는데, 그 중에서도 성게는 해달의 주요 먹이 중 하나다. 해달이 사라지면 성게 개체수는 폭증한다. 해달이라는 강력한 포식자가 사라지면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다시마를 주식으로 삼는 성게들은 다시마를 무차별적으로 뜯어먹기 시작한다.
마치 육지의 메뚜기 떼처럼 성게가 휩쓸고 지나간 바닷 속은 다시마가 사라진 황량한 돌바닥으로 변해버린다. 이를 '성게 사막화(Urchin Barrens)'라고 부른다. 다시마 숲이 사라지면 이 서식지에 의존하던 수많은 생물들이 살 곳과 먹이를 잃고 사라지게 된다. 곧 전체 해양 생태계의 생물 다양성 감소로 이어진게 된다.
해달은 단순히 성게를 잡아먹는 동물이 아니라, 성게 개체수를 조절해 다시마 숲의 구조를 유지하고, 결과적으로 수많은 다른 해양 생물들의 생존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바로 핵심종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해달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동영상
짧은 풀 초지 밑 생물들의 공생
또 하나의 사례로 영국의 저명한 생태학자인 그레이엄 엘름스(Graham Elmes) 박사는 약 30여 년간 점박이푸른부전나비(Large Blue Butterfly, Phengaris arion)의 일종인 부전나비와 뿔개미(Myrmica sabuleti )의 복잡한 공생 관계를 연구했다. 그의 연구는 단순한 종 간의 상호작용을 넘어 초지 생태계의 복잡한 균형과 먹이사슬의 중요성까지 밝혀냈다.
엘름스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뿔개미는 토끼, 양, 소와 같은 초식 동물이 풀을 짧게 뜯어먹어 유지되는 초원을 특히 선호한다. 풀의 길이가 짧은 환경은 뿔개미가 먹이를 찾고, 집을 짓는 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뿔개미가 점박이푸른부전나비의 애벌레를 자신들의 개미집으로 데려와 번데기가 될 때까지 직접 키운다. 이러한 기생 관계는 부전나비 애벌레가 뿔개미에게 친근한 페로몬을 방출하고, 아미노산이 풍부한 분비물을 먹이로 제공함으로써 가능하다. 즉, 부전나비 애벌레는 뿔개미에게 일종의 '대가'를 지불하며 보호를 받는 셈이다. 그러나 초지가 무성하게 자라 뿔개미가 선호하는 환경이 사라지면 뿔개미의 개체수가 감소하고, 자연스럽게 뿔개미에 의존하는 점박이푸른부전나비의 생존도 위협받는다. 이 상호작용 속에서 뿔개미는 점박이푸른부전나비의 생존에 필수적인 핵심종(Keystone species) 역할을 한다.
핵심종은 생태계 내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개체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많은 종의 생존과 생태계의 구조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종을 의미한다. 뿔개미가 없으면 점박이푸른부전나비는 애벌레 시기를 안전하게 보낼 수 없어 번식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뿔개미의 분포에 영향을 미치는 초지의 변화는 결국 토끼나 양과 같은 초식성 동물이 만든다. 즉, 초식 동물들이 풀을 지속적으로 뜯어먹어 뿔개미가 선호하는 짧은 풀 초지를 유지시키고, 이로 인해 뿔개미가 번성하며 결과적으로 점박이푸른부전나비도 생존할 수 있는 복잡한 생태계의 연결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핵심종'의 다양한 사례
핵심종이란 용어는 생태학자 로버트 페인(Robert Paine)에 의해 처음 제시된 이후 생태계 구조와 기능에 대한 심화된 이해에 크게 기여했다. 핵심종은 아치가 무너지지 않게 결정적 역할을 하는 꼭대기의 중심돌(keystone·이맛돌)에서 따왔다. 핵심종은 주로 핵심 포식자에 해당하는 종에 적용됐고, 나중에는 꼭 포식자가 아니더라도 개체 수에 관계없이 환경에 불균형적 영향을 주는 모든 종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변화했다.
핵심종의 영향력은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확인이 된다. 예를 들어 로버트 페인(Robert Paine)이 워싱턴 주 해안에서 실시한 오커 불가사리(Pisaster ochraceus) 제거 실험이 있다. 포식자인 오커 불가사리가 사라지자 홍합이 경쟁적으로 우세해지면서 해당 지역의 종 다양성이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이 관찰됐다. 홍합의 주요 포식자인 오커 불가사리가 사라지자 급증한 홍합은 해조류와 따개비 등 다른 생물들이 살 공간을 빼앗으며 바위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불과 1년 만에 이 구역에 서식하는 종의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페인은 오커 불가사리를 핵심종으로 규정을 했다.
또한, 1995년에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다시 서식하게 된 늑대의 사례도 핵심종을 설명하는데 유효하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늑대가 사라진 후 70년 동안 이 곳의 광범위한 동식물 종들이 함께 사라졌지만 늑대가 되돌아온 뒤 버드나무와 맹금류, 수달 등 수많은 종들이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다. 늑대가 사라져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엘크 사슴 개체 수가 조절되면서 버드나무 군락이 회복되고 비버가 돌아오는 등 생태계 전반에 긍정적인 연쇄 효과가 나타났다. 여기에 비버는 댐을 건설하여 습지를 조성함으로써 다른 수많은 생물에게 서식지를 제공하는 '생태계 공학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핵심종이 포식, 서식지 변경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생태계 구조와 역학을 형성함을 보여준다.
늑대 14마리가 만든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기적을 담은 동영상
핵심종과 비슷하지만 다른 '깃대종'
핵심종은 생물량이 많은 '우점종(dominant species)'이나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만 생태학적 기능이 반드시 핵심적이지는 않은 '깃대종(flagship species)'과는 구별된다. 깃대종 (Flagship Species)은 특정 지역의 생태적, 지리적,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야생 동·식물로서, 사람들에게 보호의 필요성을 알리고 생물다양성 보전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선정되는 종이다. 1993년 UNEP(유엔환경계획)에서 생물다양성 보전 방안으로 처음 제시된 개념이다. 깃대종은 해당 지역의 자연 환경을 대표하는 '간판'과 같은 역할을 한다. 깃대종이 선정이 되면 우산 효과 (Umbrella Effect)과 발휘된다. 깃대종을 보호하기 위한 서식지 보전 노력이 이루어지고, 그 서식지에 함께 살고 있는 다른 많은 생물종들도 간접적으로 보호되는 효과를 가진다. 한국은 국립공원에 따라 설악산 산양, 지리산 반달가슴곰, 덕유산 금강모치 등의 각각 특성에 맞는 깃대종을 선정하여 보전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에 비해 핵심종 (Keystone Species)은 생태계 내에서 상대적으로 개체수가 적거나 생체량이 작더라도, 해당 생태계의 구조를 유지하고 다른 많은 종의 생존 및 생물 다양성 유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종을 말한다. 핵심종이 사라지면 연쇄적인 멸종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핵심종은 최상위 포식자일 수도 있고, 초식동물, 공생 관계의 파트너, 심지어 식물일 수도 있다. 어떤 특정 분류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핵심종의 진정한 가치는 그들이 수행하는 기능적 역할에 있으며, 이들의 부재는 생태계 전체에 심각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산업생태계에서 필요한 '핵심 산업조직'
이러한 핵심종 개념을 산업 및 혁신 생태계에 적용해보자. 지역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기업이나 조직, 즉 '핵심 산업 조직'을 식별하고 이들의 기능과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자연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산업 생태계 역시 다양한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시스템이며, 특정 주체의 역할이 전체 시스템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산업 정책 입안자들은 단순히 규모가 크거나 성장률이 높은 기업뿐만 아니라, 생태계 내에서 필수적인 연결고리, 촉매제, 또는 자원 제공자 역할을 하는 '핵심 산업 조직'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들을 육성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핵심 산업 조직은 산업 생태계 내 기능적 다양성, 예를 들어 다양한 유형의 기업, 혁신 경로, 지원 서비스 등의 유지를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특정 산업이나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발생하는 지역 산업 구조의 경직성, 즉 '지역산업구조 고착화(lock-in)현상'을 방지하고 '연관다양성 확대'를 통해 생태계의 회복탄력성과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핵심 산업 조직은 새로운 행위자의 진입을 촉진하고 다양한 연결을 만들어내어 기능적 다양성을 증진시킬 수 있다.

핵심 산업 조직의 다양한 역할
지역 산업 핵심종 또는 핵심 산업 조직은 지역 산업 생태계의 활력을 유지하고 증진하는 데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로 협력 촉진 및 지식 이전 매개하는 것이다. 핵심 조직은 종종 네트워크 허브이자 중개자로서 기능하며, 대학, 연구기관, 중소기업 등 다양한 행위자 간의 협력을 유도하고 촉진한다. 이 연결은 지식과 기술이 원활하게 이전되고 확산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며, 이는 혁신 생태계의 근간을 이룬다.
둘째로는 중소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초기 단계 스타트업의 기술 역량을 강화하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중소기업은 자체적으로 R&D 자원, 전문 지식, 자금 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핵심 조직은 이러한 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제공함으로써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과 혁신 역량 강화를 지원할 수 있다.
셋째로는 지역 혁신 및 경제 활성화를 견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역 기반의 분산형 네트워크 생산체계와 혁신 생태계 강화는 지역 경제 성장에 필수적이며, 핵심 산업 조직은 이러한 시스템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동인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종종 지역 경제 전략의 도구로서 기능하며, 지역 단위에서 중소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전반적인 지역 경제 활성화 및 국가 혁신 생태계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넷째로는 기술 협력이나 지원 및 공생 관계 형성을 할 수 있다. 창업보육센터와 같은 핵심 조직은 새로운 사업의 창출과 성장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들은 필수적인 인프라, 멘토십, 네트워크 접근을 제공함으로써 신생 기업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기능은 '신성장동력산업 창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다섯째로는 매개산업으로서의 잠재적 역할을 할 수 있다. 특정 핵심 조직, 특히 산업 간 협력이나 기술 이전을 촉진하는 조직은 이러한 매개 역할을 수행하여 지역 산업 네트워크의 전반적인 연결성과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학-산업 협력 센터 내 기술이전 전담부서는 대학의 첨단 소재 연구(국가 전략 분야)와 지역 제조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핵심 산업 조직이 부실화 되면 학계, 연구기관, 중소기업 간에 구축되었던 협력하는 기존 네트워크가 소실되거나, 공공 부문 창업 인프라 약화로 신규 사업을 지원하는 공공 부문의 역량이 감소하기도 한다.
대기업이 핵심 역할 하는 것 아냐
지역 산업 생태계의 활성화를 위해 이제 '핵심 산업 조직'을 체계적으로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미 한국에는 지역별 테크노파크, 창조혁신센터, 창업보육센터, 지역별 경제진흥원 및 공공 연구기관 등등 다양한 형태의 핵심 산업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직들이 존재를 한다. 이 기관들은 그러나 '깃대종'이 욀 대기업을 원한다. 즉 지역에서 대표적인 대기업이 있기를 원하고 그 기업을 중심으로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들 기업들은 오히려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한계를 많이 느낀다. 지역 산업 생태계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서 오히려 역할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지역을 떠나기를 원하고 조직을 서울로 보내려고도 한다. 지역에서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의 원인은, 바로 핵심종 또는 핵심 산업 조직의 설정과 역할 부재에 있다. 공공 조직이 지역 산업 생태계 내에서 핵심종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관이 없기 때문에 지역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루면 안된다.
지역 공공기관이전, 핵심종 개념으로 접근해야
공공기관의 이전이 핵심종 부재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보지만 제한적이다. 정책적으로 깃대종을 만들어낼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지역 산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산업 생태계 내의 핵심종을 길러낼 수는 없다. 핵심종은 지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기능과 영향력으로 만들어진다. 이 핵심종 또는 핵심 산업 조직이 지역내의 산업 생태계 내에서 상호 공진화를 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정책적인 지원을 한 지역균형발전의 프레임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핵심종을 길러내야 하는 역할을 재정의하는 과정이 이번 이재명 정부에서는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지역 소멸을 막을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 낼 수 있다.
※ 필자인 하영균 에너지 11 기술대표는 어릴적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독일 녹색당 강령집인 생태학이라는 책을 보고 서울대 곤충학과로 진학했다. 생태적 사고가 모든 자연과 사회현상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지역과 기업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신발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했고 글로벌 경험을 통해 산업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살폈다. 지금은 어릴적 꿈(물로 가는 자동차)이었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국내 최초 나트륨 이온 전지 회사 '에너지11'을 창업해 기술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