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최형우에게 물었다

KIA 최고참 최형우는 올 시즌 팀에서 가장 많은 114개의 안타를 기록하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

100안타. 그렇게 거창한 기록은 아니다.

올 시즌만 해도 144개의 안타를 적립한 롯데 레이예스를 시작으로 KT의 ‘괴물’ 안현민(102개)까지 22명의 선수가 이미 100안타를 넘겼다.

안타를 추가할 수 있는 경기도 많이 남아있다.

KIA에서는 어떤 선수가 22인에 포함돼 있을까?

올 시즌 가장 꾸준하고 강렬한 활약을 생각하면, 그렇다. 최형우다.

101경기에 나온 최형우는 114개의 안타를 기록하고 있다.

425타수 114안타, 타율 0.315를 찍고 있는 최형우는 17개의 공은 아예 담장 밖으로 보냈고, 26개의 2루타와 1개의 3루타도 만들었다. 올해도 최형우는 최형우다.

그리고 또 한 명의 KIA 타자가 100안타를 채워놨다. 박찬호가 그 주인공이다.

박찬호는 지난 8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NC와의 시즌 9차전에서 6회초 선두타자로 나와 우전안타를 기록했다.

시즌 100번째 안타였다. 그리고 이 안타로 박찬호는 7년 연속 100안타를 기록했다.

다시 말하지만, 시즌 100안타는 그렇게 어려운 기록은 아니다.

지난 12일 삼성과의 원정경기를 통해 KBO리그 첫 18시즌 연속 100경기 출장 기록을 만든 최형우, 2021시즌 망막에 이상이 없었더라면 18시즌 연속 100안타라는 놀라운 기록도 그의 몫이었을 것이다.

최형우는 2021시즌을 87안타로 마무리하면서 13시즌 이어온 100안타 기록을 마감했었다.

어찌 됐든 최형우에게 100안타는 ‘큰 부상 없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보통의 기록’이다.

최형우는 “언론에서는 100안타의 상징정을 얼마나 대단하게 보는지는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는 어렵지 않은 기록이다. 주전으로 있으면, 다치치 않고 자리에만 있으면 잘하지 못해도 되는 기록이다”라고 말했다.

100안타에 ‘연속’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박찬호가 기록한 7시즌 연속 100안타는 통산 47번째 기록이었다.

당장 떠올려 봐도 방망이 좀 치던 선수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타격 꼴찌’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박찬호가 KBO리그 47번째 선수가 된 것이다.

KIA 박찬호가 지난 8일 NC전에서 7시즌 연속 100안타를 기록했다. KBO리그 역대 47번째 기록이다. /김여울 기자

박찬호에게 100안타는 무엇일까?

박찬호는 “사실 100안타가 대단한 기록은 아니다. 진짜 아무것도 아닌 기록이다”라면서도 “내 상징”이라고 이야기했다.

별것 아닌 기록일 수 있지만 예전의 박찬호에게는 꿈 같은 기록이었고, 그냥 꿈이 아닌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박찬호는 “아무것도 아닌 기록이라서 더 나에게 상징적인 기록이 될 것 같다. 특출난 게 없지만 꾸준하게 자리를 지키면서 얻은 그런 기록이다”라며 “그냥 꿈 같은 것이었다. 솔직히 수비, 주루는 좋다고 하지만 타격적으로는 진짜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이 하나도 없었다. 특출나지 않은 재능으로 어찌저찌 잘 됐다”라고 웃었다.

타격에는 소질이 없어 보이던 선수는 올 시즌 ‘꾸준함’의 대명사 최형우에 이어 팀에서 두 번째 100안타를 기록한 선수가 됐다.

박찬호는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수비가 1번이다. 그래야지 한 타석이라도 더 들어가는 것이다. 특히 센터라인 선수라면 더 수비가 중요하다. 사실 수비를 잘해야지 센터라인 선수가 되는 것도 맞다. 내가 2할 3푼치고 그랬을 때 당시 감독님들이 나를 쓰고 싶어서 쓰셨겠는가. 진짜 쓸 사람 없어서 썼지. 그나마 ‘그래 쟤가 수비를 제일 잘 하니까’ 그거 하나다. 그래서 진짜 울며 겨자 먹기로 게임 나가고 한 것이다. 안 다치고 계속 버텼던 것도 있다.”

타자하면 일단 타격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명타자를 제외하고는 공수가 바뀌면 수비를 해야 한다. 수비도 큰 전력이다.

수비로 어떻게든 기회를 붙잡기 위해 노력했던 박찬호는 기회와 기회가 쌓이면서 타격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 순간을 맞았다. 2021시즌 몇 경기를 남겨두고 박찬호는 깨달음을 얻었다.

박찬호는 “2021년도 그 시즌 막바지에 롯데랑 할 때 프랑크 선수의 체인지업으로 센터 앞에 안타 쳤을 때 그때 힘이 빠진다는 것을 느꼈다. 힘을 빼고 부드럽게 친다라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며 “그때 처음 느끼고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 방향성을 가져가고 존 설정이라든지 좀 번뜩인 게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22년도에 눈에 띄게 타격지표가 올랐다”라고 설명했다.

2016년 8월 2일 한화전에서 프로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한 뒤 덕아웃에서 눈물을 보였던 박찬호. /김여울 기자

수비로 버티면서 결국 타격에서도 깨달음을 얻은 그는 ‘과감함’을 또 다른 키워드로 이야기한다.

7년 연속 100안타는 부상 없이 자리를 지켰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

박찬호는 “부상이 두려워서 플레이를 하면 더 다친다. 올해 초에 무릎 다쳤을 때 그때가 그랬다. 과감하지 못하게 했을 때가 다치는데 사실 그때 도루할 때 파울인 줄 알고 멈추려고 하는데 공이 날아왔다. 그래서 급하게 슬라이딩하다가 다쳤다. 안 다치려는 그런 마음가짐이 없어야지 안 다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박찬호도 대부분의 야구 선수와 마찬가지로 이곳저곳 성한 곳이 없다.

하지만 “부러지지 않는 이상 뛴다”는 최형우처럼 박찬호도 과감함으로 그라운드를 지키고 있다.

지독한 부상이 KIA를 흔들고 있는 시즌인 만큼 더 돋보이는 박찬호의 부지런한 활약이다.

가장 많은 시간 그라운드를 지키고 있는 ‘내야의 사령관’ 박찬호에게도 더 이상 ‘꾸준함’은 어색하지 않은 단어가 됐다.

시즌 초반 잠깐 무릎 부상으로 쉬어간 적은 있지만, 최형우 곁을 지키면서 가장 꾸준하게 경기를 뛰고 있는 사실상 유일한 선수가 박찬호다.

꾸준함의 대명사, KBO 레전드 최형우에게도 이제는 인정받는 후배가 되지 않았을까?

“형우 선배님은 방망이 좋은 선수를 좋아한다. 직접 여쭤봐 주세요. 저도 궁금해요”라면서 웃음을 터트린 박찬호.

내심 선배의 마음을 궁금해하던 박찬호를 위해 직접 최형우에게 물어봤다.

최형우의 대답은 “한 5단계 상승했다고 해줘요”였다.

삼성 시절 최형우가 적으로 기억하는 박찬호는 존재감 없는 선수였다.

“처음에 다른 팀에서 봤을 때보다는 진짜 5단계는 성장했다. 그때는 수비도 지금처럼 ‘저기로 가면 안 돼. 쟤 미친 선수야’ 이렇게 느끼지도 않았다. 아예 존재가 없었다. KIA 와서 봤을 때도 방망이는 당연히 못 쳤다. 그런데 하다 보니까 엄청 성장했다. 올해뿐만 아니라 작년, 재작년부터 많이 업그레이됐다는 걸 느꼈다. 달라졌다. 잘하고 있다.”

냉정한 최형우도 인정하게 만든 달라진 박찬호의 존재감. 대선배는 그의 성장이 ‘진행형’이라고 말한다.

최형우는 “수비는 이제 더 이상 나무랄 게 없다”며 “방망이는 하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도 이렇게 왔다. ‘2할 5푼도 못 넘기던 애가 어떻게 3할을 쳐’라고 했었는데 여기까지 왔다. 3할 2푼도 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애버러지가 맞춰지는 것이다. 한 단계씩 뛰어넘는 게 힘든 것이다. 못 뛰어넘으면 맨날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선수다. 그런 선수 기록 찾아보면 많다”고 박찬호의 성장을 이야기했다.

특출난 것 없던 선수였기에 그가 넘어 온 한 단계 한 단계는 더 특별하다.

일단 버티고 본, 선수는 어떻게든 그라운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 박찬호. 특별할 것 없는 오늘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품고 걸어가 볼 수 있는 길이 생겼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