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희 번역가]
세계적 문학상 휩쓴 위대한 작가
알바니아 46년 독재 폭압 비극적으로 다뤄
"그에게 문학은 탈출구 너머 생존의 버팀목"
특정 시대 다루면서 모든 시대 아우르는 서사
비극에 유머를 실어 '유머러스한 비극' 창출
번역가로 만난 이스마엘 카다레
이틀 전, 알바니아 소설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을 듣고 황망했고, 이런 물음이 떠올랐다. 저자와 번역자로 글을 통해 만나는 관계란 얼마나 가까운, 혹은 얼마나 먼 사이일까.
불과 얼마 전까지 그의 글을 우리말로 옮겼는데, 게다가 그동안은 소설 작품으로만 만나다가 그가 사적인 일상을 얘기하고 속내를 털어놓는 에세이를 최근에 번역하면서,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느낌이지만, 전보다 그와 더 가까워진 듯했는데, 그가 이제 더는 이 세상에 없고, 더는 글을 쓰지 못할 거라니, 가까운 지인이 떠난 것처럼 마음이 허전하다.
그의 작품 가운데 소설 두 편과 에세이 한 편을 번역했을 뿐이지만, 카다레와의 인연이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그가 2019년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우리나라를 찾았을 때, 연세대학교에서 마련한 박경리 문학상 수상작가 초청간담회 자리에서 카다레의 작품세계에 대한 발표를 한 일 때문이다. 그때 갑작스러운 요청을 받고 발표 자료를 준비하면서 한 친구의 도움을 받은 것도 특별한 기억이다.
그 친구는 프랑스의 소설가 에릭 파이다. 에릭 파이는 오래전부터 프랑스에 소개되는 카다레의 작품마다 서문을 써온 카다레 전문가다. 에릭은 자신이 카다레의 작품에 붙인 모든 서문을 서둘러 파일로 보내주면서, 파일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오래된 자료는 일부러 스캔까지 해서 보내주었다. 이 친구 덕에 이스마일 카다레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는데, 최근에 번역한《카페 로스탕에서 아침을》에서 저자가 에릭 파이와 만난 일화를 얘기하고 있어, 왠지 저자가 친구의 친구처럼 훌쩍 가까워진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문학만 믿으면, 문학이 하늘이 되어..."
이스마일 카다레는 1963년 27세 때 첫 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을 출간한 뒤로 지금까지 소설, 극작품, 에세이, 시를 포함해 오십여 편의 작품을 펴냈다. 그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알바니아 작가이고, 2005년에는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영국의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2009년에는 스페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스투리아스 왕자상>을, 2019년에는 우리나라의 <박경리 문학상>을, 2020년에는 미국의 <노이슈타트 국제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노벨문학상에도 거의 매년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현대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우리나라에는 그의 소설 13편과 에세이 한 편이 번역되었다.
작가가 여덟 살 때부터 시작된 독재 체제가 46년간이나 이어졌으니, 그의 삶과 작품은 그런 배경 위에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고, 지독히 폐쇄된 폭압 사회에서 그에게 문학은 그저 하나의 탈출구가 아니라, 그가 온 삶을 기댄 생존의 버팀목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문학만 믿으면, 그저 문학만 믿으면, 문학이 하늘이 되어 지켜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전체주의가 그의 작품의 주된 테마를 이루긴 하지만, 아주 어려서부터 고전 비극과 신화에 매료되어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아이스킬로스, 고골 같은 거장들의 책을 줄곧 탐독해온 작가의 독서 이력이 그의 고유한 소설 세계를 구축하는 토대가 된다. 현대의 사건들을 다룰 때도 작가는 고대 신화나 비극을 즐겨 원용하고, 알바니아의 전설과 민담도 끌어들인다. 때로는 주된 플롯을 이루는 현대의 시간, 원용되는 신화나 비극의 시간, 어디까지 거슬러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민담의 시간, 꿈의 시간 등 여러 시간이 그의 소설 속에서 뒤섞인다. 작가는 그렇게 온갖 시간을 불러내어 해체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현대의 현실과 고대의 신화를 통해 비극의 본질을 통찰하고 온 시대를 관통하는 원리를 찾는 듯하다. 특정한 한 시대의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서사를 만들어내려는 듯 보인다.

비극과 희극이 태연하게 조우하는 카다레의 세계
카다레의 서사에서 도드라지는 또 다른 점은 비장하기만 한 비극적 서사가 아니라 기괴하거나 유머러스하기도 하다는 점이다. 수 세기에 걸쳐 여러 국가의 지배를 경험하고 오래도록 전제정치의 폭압 아래 놓였던 알바니아의 비극적인 상황을 그릴 때도 작가는 종종 웃음을 섞는다. 비극에서 희극성을 들추어내고, 비극에 유머를 실어 “유머러스한 비극”, “해학적인 비극”이라는 독특한 형태를 창출해내는 것이 카다레 특유의 소설 비법 같다. 말하자면 카다레의 작품은 《맥베스》처럼 무겁고 비장하면서 동시에 《돈키호테》처럼 가볍고 유머러스하고 몽상적인 특징을 보이는 것이다. 돈키호테스러운 맥베스랄까, 희극과 비극이 태연하게 조우하는 그런 세계가 카다레의 세계라 하겠다.
그래서 카다레에 대한 평가를 보면 모순된 표현이 많다. ‘고전적이면서 포스트모던하다’거나, ‘가벼우면서 묵직하고’, ‘우스꽝스러운 비극’ 같다고도 한다. 카다레가 비교되는 작가들을 모아봐도 도저히 함께 묶을 수 없을 만큼 다채롭다. 《위대한 겨울》은 알바니아의 《전쟁과 평화》라는 평가를 받고, 《달빛》은 밀란 쿤데라의 《농담》과 비교되며, 《잘못된 만찬》은 가브리엘 마르케스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라고도 한다. 또《죽은 군대의 장군》이나 《H 파일》에서는 고골이 느껴진다고도 하고, 《콘서트》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비교되기도 하며, 《꿈의 궁전》은 카프카와 헉슬리를 떠올리거나, 전체주의에 대한 풍자라는 주제 면에서 조지 오웰과 비교되기도 한다. 게다가 카다레는 보르헤스와 카프카의 재능을 한 몸에 지녔다는 극찬을 받기까지 한다. 톨스토이, 고골, 마르케스, 도스토옙스키, 카프카, 조지 오웰, 헉슬리, 쿤데라, 보르헤스, 이 모든 작가를 아우르는 세계라니! 저마다 별개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이 모든 거장과 비교된다는 건 역설적으로 이 모든 작가와 다르다는 의미이고, 그만큼 카다레의 작품세계가 다면적이고 다층적이어서 명확히 규정하기가 어렵다는 얘기겠다.
비교 불가능한, 무엇과도 닮지 않은 카다레
《돌의 연대기》에서 작가는 자신의 고향이자 작품의 배경인 지로카스트라를 “어떤 비교도 불가능한, 무엇과도 닮지 않은” 곳이라고 쓰는데, 카다레라는 세계가 바로 그렇지 않을까 싶다. 가장 최근의 어느 인터뷰에서 카다레는 “여전히 메모를 하고, 글을 쓰고 있고,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그가 머릿속에 어떤 작품을 품고 있었을지 무척 궁금하지만 이제 그 작품을 만나볼 기회는 없다. 아쉬움이 크다.
백선희 번역가는 프랑스 그르노블의 스탕달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으로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로맹 가리, 밀란 쿤데라, 피에르 바야르, 로제 그르니에, 리디 살베르, 실뱅 테송, 파스칼 키냐르, 이스마일 카다레 등과 같은 중요 작가들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웃음과 망각의 책》, 《하늘의 뿌리》, 《흰 개》, 《마법사들》, 《노르망디의 연》, 《예상표절》, 《햄릿을 수사한다》, 《울지 않기》, 《저녁까지 걷기》,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잘못된 만찬》, 《사랑 바다》, 《폴 발레리의 문장들》, 《책의 맛》, 《어느 인생》,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 《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 《뒤라스의 그곳들》, 《사랑을 재발명하라》,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카페 로스탕에서 아침을》등 다수의 작품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