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무드, 직관적인 색 배치, 경쾌하고 대담한 패턴은 랭앤루의 시그니처다.
박민선 대표는 여기에 기능성을 곁들인 실용예술로서의 패션으로 개성과 해방을 동시에 선사한다.

패션은 예술일까, 산업일까?
이 오래된 질문 앞에서 랭앤루(LANG&LU)는 ‘예술이자 산업’이라는 명확한 대답을 내놓는다.
랭앤루는 감성적 표현이 강조된 예술성, 일상에 적용 가능한 실용성을 균형 있게 결합해온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다.
컬러풀하고 독창적인 패턴, 감정을 담은 디자인 언어로 패션을 예술의 한 형태로 해석하면서도, 시장성과 기능성을 간과하지 않는 비즈니스 전략으로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2010년 론칭 이후 예술적 감성을 담은 개성 넘치는 랩원피스와 에코 퍼로 이름을 알린 랭앤루는 지난 2024년 하고하우스에 인수되어 실용성과 시장성 간 균형을 치밀하게 계산하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현재는 20~30대를 겨냥한 토털 패션 브랜드로 리브랜딩해 2024년에는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국내외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정승우 이사장이 만난 이달의 아트 피플은 랭앤루의 박민선 공동대표이다.
변혜정 대표와 함께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박민선 대표는 이화여자대학교 회화판화과를 졸업한 미술 전공자이다.
그는 예술을 향한 애정과 섬세한 감정 표현력을 바탕으로 옷을 캔버스 삼아 랭앤루만의 독창적인 색채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러나 그가 추구한 것은 단지 예술적인 ‘아름다움’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 감성을 일상의 옷에 담아내고, 고객들이 실제로 입고 즐길 수 있도록 실용적 디테일과 시장 요구를 반영하는 데 집중하며 랭앤루를 ‘감성 브랜드’에서 ‘성장하는 브랜드’로 키워냈다.
지난 6월 2일, 정승우 이사장이 박민선 랭앤루 공동대표를 만났다.
‘옷은 사람의 태도와 에너지를 보여주는 수단’이라는 생각으로 옷 하나하나에 자신감, 즐거움, 당당함을 담아내는 박민선 대표. 랭앤루를 입는 것이 단순히 예쁜 옷을 입는 차원을 넘어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경험이길 바란다는 덕담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패션 디자이너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 시절 서양화를 전공하며 색과 형태, 감정 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나만의 감각’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늘 고민했다. 그러다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도구인 ‘옷’이라는 매체에 운명처럼 끌렸다. 패션디자인과를 복수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며 패션 디자이너로 입문했다.
10여 년간 패션 브랜드의 공동대표로 재직 중이다. 브랜드를 설립하게 된 동기가 있다면.
한국 시장에서는 찾기 힘든 화려한 프린트, 당당한 컬러감, 여성스러우면서도 유쾌한 느낌의 옷들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대학원에서 만난 친구 변혜정 디자이너와 의기투합해 브랜드를 론칭했다.
둘이 함께 떠난 홍콩 여행에서 서로를 장난 삼아 '랭’과 ‘루’로 부르곤 했다. 우리처럼 엉뚱하면서도 열정적인 여성 캐릭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랭앤루’라는 이름을 붙였다.
처음 브랜드를 시작할 때는 돈도 없고, 공장도 없고, 인맥도 없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다.(웃음)
서울신용보증재단에서 대출을 받고, 청년창업센터에서 사무실을 무료로 빌려 쓰면서 하나하나 부딪혀나갔다.
직접 디자인을 하고, 시장에 나가 원단을 고르고, 옷을 만들고, SNS에서 홍보하고, 길거리 행사에 나가 판매도 했다. 온라인 주문이 들어오면 사무실과 가까운 곳은 배송도 직접 했다. 진짜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그렇게 하나씩 해결하다 보니 사람들이 하나둘 우리 옷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가 처음 만들었던 프린트 랩원피스와 에코 퍼 아우터는 “한국에 이런 스타일이 있었나?” 하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공감해주는 모습을 보며 디자이너의 길에 강한 확신이 생겼던 것 같다.
공동 창업인 경우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갈라서는 사람도 많다. 지금껏 함께 사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비결은 뭔가.
변혜정 대표와 나는 너무 다르다. 나는 조금 즉흥적이고, 감각적으로 판단하는 스타일인 반면 변 대표는 굉장히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잘 맞는다. 싸운 적도 거의 없고 여전히 함께 여행도 다닌다. 대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각자 더 잘하는 점을 독려해주고 기를 세워주려 노력한다. 혼자서는 절대 여기까지 올 수 없었기에 늘 고마운 존재다.
하고하우스에 인수된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디자인만 해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인데, 이전에는 회계와 세무 등 모든 업무를 직접 해결해야 했다. 이제는 경영에 관련한 부분을 하고하우스에서 도맡아주셔서 마음 편히 브랜드이미지에 신경 쓰며 디자인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미술 전공이 패션 디자인에도 도움이 되었나.
옷을 디자인할 때 ‘컬러’와 ‘구성’을 제일 먼저 생각하는데, 이는 회화를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감각이다. 색을 어떻게 배치할지, 패턴이 주는 리듬감이 어떤지, 공간감은 어떻게 표현할지 등은 패션이라기보다는 미술 작업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드레스 한 벌을 디자인하더라도 마치 한폭의 그림을 그린다는 마음으로 접근한다. 몸이라는 캔버스 위에 색과 형태를 배치하는 작업이다.
그런 영향인지 랭앤루 옷은 컬러 톤이 대담하면서도 묘하게 균형잡혀 있고, 프린트 배치가 회화적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곤 한다.
추상적인 감정이나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도 서양화를 전공하며 배웠다.
옷을 만들 때 단순히 예쁜 옷이 아니라, 느낌이 있는 옷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회화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랭앤루 감성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내 뿌리가 ‘서양화’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창업 초반 홍콩 패션위크에서 주목을 받았는데.
2011년, 브랜드를 론칭하고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막 옷을 만들기 시작했고, 공장 시스템도 제대로 모르던 때에 운 좋게 홍콩 패션위크에 참가할 기회가 생겼다.
사실 그때는 영어도 잘 안 되고, 브랜드도 이제 막 만든 참이라 ‘우리가 이런 데 나가도 되나?’ 하는 마음이 컸다. 고민 끝에 참석한 행사였지만,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길이 우리 부스 앞에서 딱 멈추며 “와, 이 컬러 뭐야?”, “프린트 너무 재밌다!” 하는 반응들이 너무 신기했다.
감사하게도 현장에서 미국 부티크 ‘투씨(Tootsie)’ 바이어와 연결되어 입점까지 이어졌다. 그때 처음으로 ‘랭앤루의 감각이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공식 런웨이에 선 것도 아니고, 대단한 마케팅도 없었다. 그저 우리가 믿고 만든 디자인 자체로만 관심을 받았던 첫 경험이기에 아직도 제일 벅차고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 다시 돌아봐도, 랭앤루가 ‘브랜드’로서 자신감을 갖게 된 시작점은 바로 그 홍콩 패션위크였다. 그때 그 두근거림은 아직도 가슴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패션 디자인은 일반 디자인과 무엇이 다른가.
우선 패션은 ‘사람’이 입는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 평면으로 끝나는 디자인과 달리 옷은 입는 사람의 체형, 표정, 기분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그게 패션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이자, 가장 큰 차이다.
패션은 결국 ‘감정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옷을 만들면서 늘 사람들의 기분, 에너지, 자신감까지 함께 디자인한다고 느낀다. 시각디자인이 보여주기 위한 디자인이라면, 패션 디자인은 살아가는 감정까지 디자인하는 작업이다.

실용예술로서의 패션
예술에 패션을 적용한 실용예술을 보편화하면 일종의 ‘예술 힐링’도 기대할 수 있지 않나.
옷이야말로 가장 실용적인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하면 미술관에 걸려 있는 작품, 고상한 회화나 조각 같은 걸 떠올린다.
하지만 내가 매일 아침 입는 옷도 예술일 수 있다. 옷은 나의 감정, 기분, 태도는 물론, 오늘의 내가 누구인지를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옷 하나만 바꿔도 기분이 달라지듯이 패션은 단순히 외적인 꾸밈을 넘어서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우울한 날일수록 화사한 옷을 입는 것, 무기력할 때 일부러 포인트 액세서리를 매치하는 것 등은 가장 일상적인 방식으로 예술이 사람을 위로하는 순간이다.
멀리 있는 예술이 아니라 내 일상 속에서 매일 입고, 만지고, 느끼는 옷에 예술이 스며드는 것.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자 랭앤루가 존재하는 이유다.
전통적인 표현 방식에서 벗어난 예술 창작물은 보통 공산품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은데.
예술의 경계가 사라진 요즘에는 오히려 ‘쓸모’와 ‘감성’ 을 동시에 담은 창작물이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많은 사람이 실용적인 것을 만들면 그걸 ‘공산품’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쓸모 있는 아름다움’이야말로 진짜 예술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랭앤루의 옷은 분명히 판매되는 제품이고 누군가의 생활 속에 존재하지만, 그 옷 안에는 정서, 색채, 메시지, 에너지가 다 들어 있다. 그것을 단순히 ‘공산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술이 꼭 불편하고, 낯설고, 어려워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과 더 가까운 곳에서 감정을 나누고, 위로하고, 말을 걸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예술이다.
디자이너로서 누군가가 내 작품을 입는 순간 그 사람의 하루가 달라진다면 그건 이미 예술로서 역할을 다한 거라고 생각한다.
예술의 본질은 감동이고, 연결이다. 그것이 전시장에 있든 누군가의 옷장 안에 있든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요즘 같은 시대에는 ‘감동이 일어나는 일상’이 예술의 가장 진보된 형태라고 믿는다.
흔히 디자인을 중시한 물건이나 옷은 실용적이지 않고 불편하다는 편견도 있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결국 ‘사용자를 위한 설계’이다. 그것이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감각적이지만 입거나 쓰기에 불편하다면 디자인이 아니라 ‘꾸밈’에 가깝다.
오히려 진짜 멋진 디자인일수록 기능과 감성을 동시에 충족한다.
디자인은 단순히 시선을 끄는 장식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더 즐겁고, 더 편하고, 더 나답게 만들어주는 일이다. 그게 빠져 있다면 아무리 예뻐도 나는 그것을 디자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보는 순간 설레고, 입는 순간 편안한 옷’.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옷을 만들기 위해 늘 고민한다. 아름다움이 실용성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디자인으로 증명하고 싶다.
‘랭앤루’ 하면 ‘유니크한 패턴’이 떠오른다. 패턴 디자인의 과정이 궁금하다.
나에게 패턴은 단순히 예쁜 그림이 아니다. 패턴은 감정이고, 리듬이고, 기억이다.
랭앤루의 패턴 디자인은 보통 한 가지 감정이나 상상 속 캐릭터를 떠올리는 데서 출발한다. 그게 ‘봄날의 꽃시장’, ‘이국적인 여행지’, ‘밤하늘의 반짝임’일 수도 있고 때론 내가 실제 겪은 일이나 감정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그다음엔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린다. 우리는 여전히 손맛을 중요하게 여긴다. 종이에 그려낸 점 하나, 선 하나가 의외로 큰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때로는 태블릿으로 감각적인 드로잉을 연출하는데, 규칙적이지 않지만 유기적으로 흐르는 듯한 무드를 선호한다.
디자인이 예쁘다고 해도 실제로 입었을 때 어색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패턴을 실제 원피스나 아우터, 블라우스 실루엣에 얹어보면서 사람 몸 위에서 살아 숨 쉬는 디자인으로 다듬는다. 그 안에는 우리만의 감정도, 철학도, 유머도 다 담겨 있다. 단지 옷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억에 남는 감정을 만드는 것! 그게 랭앤루만의 패턴 디자인 과정이다.
예술적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길을 걷다가 마주친 햇빛이 만든 그림자, 카페에 앉아 있다가 눈에 띈 낡은 벽의 색감, 여행 중 스쳐간 어느 노인의 옷차림, 가끔은 기분이 너무 좋거나 반대로 너무 힘들 때도 그 감정이 고스란히 작업에 녹아든다.
특히 색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데, 눈이 먼저 반응한다. 태국의 시장 골목에서 봤던 한 상인의 스카프 색감, 홍콩의 네온사인과 비 내린 도로의 반사광, 그런 것들이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남는다. 또 사람들에게서도 정말 많은 영감을 받는다.
디자이너이자 예술가로서 세상이 주는 모든 감각을 패턴으로, 색으로, 실루엣으로 번역해내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과거 인터뷰 중에 ‘노점상부터 시작했다’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 만든 옷을 들고 가로수길에 나가 테이블 하나 펴놓고 팔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이걸 누가 사줄까?’ 싶은 마음 반, ‘창피하다’는 마음 반이었다.
지나가는 분들이 ‘어머, 이 옷 너무 예쁘다’ 하고 멈춰 구경하는 모습이 너무 감사하고 감동이었다.
옷에 대해 설명하고, 입혀드리고, 포장까지 직접 하며 어떤 프린트가 인기 있는지, 어떤 기장이 부담스러운지 등 리얼한 피드백을 받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때는 너무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나를 디자이너로 단단하게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고객들이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트렌드가 아니라 옷에 대한 진심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지금도 디자인할 때 ‘내가 이 옷에 진심인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한다.
해외 진출 과정에서 느낀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현주소는.
처음 홍콩 패션위크에 참가했을 때 한국의 색감·감성·디자인이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우리만의 독특한 감성과 스토리가 충분히 매력적인데, 그걸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는 아직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문화예술이 더 널리 알려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제품을 수출하는 것을 넘어, 우리만의 감성과 철학을 담은 콘텐트로 세계와 소통해야 한다. 이제는 더 많은 사람이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우리의 감성에 공감하고 있다. 자신감 있게 우리만의 색깔을 세계에 보여줘야 할 때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많은 후배에게 조언을 해달라.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일단 시작해보길 권한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감각도 필요하지만 결국 ‘버티는 힘’이 더 중요하다. 내가 옳다고 믿는 걸 지키는 용기, 계속 도전하는 끈기,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는 힘. 그것이 결국 나를 디자이너로 만들어준다.
당장 다 갖추지 않아도 괜찮다. 감각은 키워지는 것이고,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디자인은 ‘나’를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내 안의 감정·시선·취향을 솔직하게 드러내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시간과 경험이 좋은 디자이너를 빚어낸다. 실패도, 좌절도 결국에는 다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것이다.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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